[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열흘 간의 긴 추석 명절 연휴가 이어지고 있는 2일, 이역만리(異域萬里) 미국에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도박과 환락의 도시’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참사가 발생해 지구촌을 경악케 했다.

미국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서 1일(현지시각) 밤 10시 10분쯤 무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한 59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가운데 중환자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현지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는 지난해 6월, 49명이 숨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온 역대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기록됐다.

범인인 백인 남성 스티븐 패덕(64)은 지상으로부터 약 110미터 높이의 32층 만델레이 베이 호텔방에서 유리창을 깬 뒤 300미터쯤 떨어진 야외 공연장에 모인 관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 세계 최대 도박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일(현지시각) 밤 10시 10분쯤 무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한 59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가운데 중환자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현지 보도도 잇따르고 있으며, 주요 각국 정상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악을 몰아내고 선한 사람들이 증오와 공포로부터 안전한 날이 오길 기도한다”고 말했다.<사진_YTN캡쳐 등, 그래픽_진우현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참사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와 유족을 애도하면서 이번 총격을 ‘완전한 악(惡)’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악을 몰아내고 선한 사람들이 증오와 공포로부터 안전한 날이 오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전을 보내 “미국민이 슬픔과 비통함을 하루속히 극복하기를 기원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프란치스코 교황 등 각국 정상의 애도도 이어졌다.

이번 참사에서 무엇보다 인명피해를 키운 핵심 요인으로는 ‘자동연사’가 꼽힌다. 자동화기는 총기 보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1986년 이후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이번에야말로 총기 규제를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총기규제론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제 미국에서 총기 사건은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올해 들어 하루 평균 0.99건, 그러니까 매일 한 건씩 총기난사 사건이 터지고 있다는 게 ‘대량 총기사건 추적자’라는 단체의 주장이다.

미국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보다 1968년 이후 총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 숫자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총기 사고가 미국에서 이렇게 잦은 것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총기 보유율이 높고 총기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는 화기는 2억7000만 정에서 3억1000만 정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를 3억1900만 명이라고 보면 거의 1명당 1개꼴로 총을 지닌 셈이다.

이같이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배경에는 민병대가 활약한 독립전쟁 등의 역사적 배경과 ‘무기 휴대의 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2조 등 이민국 특유의 제도와 문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와 공화당의 반대, 민주당의 미온적 태도도 총기 사용 규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NRA와 공화당 등은 “총을 쏜 사람이 문제일 뿐 총은 무죄”라며 총기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기규제 여론이 들끓고 클린턴·오바마 행정부가 이를 입법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배경에는 이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대량학살이 반복되면서도 상식적인 총기안전법이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즉 ‘총기 창궐(The Gun Epidemic)’ 국가가 돼버렸다.

미국 선출직 지도자 등 정치권은 총기 범죄의 희생자들을 위해 애도하지만, 정작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제한을 거부하며 총기 규제에 소극적이다.

미국 CNN 방송은 사건 직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모방범죄가 벌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총기가 너무 흔하고 다중을 겨냥한 총기 난사를 모방하려는 시도도 적지 않은데다가 용의자들의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도 강해 미국 사회가 총기 사고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상자가 쉽게 무장할 수 있고 무고한 시민이 그의 위험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문명국가가 아니다.

잔혹하게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만들어진 무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격분할 일이자 국가적 수치 아닌가.

첨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명절에 벌어진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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