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종차별 이슈에 더욱 민감해야 할 때

명품 화장품으로 잘 알려진 에스티로더의 인종차별논란이 불거졌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명품 화장품으로 잘 알려진 에스티로더의 인종차별논란이 불거졌다.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지난 6일 한 소비자가 인터넷에 올린 에스티로더 상품 후기가 큰 화제가 됐다. 파운데이션 세트를 원하는 색상으로 구매했는데 매트 파우더 제품이 선택한 옵션과 다른 색상으로 발송된 것이다. 그리고 발송된 제품 위에는 ‘옵션으로 선택한 컬러의 매트 파우더는 동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컬러’라면서 ‘직접 컬러를 확인하지 못하는 특성상 동양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으로 변경해 발송했다는 문구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변경 사항이 불만족이라면 반품 처리를 한다는 조건도 있었으나 소비자는 문구에 불쾌감을 느껴 이를 알리는 글을 작성했다. 이는 SNS에서 인종차별이라고 논란이 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고 결국 에스티로더 코리아 관계자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 인종차별인가


해당 문구가 인종차별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많다. 먼저 동양인이라고 서양인보다 무조건 피부색이 어둡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불그스름한 서양인의 피부보다 더 밝은 톤을 가진 동양인도 존재한다. 또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동양인이 아닐 수 있다. 귀화한 외국인일 수도 있으며 입양이 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주문을 동양인이 했다고 해도 그것을 서양인에게 선물로 줄 의도로 구매했을 가능성도 있다. 설사 정말 해당 제품의 색상이 어울리지 않는 동양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선택한 제품을 임의로 변경해 배송하는 것 역시 인종을 이유로 삼아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요즘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단지 한국에서 판매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상품을 ‘동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상’이라고 판단해 바꾸는 것은 상당히 시대에 뒤처진 행태다.


인종차별로 불매를 결정하다


이번 일로 인해 대중들은 에스티로더를 불매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부 일처리가 잘못된 것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외국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이미 많이 존재한다. 지난 6월 미국의 스타벅스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 구호인 ‘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착용하길 바라는 직원들의 요청을 ‘복장 규정에 어긋나며 잠재적으로 폭력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며 거절했다. 스타벅스 본사의 대응이 알려지자 미국 국민들은 지침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분노하며 불매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페이스북이 인종차별적인 콘텐츠를 방치하자 광고를 중단하고 ‘#이익을 위한 증오를 멈춰라’ 캠페인을 벌이는 등 기업의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애플은 흑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위한 캠프를 만들고 유튜브는 흑인 창작가와 예술가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1억 달러를 들이는 등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기업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

세계 최대 PR회사 에델만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약 60%가 인종 차별 시위에 대한 각 기업의 입장을 보고 불매 혹은 구매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56%는 기업이 인종차별에 대해 도덕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답했다. 특정 기업을 선택할 때 제품과 서비스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인종차별에 대한 신념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신념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 출생한 MZ세대는 구매를 결정할 때 가격, 성능 외에도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형태의 소비를 ‘신념(meaning)을 드러낸다(coming out)’라는 의미에서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라고 부른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에 대한 대응, 정치적 이슈, 제조 과정의 공정성 등 다양한 가치가 소비자들에게 고려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은 가격 면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가치와 잘 맞는 기업을 선택해 소비하며 신념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불매한다.

기업은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더 저렴하게, 더 효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을지’만을 고민해선 안 된다. 에스티로더가 소비자가 선택한 색상이 아닌 동양인에게 어울릴 것 같은 색상을 발송한 것은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한 색상을 발송한다면 맞지 않는 색상을 구매해 교환 및 환불을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잘 판매되지 않는 제품의 재고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략된 것은 ‘소비자가 얼마나 인종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지금 당장의 효율성을 위해서 한 행동이 ‘미닝아웃’ 소비를 하는 대중들에게 인종차별로 받아들여져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손해일 것이다.


기업, 인종차별 이슈에 더욱 민감해야 할 때


에스티로더 측은 경위를 파악 중이며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죄했다. 또한 다시 이런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문제가 된 상품을 판매한 백화점은 해당 제품이 판매되던 페이지를 닫았다.

하지만 이미 돌아선 인종차별 이슈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에스티로더를 비롯한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의도와 상관없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내부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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