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인심 좋다는 건 다 옛말, 마을발전기금을 둘러싼 갈등 최고조. 급기야 법정 다툼까지

귀농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와 보이는 농촌 생활을 도시민들은 꿈꾸는 것이다. 한데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우현 그래픽2팀 기자>
귀농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와 보이는 농촌 생활을 도시민들은 꿈꾸는 것이다. 한데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우현 그래픽2팀 기자>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COVID-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대한민국은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멀리했으며 마스크는 이젠 외출 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길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코로나19 사태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진행형이다. 그 여파는 추석에까지 이어졌는데, ‘언택트 추석’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번 명절을 보내게 됐다.

그러나 이번 추석연휴기간 동안 코로나19 만큼이나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했다. 최근 귀농한 부부들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마을 이장과 ‘마을발전기금’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이 끝난 지금에도 마을발전기금 문제로 하소연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마을발전기금 아닌 마을이장발전기금?


‘마을발전기금’은 자발적으로 마을사람들이 이장에게 돈을 내 마을 잔치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금이다. 대부분 동네 행사를 위해 마을발전기금을 걷었는데 필자도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유년시절 익숙한 풍경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고부터 마을발전기금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시골에서 청년들이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급증하자 미래기금으로 쓰거나, 태양광 등의 국가사업을 이유로 마을발전기금을 걷고 있는데 과거와는 달리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기까지 금액의 규모가 커졌다.

어느 포털사이트든 ‘마을발전기금’을 검색하며 카페나 블로그에서 “이장이 무리하게 요구하는 마을발전기금 때문에 힘들다”며 해결책을 찾고 있다. 작은 마을일 경우 동네 주민들과 자주 마주치는데 흉흉한 분위기에 고통이 더 심하다고 했다. 노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온 귀농 부부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귀농을 후회한다’고도 했다. 액수도 만만치 않았다.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6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집을 사서 거주하는 게 아니라 전세로 잠시 사는 거니 낼 의무가 없다고 이장에게 말하면 되지 않겠냐”는 도움을 주지만 그 방법도 이장을 상대로는 소용없었다. 전세를 해도 마을 구성원이기 때문에 납부해야할 돈이라는 것이다.

마을발전기금은 마을 자체에서 주도하는 것이라 제대로 된 장부도 없다. 만약 마을발전기금을 목적으로 이장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해도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다. 아파트 관리비와 똑같이 돈을 걷지만 관리비와 달리 재산 관리대장 작성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투명한 관리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로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한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간다.


마을발전기금이 악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필자가 찾아보니 마을발전기금 사태는 이번 추석에서 시작된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발견했다. 훨씬 이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치부돼져 왔는데 그 시작이 현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도입 정책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태양광 패널 설치 등 신재성 에너지 보급이 시골에서부터 확대되자 마을은 건설업체를 통해 마을발전기금을 지원해준다는 조건으로 태양광 패널 설치를 동의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건설업체는 숙박시설 등 재개발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상생기금을 조건으로 마을발전기금을 채우는 등의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마을발전기금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로 불어나게 되고 훈훈했던 마을 인심은 계산적이며 이해타산적으로 변해갔다. 큰 돈을 따로 관리할 의무도 없다 보니 욕망에 사로잡히기 쉬운 구조였다. 화목한 동네 유지를 위해 걷었던 마을발전기금은 급기야 동네 사람들 간 법정 다툼까지 벌이게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서산시 대산읍 지역에선 태양광 설치 지원금을 두고 동네 주민과 이장이 맞고소하는가 하며, 최근 봉화군에서는 귀농인이 엽총을 발사해 소천면사무소 공무원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마을발전기금의 좋은 예시를 보여준 마을들


마을발전기금을 이처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어려운 마을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한 마을도 적지 않다. 충북 영동군 양강면 구강마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 5리 마을, 전북 완주군 상관면 정좌마을이 대표적이었다. 이 세 마을은 코로나19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동네 주민들에게 마을발전기금으로 모아둔 돈을 생계자금으로 지급했다.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마을 회의를 열었고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급하자고 최종 결론 끝에 선의적으로 사용했다고 마을들은 입장을 밝혔다. 양구군 동면 임당 2리 마을은 5월부터 모은 마을발전기금으로 1~2년 차 새내기부부에겐 100만원, 동네 주민에게는 200만원을 지급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마을발전기금을 마을사람들이 힘들 때 다시 베푸는 마을들도 많이 존재한다. 일부 마을 이장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봤고 귀농에 낭만을 가지고 시골로 내려온 노년 부부는 마을발전기금 대처법을 알려달라며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을의 망신과 함께 마을발전기금의 목적이 심히 훼손됐다. 마을발전기금도 이젠 공공 관리 장부를 만들어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사람 사는 게 힘들어지는 것 같다. 사람 믿고 맡기던 옛날 시골 냄새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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