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돈세탁은행’의 유출된 거래내역에서 국내 기업의 이름이 발견됐다.

뉴질랜드 기반의 유령회사가 입금한 계좌는 하나은행 서현역 지점의 계좌이며, 해당 계좌는 삼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5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조직범죄와 부패보도 프로젝트(OCCRP, 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 Reporting Project)와 리투아니아 탐사보도매체 15min는 리투아니아 ‘유키오 은행(Ukio bankas)’의 입출금 거래 내역을 무더기로 입수했다. 유키오 은행은 지난해 국제 돈세탁으로 악명 높았던 거점 은행으로, 수상한 거래에 관한 혐의로 지난 2013년 리투아니아다욲에 의해 폐쇄된 바 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탐사보도 네트워크인 OCCRP 등이 입수한 유키오 은행의 거래내용을 조사한 결과, 23만 개 법인이나 개인 사이에 오간 130만 건의 자금 거래 내역과 각종 계약서, 청구서 등이 있었다. 이는 은행 거래 데이터 유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로,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간 축적된 기록이다. 거래 금액은 총 3400억 유로로, 우리 돈으로는 440조 원에 이른다.

국제협업 취재, 러시아 고위층 위한 돈세탁 네트워크 정황 포착

취재는 지난 몇 달 간 국제적 협업으로 진행됐다. OCCRP는 유키오 은행에서 유출된 거래내역 데이터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와 영국 BBC, 가디언,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전세계 21개의 매체와 공유하고 협업팀을 꾸렸다.

협업 취재 결과, 2012년 러시아 국영 스베르은행(Sberbank)에 매입된 러시아 최대 민간 금융그룹인 트로이카 다이얼로그(Troika Dialog)가 러시아 고위층 등을 위해 국제 돈세탁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십조 원대의 자금을 세탁한 사실이 확인됐다. 트로이카 다이얼로그는 세계 여러 조세도피처에 75개의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리투아니아 유키오 은행에 이들 유령회사 명의로 최소 35개의 계좌를 개설해 돈세탁 네트워크를 가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네트워크는 허위 청구서 등을 꾸며 유령회사가 서로 돈을 주고받게 하는 방법으로 러시아 고위층 등을 위해 돈세탁과 탈세를 도왔다.

돈세탁의 거점 트로이카 다이얼로그, 운영자는 이명박 전대통령 자문위원 루벤 바르다니안

놀랍게도 돈세탁의 거점이 됐던 트로이카 다이얼로그의 운영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제자문위원이었던 루벤 바르다니안이었다.

2008년 10월 29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위촉한 국제자문위원들을 접견하고 이들에게 위촉패를 전달했다. 이 자리엔 트로이카 다이얼로그 회장 루벤 바르다니안도 있었다. 존 쏘튼 미국브루킹스연구소 소장, 나라야나 무르티 인도 인포시스 창업회장 등도 참석한 자리였다.

 

아르메니아 계 억만장자인 바르다니안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자문역이자 러시아 금융계의 거물로, 다보스 포럼에 연사로 나서거나 세계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는 자선사업가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자문위원 위촉 행사에서 청와대는 그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자, 국가전력 및 자원, 금융 분야 자문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MB의 국제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그는 이후 한국을 종종 방문했으며, 2010년에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차병원이 아르메니아에 추진하는 ‘차움 딜리잔(Chaum Dilijan)’ 의료센터 사업의 아르메니아 측 파트너, IDeA(Initiatives for Development of Armenia) 투자재단의 회장으로 한국 언론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트로이카 다이얼로그가 돈세탁 네트워크의 근원지로 밝혀지면서, 대통령 국제자문위원, 한국 기업의 해외합작 파트너 등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와의 신뢰관계에 금이 가게 됐다.

유키오 은행에 개설된 유령회사 계좌에 하나은행 삼성계좌 기록이..

트로이카 다이얼로그의 전 세계 돈세탁 네트워크는 88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조원의 돈 세탁을 거행했다. 이들이 세계 여러 조세도피처에 만든 75개 유령회사의 명의가 리튜아니아 유키오 은행에 있었고, 최소 35개의 계좌가 개설돼 돈세탁 네트워크에 활용됐다고 한다.

이 리튜아니아 유키오 은행에 한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입금된 돈은 없는지 뉴스타파가 추가 취재한 결과, 2005년에서 2010년 사이 670개 기업 또는 개인계좌로 모두 1억3000만 달러, 우리 돈 1400억 원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에 따르면, 이중 삼성에는 모두 53건에 330만 달러가 입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뉴질랜드에 설립된 ‘임팔라 트랜스’라는 유령회사가 유키오 은행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서다. 해당 계좌에서 KEB 하나은행 서현역지점의 삼성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될 조짐이다.

해외 삼성법인까지 범위를 넓히면 유키오 은행 계좌를 통해 삼성으로 들어온 돈은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에 있는 삼성전자 해외법인 Samsung Electronics Overseas B.V.(이하 SEO) 한 곳에 들어온 돈만 9300만 달러로 전체 유입된 돈의 96% 이상을 차지했으며, 삼성 계열사 전체에 유입된 돈은 모두 9600만 달러로 총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SEO에는 지난 2017년에도 OCCRP와 뉴스타파 등 국제협업팀이 취재한 결과 수백억 원대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된 바 있다. 러시아 범죄조직이 돈세탁을 위해 만들어진 4개 유령회사에서 2400만 달러, 우리 돈 2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 SEO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삼성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키오 은행 계좌를 통해 SEO로 들어온 돈은 이보다 4배나 큰 규모다. 특히, 이번 유키오 은행 거래 내역과 함께 유출된 자료에는 2008년 은퇴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서명이 있는 물품대금 청구서도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유령회사로부터 거액의 돈이 입금된 정황이 거듭 포착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측의 적절한 해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삼성전자 측에 문의한 결과,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보도가 그렇게 난 것이지만 해당 사안에 대해 저는 아는 바가 없다”며 “회사 차원에서 특별히 공식 입장이 없어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추가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도록 다른 관계자를 요청하자 “저희가 담당이지만 다른 직원들한테 물어봐도 같은 입장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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