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까지 연간 출생아 숫자는 34만9000명이다. 역대 최저치다. 예년 추세를 감안할 때 연간 출생아 숫자가 40만6000명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000년만 하더라도 연간 출생아 숫자는 63만4501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 55만4895명으로 감소하는 등 추세적으로 감소했다. 2002년 이후에는 줄곧 40만명대에 머물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계속 43만명대를 기록했다. (자료=통계청)

[뉴스워커]  "10여년간 저출산 대응을 위해 80조원을 투입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중장기 정책대응방향’을 주제로 열린 중장기전략 세미나에서 "저출산 대책들의 효과들을 돌이켜 보고 효과가 높은 정책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25일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자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정부는 보육 중심으로 저출산 정책을 펼친 것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토론회에서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산하 연구작업반(이하 연구작업반)의 저출산 대응 정책 평가와 정책 대안 제안이 공개됐다. 

연구작업반은 “기혼자의 출산율 제고에 중점을 두어 보육 중심으로 투자하면서 출산율 제고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연구작업반은 “‘일·가정 양립 여건 개선’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한편,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노동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 결과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효과적이었고, 주거비용 안정도 출산확률을 증가시켰다”는 게 그 근거다. 또 “전문가 평가 결과 저출산 정책 중 ‘일·가정 양립 여건 개선’ 정책의 우선순위가 높았다”고 연구작업반은 밝혔다.

▲ 최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이슈페이퍼에 게재된 '20~30대 청년의 혼인에 미치는 영향요인'을 분석한 결과, 남성노동자 임금 상위 10%(10분위)의 기혼자 비율은 82.5%로 하위 10%(1분위) 6.9%보다 1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분위도 49%로 절반에 못 미쳤다. 임금수준이 높을수록 기혼자 비율도 계단식으로 올라갔다. (자료=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정부정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국민이 동참해 다 같이 해법을 풀어나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실제 한국의 1990년대 이후 통계를 보면 결혼한 사람들의 출산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 최소한 1990년 이후 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화·비혼화가 원인인데, 정책대상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혼인율부터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 청년에게 '안정적이고 적정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이슈페이퍼에 게재된 '20~30대 청년의 혼인에 미치는 영향요인'을 분석한 결과, 남성노동자 임금 상위 10%(10분위)의 기혼자 비율은 82.5%로 하위 10%(1분위) 6.9%보다 1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분위도 49%로 절반에 못 미쳤다. 임금수준이 높을수록 기혼자 비율도 계단식으로 올라갔다.

김유선 선임연구원은“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체제에서 일과 생활의 양립이 어려워 기혼여성의 상당수가 자녀출산 및 양육기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기혼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가계 보조적 형태를 띠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유선 선임연구원은 또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기혼여성의 자녀출산과 양육지원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청년들에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적정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저출산 정책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 2014-2016년 전국 월별 출생 추이 (자료=통계청)

◆ 아이 울음소리 줄었다...작년 합계출산율 1.2명 '이하'…본격화되는 '인구절벽'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3년만에 1.2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연간 출생아 숫자는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까지 연간 출생아 숫자는 34만9000명이다. 역대 최저치다. 예년 추세를 감안할 때 연간 출생아 숫자가 40만6000명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000년만 하더라도 연간 출생아 숫자는 63만4501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1년 55만4895명으로 감소하는 등 추세적으로 감소했다. 2002년 이후에는 줄곧 40만명대에 머물렀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계속 43만명대를 기록했다. 잠정치는 2월에 발표된다.

출생아 수는 월별로 등락을 보이고 있지만 전년 동월비 통계는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려 지난해 11월부터 13개월 연속 출생아수가 줄고 있다. 

출산뿐 아니라 결혼 건수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혼인 건수는 2만5,400건으로 2.3% 감소했다. 1∼11월 누적 혼인 건수는 25만3,300건으로 6.0%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요즘 계획임신이 많고 12월에 아이를 낳으면 같은 나이에 비해 신체 발달이 가장 늦기 때문에 1월에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한다"며 "결혼을 많이 하는 연령대인 30대 초반 인구가 전년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 남녀 고용평등 수준과 출산율의 상관관계 (자료=골드만 삭스, Eurostar and GS Calculations)

◆ 정부, 저출산은 복합 사회현상인데...각 부처별 주먹구구 정책으로 국지적 대응이 문제.. "복지부가 각 부처의 과제를 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는 지금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인의 '빚내서 사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줘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부 정책은 이를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시키는 방향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헤럴드경제>, 정부 "출산율, 2020년 1.5명 달성"..20·30代 "글쎄")

"저출산은 보육과 사교육비에 대한 비용 부담, 고용에 대한 불안감, 주거비 상승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돼서 나타난 결과"라며 "아이를 키우는 데 1인당 수억원(201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3억 896만 원)이 들어가는 사회에서 출산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일차방정식 수준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한겨레>)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은 18일 열린 국회 저출산고령사회특별위원회(특위) 참석 후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위에서 저출산 컨트롤 타워 강화를 주문했다"며 "향후 차기정부의 인수위원회 등에 전담 부처 신설 등 (조직개편)안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난 10년간 137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한번 고꾸라진 출산율을 되돌려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와 국회 모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정부조직개편이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특위는 ▲총리실 산하에 장관급 '인구처(가칭)'을 신설하거나 ▲현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강화하기 위해 장·차관급 상임위원을 두고 산하에 사무국을 두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위원회 산하에 고위공무원과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정책개선기획단을 만드는 방향도 제시된 상태다. 

만약 어느 방향이든 저출산·고령화 전담기구가 출범한다면 현재 복지부가 맡고 있는 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방 차관은 "인원수는 몇 백 명 단위는 어렵고, 50~60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담기구 신설이 자칫 조직 크기만 불려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옥상옥' 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 자료=각 부처 취합

◆ 저출산 해법의 키워드...가족과 일, 교육..삼각 축의 균형 회복 시급..취업·주거 지원 혼인율 제고…이를 뒷받침 할 정책 절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몇 해 전 ‘2013년에 태어난 아기가 20년 뒤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디일까’라는 조사를 해 발표한 적이 있다. 
 
1위는 스위스였다. 10점 만점에 8.22점을 받았다. 2위는 8.12점의 호주, 3위는 8.09점을 얻은 노르웨이였다. 이어 스웨덴과 덴마크, 싱가포르가 8.0점 대로 근소하게 4~6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독일은 7.38점으로 공동 16위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순위는 어떠했을까? 7.25점으로 19위였다. 일본과 프랑스 영국이 우리보다 뒤진 25~27위였음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점수였지만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하면 점점 순위가 밀려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 경제학자 헤리 덴트가 주창한 ‘인구 절벽’의 시대에 와 있다. 인구절벽이란 ‘한 세대의 소비가 정점을 찍고 감소해 다음 세대가 소비 주역으로 등장할 때 까지 경제가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덴트는 한국이 2018년에 처음으로 인구 절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2017년이 한국의 ‘인구절벽 원년’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한 때 심각한 저출산 위기에 빠졌던 유럽의 경우 양성평등에 기반을 둔 휴가제도, 잘 정비된 공교육 제도, 육아의 사회화 등 출산과 양육이 직장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꾸준히 제도를 정비해 출산율을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결혼시장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여성 가계보조자 모델’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기혼여성의 자녀 출산과 양육 지원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안정된 적정임금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저출산 정책은 실효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유럽 국가가 부모 맞춤형 보육서비스를 제공해 저출산을 극복한 사례도 참고할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미경 육아정책연구소 육아정책연구실장은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을 미리 겪은 유럽 국가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육아지원정책이 아동의 생애주기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고 부모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보육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요국 보육정책 사례와 시사점'  세미나에서 말했다.

스웨덴의 경우 취업어머니 뿐만 아닌 비취업어머니를 대상으로 하는 육아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영국은 어머니의 취업 여부보다 '근로시간'이 보육료 지원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권 실장은 "저출산을 탈피하고 여성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려면 요구에 따라다니는 '대중추수적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출산율 제고를 위해 ▲ 1세 미만 영아의 가정 내 보육 확대 ▲ 보육기관 간 편차 축소 ▲ 아버지의 양육참여 증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