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중 1명인 김OO의 심문카드 / 서울시 제공

[뉴스워커] 호주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의 전쟁 경험담을 담은 육성 파일이 올라와 있다.

호주 참전용사 앵거스 맥두걸은 1984년 인터뷰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혀 트럭에 실려 싱가포르 창이 전쟁포로수용소에 끌려간 경험을 전한다.

“그 여자애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트럭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면담자가 놀라 되묻자 맥두걸은 당시 트럭 안에는 포로 말고도 '위안 소녀들'(Comfort girls)이 있었다고 답한다. 맥두걸은 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인이나 중국인 같이 보였다고 회상한다.

2차 대전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연합군이 목격한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소개한 논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 호주국립대학교 교수는 ‘그 여자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으세요? 위안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군과 연합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최근 한 국제학술지에 올해 초 기고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일본군 위안부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었다”며 “포로를 실은 트럭에서 일본군 경비병의 감시 아래 이송된 여자애들에 대해 ‘강제연행’이 아닌 어떤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며 “노예는 보수 없이 일하도록 강제되는 것이 아닌 자유가 부정된 것”이라며 “개념규정상 당대의 통상적인 이해는 금전 지급이 없음이 아니라 자유의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 일본군이 장교구락부와 위안소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가. 1945년 9월.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명의 증언과 역사적 입증자료 등을 분석한 사례집을 발간됐다.

지난 1991년 8월 故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이후 피해자 증언을 담은 서적은 몇 차례 발간됐지만, 증언과 근거자료를 접목한 분석 사례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인권센터와 서울시는 올해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태국 현지를 찾아 발굴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심문자료, 스틸 사진, 지도 등 사료를 발굴했다.

서울대 인권센터와 함께 작업한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반 시민이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매우 높은 데 반해 정작 위안부 백서조차 발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며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과 같이 자료와 증언집으로 기록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안부' 실태를 명확히 증명해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발간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는 피해 사례를 증언한 10인은 미디어 등을 통해 비교적 많이 알려졌던 분들 가운데 선정했다. 많은 이들에게 그저 ‘위안부’ 피해 할머니로만 인식돼 있는 피해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소개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다.

또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버마 등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걸쳐있고, 한국인 피해 여성들이 이곳저곳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피해자들을 선정했다.

10인은 김소란(가명, 필리핀), 김순악(중국·내몽고 장가구), 박영심(중국 남경, 운남), 문옥주(중국 동안‧버마), 배봉기(일본 오키나와), 김복동(싱가포르‧인도네시아), 김옥주(중국 해남도), 송신도(중국 무한), 박옥련(남태평양 라바울), 하상숙(중국 무한) 할머니다.

1명은 본인 요청에 따라 가명 처리했고, 나머지 9명은 실명이다. 지난 1991년 8월 故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이후 지난 26년간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서적은 몇 차례 발간된 적 있지만, 증언과 근거자료를 접목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사례집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위안부’ 실태를 보다 명확히 증명해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위안부’ 연구에 있어 일본 정부‧군 공문서를 활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상황에서 이번에 발견한 미국 및 연합국 생산자료는 ‘위안부’ 실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역사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위안부 이야기’ 내용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생애사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 기존 증언집은 피해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았다. 

또 1인칭 시점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읽는 이로 하여금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피해 경로와 귀환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험난했던 여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는 증언과 함께 연합군 자료의 포로심문 보고서와 포로심문 상황 등을 통해 입증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동안 보아왔던 지도에 비해 상당히 정확한 동선이라 할 수 있다.

또 피해자로서 50여 년 동안 침묵을 강요받았으나 세상의 편견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용감하게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 이후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등 활동가들과 치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넘어 세상까지 위로하려 했던 피해 여성들의 활동을 그렸다.

▲ 포로심문보고서 일부 / 서울시 제공

 

◆ 일본군 위안부 학살기록 원본 발굴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 사실을 기록한 문서 원본이 공개됐다.

서울대에 따르면 이 대학 인권센터 연구팀은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현지조사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문서를 발굴하고, 이 연구 성과를 4일 교내 워크숍에서 11월 발표했다.

미·중 연합군이 기록한 중국 원난원정군의 1944년 9월15일자 작전일지를 보면 '(1944년 9월) 13일 밤 (탈출에 앞서) 일본군이 성 안에 있는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원난원정군은 1944년 6월부터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고 9월7일 송산을, 일주일 뒤인 14일 등충을 함락했는데, 일본군이 등충이 함락되기 직전인 13일 밤 위안부를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문서의 내용은 재미사학자 방선주(82)씨에 의해 1997년 언론에 처음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문서 소장처가 확인되지 않았고, 문서 전체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발굴은 원본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팀에 속한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위안부 학살을 증언 차원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을 하기는 어렵다"며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을 증명하는 문서"라고 설명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이 문서뿐만 아니라 일본군 포로 심문보고서, 일본군 노획자료 번역본, 포로수용소 명부 및 송환선 승선 명부 자료 등도 함께 공개됐다.

이같은 자료는 향후 위안부 연구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추가로 확인하는 절차 등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정부의 백서는 물론 한국 연구자가 발간한 자료집도 없다"며 "앞으로 미국을 포함해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 남아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일본 정부가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한일 스와프 논의 중단과 주한 일본대사와 영사 일시 귀국 등 강경 조치를 잇달아 내놓은 6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위로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아베, 10억엔 냈다 소녀상 문제 한국이 성의를 보여라...여야 4당의 반응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10억 엔의 돈을 냈다며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8일 NHK 프로그램인 '일요토론'에 출연, 부산 총영사고나 앞에 설치도니 소녀상에 대해 "한국이 확실히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소녀상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인가"라고 묻는 사회자 질문에 "그렇다"고 못박았다.

아베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며 "일본은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한국도 (합의 후속조치를)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아베 총리가 10억엔을 냈다며 '소녀상 문제'에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고 했다. 3선 도전도 시사했다"면서 "집권과 총리직을 위해 한일관계 현안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여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한 점을 지적하며 "한일정부가 소녀상 문제를 두고 이면합의를 했다는 확증 같아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한일 위안부 협정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위임없이 체결돼 '무권대리'로서 무효다. 또 정부간 공식 협정이 아니라 양국 외교장관이 서명한 문서에 불과해 차기 정부를 구속하지 않는다"면서 "아베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민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바른정당도 장제원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아베 총리가 소녀상 문제를 거론하면서 국가적 신뢰 문제와 '10억엔' 합의를 언급해 우리 국민 자존심을 건드리고 분노를 사고 있다"면서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용이 전제가 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한 뒤 추가 합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산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에 앞장선 ‘부산겨레하나 부산금정지부장’ 한연주(47)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소녀상은 국민의 힘으로 건립된 만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소녀상을 지켜나가겠다”며 "앞서 그들의 만행에 대해서 진실로 머리 숙여 사죄하는 마음이 우선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군 번역통역국(ATIS) 연구보고서 120호: 일본군의 위락시설' 표지(왼쪽)와 결론 부분 / 사진 서울시 제공

 

◆ 소녀상 철거가 합의사항인 것처럼 발언…아베, 북방영토 협상 실패 만회하려 한국 공격카드 꺼낸듯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한·일 합의 뒤 소녀상 철거가 의무사항이 아니며 이면 합의는 없었음을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수세적인 정부의 태도가 불필요한 억측을 만들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양국 정부가 재작년에 합의한 취지를 존중하면서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를 극구 회피하면서 우경화 행보를 펼쳐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부산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국 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일시귀국 시키는 초강수를 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우선 아베 총리의 잇따른 외교실패 등으로 실망한 우익 보수층을 결속해 국내 지지기반을 다지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본 안팎에서는 아베 정권이 이처럼 강공에 나선 건 최근 아베 총리의 잇단 외교실패와 지지율 하락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깜짝 회담을 성사했지만 기대와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의 반환에 진전은 없이 러시아에 경제적 지원 보따리만 안겼다는 비난이 일자 부산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빌미로 한국 공격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일본정부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자 이에 반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조치했다. 아울러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와 통화 스와프 협상까지 중단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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