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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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상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일면에 장점이 있다면 다른 일면엔 단점이 있어 결국 양면을 이룬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도 마찬가지다. 빠른 소통, 다양한 관계망을 구축해 일상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들에 잠식 당하기도 한다.

타인을 향한 시선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지나치면 관여가 된다. 결국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까지 재단하기에 이른다. 사리분별은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SNS의 무기명성을 앞세워 상대방에 괴로운 심정을 유발하는 게 과연 온당한 현상이겠는가?

2002년 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축구선수가 지난 7일 병세 악화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와 동시대 경기장을 누볐던 선수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남은 이가 떠난 이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방식은 다 다를 수 있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슬픔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저마다 알맞은 태도의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2002월드컵 주역 선수였던 박지성 전 축구선수가 고인의 빈소를 오지 않은 걸 두고 온라인상에 비난의 말들이 쏟아진 모양이다. 결국 박지성의 배우자인 김민지 아나운서가 슬픔을 증명하고, 조의를 인증하란 강요 말라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했다.

그녀의 말처럼 타인의 삶을 취재하듯 중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타인에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감정을, 행동을 강요할 수도 없다. 척도가 없는 주관의 범위를 누가 제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부디 타인을 향한 감시의 시선은 거두자. 행위 양식을 임의대로 지정하고, 전시를 강요하는 행태도 멈추자.

현충일, 광복절과 같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날에도 누가 SNS에 추모글을 게시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도 감시 말자. 올렸으면 같이 공감하고, 올리지 않았더라도 비난 말자. 혼자서, 마음으로 충분히 기리는 방법도 있다.

타인이 추량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 깊이를 억지로 해석하려 들지 말자. 컴퓨터 모니터 너머 아무도 없는 듯 보이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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