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앙카라에서 발생한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 피격 사망 사건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뉴스워커] 지난해 11월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최악의 수준까지 악화했던 러시아-터키 관계가 다시 악화일로에 빠졌다. 

19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국영방송 NTV에 따르면 안드레이 카를로프 러시아 대사가 수도 앙카라의 한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사진전에서 축사를 하던 중 괴한이 난사한 총에 맞았다. 

터키 내무부,외신에 따르면 저격범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라는 이름의 터키 전직 경찰관이다. 최근 해고된 그는 이날 경찰로 위장해 전시회장에 잠입한 뒤 대사의 뒤로 접근해 8발 이상의 총을 쐈다.

범인은 총격 직후 왼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 채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 “탄압에 기여한 자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으로부터 카를로프 대사 피살 보고를 받은 뒤 대화에서 "대사 살해는 러시아-터키 관계 정상화와 시리아 사태 해결에 차질을 초래하려는 목적의 도발"이라며 "러시아 대응은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최악의 수준까지 악화했던 양국 관계는 지난 8월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관계 회복에 합의하면서 정상화되고 있다.

▲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보고를 듣고 "이번에 쏜 순항미사일에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럽 언론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英익스프레스의 보도화면. ⓒ英익스프레스 보도화면 캡쳐

◆ 시리아 갈등 러시아-터키..서로 반대편 지원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난민 정착 문제를 놓고 갈등해 왔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 중인 양국은 서로 반대편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정부군을 터키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시리아가 알레포에서 4년 반 만에 승리를 거두고 수니파 반군 철수가 진행되는 중에 일어났다. 알튼타시는 알레포에서 수니파 반군세력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러시아 군사작전에 보복할 의도로 러시아대사를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 대사 피살이 일어나기 전인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몰아내고 최근 탈환한 알레포에서 수천만명이 민간인들이 아직도 대피하지 못하고 생사를 오가고 있다. 이 가운데 러시아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오직 러시아만이 6년동안 이어진 시리아 내전을 끝낼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시리아군의 알레포 동부 전체 탈환은 6년간 계속된 시리아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얻은 '최대 승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알레포는 2012년 7월 서부의 정부군지역과 동부의 반군지역으로 분리돼 4년반동안 시리아내전의 가장 첨예한 전선이었다. 올해 7월 러시아, 레바논 헤즈볼라, 시아파 민병대 등의 지원을 업은 시리아군은 알레포를 봉쇄하고 강하게 압박했다.

반면 서방은 말로는 아사드 퇴진을 주장하면서도, 아사드 정권과 반군의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내전이 장기화할수록 반군이 수니파 급진조직과 뒤섞이면서, 서방의 지원 명분도 약해졌다.

알레포에서 쫓겨난 반군 조직 일부는 락까 등 IS 근거지에서 도주한 IS 대원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친(親)터키계 시리아반군과 터키군은 쿠드르계 민병대와 시리아북부에서 대립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은 쿠르드계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IS 격퇴전을 계기로 쿠르드계가 미국과 밀착된 것이 변수가 될 수 있다.

▲ 국내에 거주하는 리비아인과 이슬람교도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시리아 폭격,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AP)

◆ 러시아-터키, 1877년 이후 대립 양상

러시아와 터키는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던 '앙숙' 관계다. 특히 지난해 11월 터키가 시리아 공습 작전을 펼치던 러시아 수호이-24 전폭기를 격추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당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구동성으로 “터키의 러시아 공격기 격추는 전쟁 개시 명분이 된다”고 강조하며 일촉즐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터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노린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러시아가 진압을 도우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터키 정부는 최근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을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발칸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터키는 역사적으로 대립해왔다.

러시아는 먼저 오스트리아와 비밀협정을 체결하였다. 1877년 1월 15일 체결된 부다페스트 협정에서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 터키 전쟁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는 1877년 4월 24일 터키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어떤 전쟁이든 전시외교는 전쟁상황에 좌우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쟁의 큰 고비는 대개 다음과 같다. 4월에서 7월까지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였으며 터키의 붕괴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터키가 플레브나(Plevna)를 의외로 잘 방어함에 따라 일방적인 승리에 제동이 걸렸다. 플레브나는 11월에 결국 함락됐으나 터키군이 4개월 동안이나 그곳을 방어한 것이 터키를 구해 주었다. 플레브나가 터키 제국의 운명을 40여 년 간이나 더 연장시킨 셈이다.

▲ 13일 교전지역을 벗어나 피란길에 오른 시리아 알레포 동부 주민들 (AP)

◆ 시리아 6년 내전은 '대리전'..시리아 정부군(러시아-이란), 시리아 반군(터키-미국) 각각 지원, 내전 종식 논의는 난민 문제 이해관계에서 시작

시리아 내전 종식 논의는 밖으로 내몰린 시리아 난민을 주변 국가에서 수용하기 곤란한 수로 증가함에 따라 서방 국가 이해관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생한 시리아 내전의 전사자는 47만 명에 달한다. 지난 10월 3일 미 국무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러시아와의 협상을 일시 중지한 상태다. 국무부는 민간인과 구호품 호송대에 대한 공격을 주 원인으로 들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휴전 대상에는 '이슬람 국가'(IS)나 알카에다 연계조직 '알누스라 전선' 등 극단 이슬람 무장 세력을 제외했다. 이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고, 휴전 내용을 위반한 공격도 몇 차례 발생해 휴전 첫 주에만 13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휴전 이전 시리아에서 매달 5000명 정도가 숨진 것에 비하면 희생자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그럼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앞서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군 사이의 평화회담은 지난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 열렸지만 아사드 대통령의 거취에 이견이 생기면서 결렬됐다. 

▲ 사진:BBC

러시아 정부 및 외신에 따르면 두 정상은 시리아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실질적 정치 협상 가동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또 조만간 카자흐스탄에서 이루어질 시리아 정부와 온건 반군 간 협상이 중요한 행보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서방과 터키가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핵심 지역 알레포를 되찾기 위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해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S를 격퇴하고 아사드 정권을 축출하지 않는 한 난민 문제의 해법은 찾을 수 없다"며 내주 의회에서 시리아내 공습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그러나 최근 사상 초유의 난민 위기를 겪으며 난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명의 시리아인을 밖으로 내몬 시리아 내전을 종식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시리아전에도 동참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로이터통신도 앞서 복수의 레바논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이미 시리아내 지상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