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안 오겠다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24일 언론인터뷰에서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한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위안부 합의 이행을 고리로 평창행을 저울질해 온 아베 총리가 개회식에 참석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가 참석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53%였고,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한·일 관계를 고려해 참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미국의 압력과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실리적 계산도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는 일본 정부가 아베 총리의 평창올림픽 참석 문제를 협의하자고 공식 요청해 왔다면서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아베 총리가 뒤늦게나마 평창올림픽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마냥 환영할 사안은 아니다. 아베 총리가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의 새 조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직접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반대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고 싶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 논란을 내세워 올림픽을 외교적 압박수단으로 삼거나 차기 올림픽 개최국가로서 인접국의 축제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소녀상 철거 등을 요구하는 행위도 ‘화합의 제전’이라는 올림픽 정신과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측의 입장 변화가 대북 제재와 관련됐다는 일각의 관측도 눈여겨볼 일이다.

올림픽 개막을 축하하며 화기애애해야 할 한·일 정상 간 만남이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다. 한쪽에서는 미국에 등 떠밀린 아베 총리가 억지로 참석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기왕에 아베 총리가 와서 민감한 두 현안을 꺼낼 게 틀림없다면 이참에 문 대통령과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최근에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세워진 화해·치유 재단을 청산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보도되는 등 양국 관계는 더 악화할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 만큼 양국은 이번 아베의 방한을 관계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화가 누그러지면서 타협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에 관계개선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면 상당 기간 두 나라 사이가 나아질 계기를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현안을 나눠서 다루는 ‘투 트랙 접근’을 일본 측이 받아들이도록 아베 총리를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한·일 정상은 더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입장차를 좁혀가야 한다. 더욱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장으로 활용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적지 않다는 것도 걱정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남북대화 분위기에 파묻히지 말고 올림픽 이후 정세 관리를 착실히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나고 4월에는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된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등으로 도발해 올 가능성도 크다. 모처럼 한반도에 불고 있는 대화의 훈풍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남북에 이어 북·미 대화로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비핵화 노력은 일본의 협력 없이는 어렵다. 이런 점 등을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깊은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 셔틀외교를 먼저 말한 것은 문 대통령이다.

한·일 정상이 모처럼 맞은 관계 개선의 기회를 양국 간 갈등을 덧내기보다 미래지향적 협력 과제에 집중하는 생산적 시간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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