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예비 장애인 보조견 거부 사건과 우리 사회 장애인의 위치

국내 한 대형마트가 예비 장애인 안내보조견의 마트 출입을 통제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국내 한 대형마트가 예비 장애인 안내보조견의 마트 출입을 통제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1팀 기자>

대형마트, 퍼피워커 거부?


지난 11월 29일, 한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 꼬리가 늘어진 채 바닥에 앉아 있는 안내견의 모습이었다. 주황색 조끼에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목격자의 글에 따르면 입구에서 출입 승인을 받았는데도 해당 마트 지점의 매니저는 “장애인도 아니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라며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날 강아지를 동반한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퍼피워커’였다. 안내견 훈련이 예정된 강아지를 생후 7주부터 약 1년간 일반 가정에서 맡아 위탁‧양육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퍼피워킹’이라고 한다. 그리고 퍼피워킹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를 ‘퍼피워커’라고 한다. 사건 당일 매니저가 거부한, ‘장애인도 아니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은 이 퍼피워커였다.


법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장애인복지법 제40조제3항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4항에 따라 지정된 전문훈련기관에 종사하는 장애인보조견 훈련자 또는 장애인 보조견 훈련 관련 자원봉사자가 보조견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위에 적힌 훈련 관련 자원봉사자에는 사건에 휘말린 퍼피워커도 포함된다. 법이 허락한 일을 고성으로 막아선 이 황당한 상황은 예비 안내견의 불안과 퍼피워커의 눈물로 이어졌다. 네티즌은 이에 ‘안내견 거부?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 ‘입구에서 막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차분하게 안내했어야 한다’, ‘직원 교육을 잘못한 마트 측에도 잘못이 있다’라고 비판했다.


마트 측, 사과도 문제?


다음날인 11월 30일 오전, 해당 마트 인스타그램으로 항의글이 쏟아졌다. 마트측이 사과문을 해당 계정에 게시한 건 30일 오후였다. 사과문에는 장애인 안내견뿐만 아니라 퍼피워커에 대한 지침 및 현장에서의 인식을 명확히 하고, 긴급 전사 공유를 통해 동일 사례가 발생치 않도록 적극 대처할 것을 약속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네티즌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견주님을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이 무성의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위법이라는 것이다. 형식적인 사과문에 실망을 표하며 불매운동을 선언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불매운동 확산 조짐이 보이자 지난 1일 마트측은 전 지점에 안내견 출입 가능 안내문을 게시했다. ‘안내견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라는 제목 아래에 식품매장, 식당가도 출입 가능하다는 내용과 주의사항이 적혔다. 이어진 대처가 대중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편 보건복지부에도 이번 사건 관련 민원이 꾸준해 송파구청에서는 훈련 중인 예비 안내견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것을 들어 200만원의 과태료 부과를 논의 중이다.


논란의 해당 마트만 못 들어갔을까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장애인복지법이 너무 쉽게 무시당한 사실이 재조명됐다. 한 시각장애인이 7번의 거절을 당한 뒤에야 안내견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은 영상이 SNS에 게시됐는데, 영상 속 시각장애인은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배를 탔는데 개는 안된다며 차들이 주차된 곳으로 쫓겨난 적도 있고, 택시 승차 거부는 일상이라고. 심지어는 경찰이 출동해도 ‘저 사람이 개하고 같이 타려고 했다’라며 떳떳한 경우도 보였다.

이번 사건은 안쓰러워 보이는 ‘강아지’의 사진, 비교적 욕하기 쉬운 ‘대기업’, 부정적인 감정이 빠르게 퍼지는 ‘SNS’가 만나 두드러졌지만, 그들은 일상적으로 거부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동안 들어가지 못한 곳은 그곳만이 아니었으리라.


함께 사는 세상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동반 출입을 거부하는 곳에 이유를 물으면 일률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니까.’ 이는 비단 시각장애인 안내견에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청각장애인들이 뉴스 수어 통역 화면 확대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한 어느 방송국의 대답은 위와 비슷했다. ‘비장애인 시청권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나라 안에 있다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밥 먹을 곳 하나 찾으려고 빙빙 돌아야 하고 누군가는 세상 돌아가는 일 하나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말하는 ‘함께’는 아닐 테니까. 그러나 늘, 너무 쉽게 말한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정말 그런 세상은,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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