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 전쟁을 시작했던 일본은 어제(8일) 34일 만에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했다.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던 한․일 갈등 상황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일본 태도변경을 두고 그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우커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왜란]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 전쟁을 시작했던 일본은 어제(8일) 34일 만에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했다.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던 한․일 갈등 상황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일본 태도변경을 두고 그 의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런 가운데 오늘(9일)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에 수출 규제한 것은 ‘오판’이었음을 인정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 변화에 따라 우리 정부도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를 잠시 유보한다고 밝히면서 한․일 간의 경제 전쟁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품목 중 1건 허가한 일본, 의도는?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행한 지 34일 만인 어제(8일) 1건의 수출 허가를 했다. 수출을 허가한 품목은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로 반도체 기판 가공에 쓰이는 감광제이다. 삼성전자의 주문을 받은 일본의 신에츠화학공업이 수출규제 직후인 지난 달 8일 허가를 신청한 것이고, 이후 한 달 만에 허가를 받은 것이다. 허가 물량은 150갤런, 즉 3개월 치 물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 달 4일부터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로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를 시작했고, 이번 달 2일에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였기에 이번 수출 허가는 의외였다. 그래서 이를 두고 각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대체로 정치적인 목적의 경제보복이나 수출 금수조치가 아니라는 명분 쌓기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금수조치가 아니다”라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할 정도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당초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의 표현으로 단순히 한국의 급소만 찔러 보려고 했다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일 수 있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9일 ‘징용공 대응 촉구 의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이 수출 규제 한 달여 만에 자국 기업의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수출관리 엄격히 한 배경에는 징용공 문제에서 대응을 연기한 한국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고 실었다. 이어 “한국 측은 일본의 일방적 조치라고 비난하고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도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자체와 스포츠 교류에서도 중단이 이어져 일본 정부 관계자가 “예상 이상으로 소동이 커졌다”며 ‘오산’이 있었음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으로 일본 중소 도시에 한국 관광객 급감했고,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에 각 자자체가 긴급 자금을 지원할 정도로 일본이 입는 타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자국의 기업들의 피해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기업은 어제 2분기 실적이 줄었다고 발표했는데, 무역흑자나 87%나 급감한 것도 일본 입장에서는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탈일본화’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공정에 들어가는 일본산 소재 모두 국내산이나 유럽 미국산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자, 생산 공정에서 일본산 소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탈일본 생산’ 원칙을 세운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 지역 업체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에서 원료를 수입한 뒤 한국에서 가공해 삼성에 납품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삼성은 ‘재팬프리’ 원칙을 밝히며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 일본, 추가 규제 가능성도 시사..안심할 수 없는 경제 전쟁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고 볼 수 없다. 일본은 이번에 1개 품목에 대해 수출 허가를 해주면서도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국제 협약상 현재 규제하지 않는 품목, 현행 리스트 규제가 안전보장상 충분한지 어떤지 보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3단계 경제보복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3단계 경제보복은 한국 정부의 대응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일본 백색국가 제외’ 등으로 강경하게 맞대응을 하니 슬그머니 한 발 빼고 한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오늘(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경제전쟁을 두고 ‘전략게임’이자 ‘반복게임’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전략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내 전략을 변경하는 전략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상당기간 반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는 지금 수출 허가를 해 준 것은 오는 24일 결정될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보았다.

이에 우리 정부도 일단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부분은 잠시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위협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올려놓은 3개 품목을 완전히 잠글 수도, 완전히 금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1100개가 넘는 백색국가 제외 해당 품목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점에서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이 살아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일본의 동향과 관계없이 국내 산업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8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정부는 사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그렇더라도 과도하게 한 나라에 의존한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일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서로 발톱을 숨겨놓은 상태다. ‘치킨 게임’ 까지 치닫지 않도록 고도의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