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전국 주간 평균 휘발유 가격이 12주 연속 올랐다. 이는 국제유가가 꾸준히 상승한 영향 때문이다. 그동안 유가 하락을 주도했던 미국의 원유 재고 및 생산감소, 이라크와 쿠르드자치정부 가 분리독립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교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조치 등으로 국제유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달 석유수출 감축을 예고한 바 있어 당분간 국제유가 상승은 지속될 듯 보인다.

2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셋째주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전주보다 2.2원 오른 리터당 1505.3원을 기록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이행으로 그 결과가 8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반등한 이후 12주 연속 상승했다. 10월 셋째주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평균치(1402.6원)보다는 102.7원 높은 수준이다. 10월 셋째주 평균 경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2.5원 오른 1296.4원을 기록했다.

▲ 최근 기름값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유류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우려스러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_tamtam1@naver.com>

◆ 유가 상승을 이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장의 과잉공급으로 저유가가 이어지자 OPEC 회원국과 비 OPEC 산유국들은 지난해 11월 6개월의 감산에 합의하고 올해 1월부터 이행에 들어갔다. 이후 이를 내년 3월 말까지로 한 차례 연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산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원유 재고가 줄어들면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모히메트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기자들과 만나 “OPEC 감산조치 덕분에 모든 지역에서 원유는 물론 정제유의 재고가 대거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하며, 감산의 효과에 대한 회의적 전망은 결국 틀린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간 OPEC에서 감산 조치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던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OPEC 알둘라알바드리 사무총장이 러시아, 사우디, 베네수엘라, 카타르 4개국 간 이뤄진 산유국 동결제안과 관련해 “추가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감산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감산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어 “감산을 약속하더라도 이를 지킬 나라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감산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의 셰일 원유생산업체들과 경쟁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전격합의하게 되었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사우디 에너지부는 이례적으로 다음 달 사우디의 석유수출 계약 내용을 공개하고 수요는 하루 770만 배럴이지만 수출 물량으로 하루 720만 배럴만 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수출물량 하루 820만 배럴에 비해 하루 100만 배럴 줄어든 규모다. 사우디는 석유시장 과잉공급 해소를 위해 생산 감축보다는 수출 감축을 했다는 의미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연초에 “지금은 수출이 금융시장에서 (유가를 결정하는) 핵심 척도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우디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며 수출 감축 의지를 나타난 것은 그동안의 감산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 때문이다.

이렇게 사우디가 시장 안정에 강한 의지를 나타냄에 따라 다음달 30일로 예정된 OPEC과 러시아 등 비 OPEC 감산협력국 각료회의에서 감산 연장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도 하루 180만 배럴 감산을 필요하다면 내년 말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고,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각료회의에서 감산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산유국들의 불안한 정세도 유가 상승 이끌어

그동안 저유가를 이끌었던 미국 셰일 오일의 재고가 줄어든 점도 유가 상승 요인이다. 지난 8월 말 대규모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모여 있는 텍사스를 강타하면서 석유회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실제로 하리케인 하비로 인해 미국 정유 시설들의 25%가 가중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 움직임도 유가를 상승시킨 원인 중 하나이다. 이라크의 주요 유전 지대인 키르쿠크는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하루 15만~20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된다. 대부분은 터키로 향하는 송유관을 통해 수출되고 있다. 그런데 터키도 쿠르트자치정부의 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원유 수출 흐름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이라크 내부 정세도 원유 거래시장에서 매수세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남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불안정성 또한 유가 움직임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원유시장은 OPEC의 회원국인 베네수엘라 국영원유회사 페데베사(PDVSA)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도 올라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국내 생산자물가도 2년9개월 만에 최고치가 됐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생산자물가 잠정치는 102.81로 8월보다 0.5% 올랐으며 이는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권처윤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석유제품과 1차 금속제품을 중심으로 올랐다”며 “국제가격이 상승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저유가 시대는 끝났다고 관측하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면서 국제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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