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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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에 대한 공포가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일종의 웃음 코드로 활용됐던 몰카가 이젠 타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성년 포함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해 대량으로 불법촬영을 하고 유포까지 한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불법촬영 범죄는 더 이상 물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 것이 됐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는 한명이 아닌 다수였고, 범행 과정에서 학대 정황까지 발견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8년엔 한 여성단체가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시위를 여러 차례 진행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체감되는 큰 개선점은 없었다.

지난 618일엔 초소형 카메라에 대한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글이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작은 크기, 감쪽같이 위장된 카메라가 불법촬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초소형 카메라 유통 규제를 요하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 청원글은 현재 1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처벌은 강력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325일 진선미 의원 등 12인이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지만, 현재 디지털 성범죄 방지 관련 법은 법령이 아닌 자치법규로 존재하고 있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제정을 통한 처벌 강화가 절실한 지금, <뉴스워커> 취재진은 실제 불법촬영 사건 등을 집중 조명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수법으로 이뤄진 불법촬영 사건들


불법촬영 건은 실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수법으로 이뤄졌다. 불법촬영을 시도한 인물들의 연령대 또한 다양했다.

지난 11일 오전 경기 용인 처인구 소재 카페에서 40대 남성이 카페 직원을 대상으로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남성이 자행한 불법촬영 수법은 실로 놀라웠다. 크기가 2cm 정도 되는 초소형 카메라를 발가락 사이에 끼운 채 범행을 한 것인데, 이를 가리기 위해 남성은 얇은 양말을 신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가져오는 직원에 발을 뻗어 사진을 찍는 수법을 사용했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이 남성은 약 3개월 동안 용인 일대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여성 신체를 상습적으로 불법촬영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3일 구속 수감됐다. 남성이 소유하고 있던 메모리카드엔 동일한 수법으로 여성을 찍은 사진 수백장이 들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여성 혼자 사는 집을 물색한 뒤 창문 틈으로 방 안을 몰래 촬영한 30대 남성의 사례도 있었다. 지난 11일 밤 1130분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창문 틈으로 보이는 1층 여성의 방 내부를 휴대폰을 이용해 불법촬영한 혐의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 남성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당시 만취한 상태였고, 범행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전엔 CCTV를 이웃집으로 향하게 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의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7103일 이웃부부와 다툰 뒤 CCTV를 이웃집 방향으로 돌려 사생활을 침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 춘천지법 형사2(진원두 부장판사)1심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남성은 CCTV 방향을 조작한 바도 없고, 피해자 주택 내부를 촬영할 의사도 없었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유지한다고 6일 밝혔다.

지난 16일 국제인권단체 HRW(Human Rights Watch)가 공개한 심층 면담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에 한 피해 여성의 사례가 수록되기도 했다. 이는 직장 상사로부터 불법촬영 피해를 당한 사건이었다.

피해 여성을 불법촬영한 장치는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탁상형 시계였다. 상사에게 선물 받은 시계가 알고 보니 불법촬영 장치였던 것으로 밝혀진 사건인데, 가해자인 직장 상사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이러한 불법촬영 건은 적발되지 않는 이상 피해자들 상당수가 피해 사실을 모른 채로 지나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은밀히 이뤄지는 범행 특성상 피해자 규모를 파악하는 일 자체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촬영물 유포 시엔 2차 가해로 이어지는 악랄한 범죄이기도 하다.


더 작게, 더 감쪽같이진화하는 카메라들, “처벌 강화 필요


불법촬영 범죄는 유명인에도 벌어졌다. 지난 201973일 김성준 전 SBS아나운서가 서울 영등포구청역에서 여성 승객의 하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불법촬영 추가 건이 확인되면서, 지난해 82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류희현 판사)은 김 전 아나운서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다. 김 전 아나운서는 입건 이후 SBS에 사표를 제출했다.

생각지 못한 인물의 불법촬영 범행이 있었던 것처럼 불법촬영 장치들도 날이 갈수록 진화됐다. 초소형으로 크기가 더 작아지는 것은 물론, 시계형, 안경형, 볼펜형, 차키형, 라이터형, USB, 보조 배터리형 등으로 위장한 카메라들이 쏟아지듯 나온 것.

이러한 위장 카메라들은 구매하기도 쉽고, 비용도 높지 않아 누구든 구입해 사용할 수 있다. 예시들처럼 생활용품과 닮아 있거나, 크기가 작은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범행을 작정한다면 방지 및 적발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현실. 최근엔 화면이 꺼져도 계속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형 카메라가 출시돼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다.

불법촬영에 이용되는 카메라들이 통상 인식되던 카메라 형태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 소위 몰카 공포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진 것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따르면 가해자 유형 중 미상(31.1%)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부부 및 연인 등 친밀한 관계(24%)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로 모르는 사람(17.9%), 일시적 관계(15.9%) 순이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신원 미상의 사람이거나 반대로 친밀한 사람에 의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현황은 전국 기준 2017년 발생 건수 6465건에서 검거 수 6220건으로 발생 건수 대비 검거 비율은 96.2%였고, 2018년 발생 건수 5925건에서 검거 수 5613건으로 발생 건수 대비 검거 비율은 94.7%였으며, 2019년 발생 건수 5764건에서 검거 수 5442건으로 발생 건수 대비 검거 비율은 94.4%였다.

하지만 검거 건이 반드시 기소 처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초소형 카메라는 실생활을 위한 용품이라기보다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은 장치다. 이를 이용한 범죄율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자 자격 제한을 둘 수 없다면, 유통 차원에 규제를 두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도 방법일 것으로 보인다.

불법촬영은 대상을 인격체가 아닌 개인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또한 재범률이 매우 높은, 관음증의 극치를 보이는 악질적인 범죄다. 실정에 맞는 관련 법안 개정 및 실질적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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