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硏 “서민들 삶 수준 낮아져 20년 전과 비슷해져”

“정치·경제·사회적 조건들, 정부 올바른 방향 제시해야”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뉴스워커_경제의 눈] 집콕생활이 계속되면서 먹거리에 대한 지출 비중이 높아졌다. 여기에 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중돼 서민들의 삶도 팍팍해 지고 있다. 전체적인 씀씀이는 줄었지만 사람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먹고, 자는 것에 대한 필수적인 소비는 늘어난 것.

가계의 소비지출 대비 식료품 비중을 뜻하는 엥겔지수가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바깥·여가활동을 자제한 동시에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지수가 뭐 길래 팬데믹 시대에 이렇게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일까. 엥겔지수란 소비에서 먹는 데 쓴 돈의 비중을 나타낸다.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1857년 개별 가정의 소비 행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엥겔지수(Engel's Coefficient)는 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소득이 적은 가계일수록 식료품 구입에 사용하는 지출이 많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가계의 생활수준을 살펴보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엥겔의 주장에 따르면 이 지수는 식료품에 사용하는 지출 자체 보다 소득 수준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가계의 소득과 식료품비가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가계 소득이 늘게 되면 식료품에 대한 지출보다 문화생활·자기 계발 등에 대한 지출이 늘어남에 따라 엥겔지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소득이 늘어나면 식음료비 지출보다는 오락·문화 등 여가생활 씀씀이가 상대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엥겔지수는 199020%대에서 201911.4%로 지속해서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지만 지난해부터 올랐다. 올해 1분기 엥겔지수13.3%를 차지하면서 2000년에 근접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월 가계의 국내 소비지출액(2177558억원) 가운데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29166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로 집계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국민계정으로 살펴본 가계소비의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지출 중 식음료 지출이 늘면서 엥겔지수가 12.9%로 반등했다.

()’는 말할 것도 없다. 임대료와 공과금 등의 비중을 뜻하는 슈바베지수1분기 19.7%로 나타났다. 주택매매가격지수 증가율은 20191.4%에서 20203.8%로 급등했다. 당연히 전·월세도 증가세다. 신한은행의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 소비지출 가운데 작년 월세·관리비비중은 11.3%2019(10.8%) 보다 높아졌다.

이런 결과만 봐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현대연구원 관계자는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엥겔지수가 높다우리의 삶의 수준이 2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57년 만에 선진국 그룹들어섰지만 서민들 삶은 여전히 팍팍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불안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팬데믹 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언제 또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런 바람에 지난해 가계 흑자율은 역대 최고였다. 지난해 2인 이상 전국 가구의 소득 대비 흑자 비율은 30%를 넘었다. 20164분기 외에 가계흑자율이 30%를 넘은 적은 없었다.

통계청의 ‘2020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4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보다 2.3% 감소하면서 소비가 위축됐다. 지출 규모는 2011(2393000) 이후 9년 만에 가장 적었다.

하지만 밥값이 올라도 먹을 건 먹었다. ‘의식주가운데 에 대한 지출은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구당 월 소비 240만원 중 식비의 비중은 22.1%였다. 전년(20.8%)보다 오른 수치다.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4.4%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상승폭이 컸다는 의미다. 집값과 전·월세는 설상가상이다.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가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지수들이 오르면 우리의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특히 서민들의 삶이 휘청 일 수 있다. 통상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는 경제가 발전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낮게 나타나기 때문에 선진국 지표로도 불린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57년만의 변화를 맞았다. 이달 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선정했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설립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것은 우리나라뿐. 그렇지만 높아진 집값, 밥값에 서민들은 아마도 선진국 지위를 느끼기 힘들 것 같다.


먹는 것’ ‘자는 것도 편치 않아정부가 방향 제시해야


전문가들은 엥겔지수가 낮은 국가를 선진국으로 보는 해석이 있지만 요즘은 밖에서의 여가생활을 누리기 어려워 졌고, 비싸도 양질의 음식을 선호하는 문화 등 변수를 적용할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서민들의 삶의 질 저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소득은 한정돼 있고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하는데도 한번 오른 먹거리 가격과 집값은 다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가 방역이나 집단 면역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반기 중으로는 실물 경제가 살아나기 힘든 상황이다.

삶의 질은 주변 환경에 대해 느끼는 개인의 행복감과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주관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삶에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것들은 지켜줘야 한다.

물론 부자도 중산층도 서민도 모두 국민이다. 하지만 정부는 취약계층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 ‘의 소비 지출이 큰 만큼 먼저 정부가 식료품 수급을 조절을 해 가격 안정을 모색해야 한다. 집에 대해서는 공급 확대와 더불어, 국민들이 방 같은 집아니라 살고 싶은 집을 원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무너지듯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약한 곳부터 위험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말을 했다. “다리의 수송력은 여러 교각이 지닌 힘의 평균값이 아니라 가장 약한 교각의 힘에 좌우된다. 한 사회의 건강도 국민총생산으로 측정해선 안 되고 가장 가난한 계층의 상황을 살펴야한다.”

우리나라라는 다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위를 달리던 이들도 같이 떨어진다. ‘평균에만 집착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