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현재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평화상은 300여개에 달한다. 그중에서 ‘노벨평화상’(Nobel Peace Prize)이 가지는 권위와 명성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벨평화상은 1895년 11월 27일 파리의 ‘스웨덴-노르웨이 클럽’.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스웨덴의 사업가 알프레드 노벨이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을 한다. 바로 이 유언에 의해 노벨상이 탄생했다.

1901년 최초의 수상자를 낸 이후, 한 세기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거의 매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평화인물열전에 따르면, 이 상으로 인하여 사상 최초로 평화가 매년 정기적으로 수여되는, 더구나 엄청난 상금이 걸린 국제적 어워즈의 주제어가 되었다.

또 1767년 프랑스에서 근대 유럽 최초의 평화상이 제정된 이래, 기존의 평화상이 논문이나 저서 등의 ‘학술적’ 성과를 주된 대상으로 했다면, 노벨평화상은 각종 ‘운동이나 실천, 활동’ 등에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그럼으로써 평화의 지평을 보편적 이상이나 추상적인 이론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개인(집단)의 실제적인 행동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매년 노벨의 사망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다. 수상자는 노르웨이 국왕의 참석 하에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메달과 상장, 상금증서를 받는다.

수상자는 기념강연을 한다. 매년 시상식 참여를 원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수백 개의 좌석이 제공되고, 상장의 카피본을 기념으로 나눠준다.

저녁에는 오슬로 그랜드 호텔에서 만찬이 거행된다. 1994년부터는 시상식 다음날 노벨평화상 콘서트가 매년 열리고 있다. 티나 터너, 필 콜린스, 스팅, 머라이어 캐리 등의 세계적 팝스타가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2000년의 노벨평화상 콘서트에는 조수미가 출연했다.

상금은 노벨평화상의 명성에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해왔다. 노벨위원회가 2015년 노벨평화상 상금으로 밝힌 금액은 8백만 SEK(스웨덴 크로나)로, 약 96만 달러, 한화로는 약 11억 원에 해당한다. 수상자가 한 명 이상인 경우 총액을 인원수로 나눈다. 매년 노벨 재단의 투자 이익이 배분되는 탓에 상금의 액수는 매년 다르다.

참고로 제1회인 1901년 상금은 약 15만 SEK, 2014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8백만 SEK로 현재와 거의 동일하다. 비율로 환산해 1901년부터 2014년까지 상금이 가장 적었던 해는 1919년(우드로 윌슨 수상-약 220만 SEK)이고, 가장 많았던 해는 2001년(UN과 코피 아난 수상-약 1173만 SEK)이다. 김 전 대통령이 수상한 2000년은 역대 7번째로 상금이 많았다.

수상자가 없는 해의 상금은 다음 해로 넘어가고, 그 다음 해에도 수상자가 없게 되면 노벨재단 특별펀드로 예치된다.

노벨평화상의 명성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논란 역시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노벨평화상은 종결된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이나 이슈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따라서 논란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상이 평화에 대한 이해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과 방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부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릇 평화상이란 평화증진에 헌신한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 뿐 아니라, 평화와 관련된 각종 이슈로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평화실현의 다양한 방식들을 널리 알리고, 그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도 가진다.

노벨평화상은 평화상의 이러한 목표에 최대한 근접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지구촌의 평화 트렌드를 앞장서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왔다. 총 6개 분야에 주어지는 노벨상 중 노벨평화상은 노벨문학상과 더불어 늘 가장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비정부조직(NGO)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받았다. ICAN은 세계각지의 반핵 단체와 히로시마의 피폭자 등과 연계해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외쳐왔다. 지난 7월 유엔이 채택한 ‘핵무기 금지조약’의 성립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높게 평가됐다.

수상소감에서 ICAN 베아트리스 핀 사무총장은 “한 번의 짜증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 가슴을 짜하게 했다.

북한과 미국이 이른바 ‘말 폭탄’을 주고받는 가운데 한반도의 핵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이다.

그는 “핵무기는 인류와 공존하지 못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위험에 빠트린다”면서 “더 이상 광기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위원장 사이에 ‘꼬마 로켓맨’, ‘늙다리 전쟁상인’ 같은 말 폭탄을 주고 받아 긴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자칫 한쪽의 오판이 핵전쟁으로 치닫을 수 있음을 경고한 거다.

핀 사무총장은 “하나의 충동적인 짜증만으로 서로를 파멸할 수 있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올렸다.

따라서 이제 핵무기를 끝낼 것인지, 우리가 끝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함께 시상식장에 나온 85세 일본인 서로 세츠코 씨는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를 회고하며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는 “다친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불에 탔고, 부풀어 올랐다”며 울먹였다.

이번 ICAN의 메시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핵 위험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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