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텔레토비’(Teletubbies)라는 유아 프로그램이 기억나는가. 1997년 4월 영국 BBC에서 방송을 시작해 2001년까지 방송된 텔레토비는 120개국, 45개 언어로 번역된 지구촌 인기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99년부터 KBS1 TV 에서 ‘꼬꼬마 텔레토비’ 란 이름으로 아침시간에 방영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장난감 문구류 등 다양한 관련 상품까지 ‘인기몰이’를 했다. 유아 프로그램으로는 기록적인 시청률 17%와 주중 100%의 광고판매율 등을 세웠다.

<두산백과> 등에 따르면, 머리에 안테나, 배에는 텔레비전을 달고 있는 각각 4가지 색의 옷을 입은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실제이름은 팅키윙키, 딥시, 라라, 포) 등 4명의 인형들이 건강하게 춤추면서 반복동작과 율동을 보여주는 유아 상대의 방송프로그램이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방송무대는 텔레토비랜드로, 원만한 언덕 위에 갓난아이의 얼굴을 한 태양이 미소 짓고, 토끼가 뛰어 놀고,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마법의 풍차가 도는 공상의 세계이다. 이곳에 사는 4명의 텔레토비가 “빠빠, 맘마” 등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커다란 엉덩이와 짧은 다리로 뛰고 구르면서 집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뿐이다.

프로그램 중반에 텔레토비의 배에 달린 TV를 통해 현실의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영상을 수신하여 약 3분 동안 VTR을 2회 정도 반복하여 보여준다. 이것은 줄거리는 없고, 여유 있게 스토리를 전개하여 1~4세 유아의 반복욕구에 응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 프로그램은 철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진 유아교육과 언어학의 집결체이기 때문에 영국의 언어학자 앤디 대번포트가 제작에 참여했고, 국내 제작분도 대학의 유아교육 전문인력이 감수했다.

이 프로그램이 다른 유아프로그램과 구분되는 점은 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느리고 반복되는 내용에 지루해하던 어른들도 차츰 내용에 빠져들면서 유아 언어를 흉내 낼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은 평화롭고 따뜻한 배경화면과 아무 고민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는 캐릭터가 삶에 지친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텔레토비에서 ‘보라돌이’를 연기한 배우 사이먼 셸턴 반스가 지난 23일 숨을 거뒀다. 반스는 영국 리버풀의 한 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그의 나이 52세였다.

반스는 발레 안무가로 활동하다가 드라마에 투입돼 보라돌이 역으로 약 70개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텔레토비는 캐릭터들이 대사를 거의 하지 않고 의성어 정도만 표현하는 드라마여서, 높은 수준의 ‘몸 연기’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와 공통점이 많은 셈이다. 보라돌이는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텔레토비를 둘러싼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마법 핸드백’을 들고 다닌 보라돌이에 대해 성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동성애자를 은유적으로 묘사한 캐릭터’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군용벙커를 닮은 텔레토비의 집을 두고는 제3차 세계대전을 염두에 둔 세뇌교육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심지어 1947년 미국 로스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텔레토비로 둔갑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평생 나이를 먹지도, 아프지도 않을 것 같았던 유아극 속 주인공의 죽음은 오래된 각자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필자도 지금 대학 졸업반인 무남독녀가 유치원에 다닐 즈음 텔레토비를 같이 보며 ‘웃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또 관련 캐릭터 인형을 사주느라 돈 깨나 써댔다.

지구촌에 숱한 화제를 뿌렸던 텔레토비는 한국에서는 풍자 코미디로 거듭난 뒤에 그보다 더한 시련을 맞았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2013년 말 조원동 당시 박근혜 정부 대통령경제수석이 ‘대통령 뜻’이라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희화화한 ‘여의도 텔레토비’ 등을 CJ 계열사가 만든 것이 이유라고 한다.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사기업 오너를 갈아 치운 배경에 텔레토비가 있었다는 것에 ‘쓴 웃음’이 난다.

텔레토비에서 뚜비를 연기한 배우 존 시미트는 “하나의 별이 떠났다. 편히 잠 드시길. 그와 함께했던 좋은 시간을 기억하겠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잊힌 기억 한 토막을 떠오르게 해 준 텔레토비 주인공의 명복을 혹한(酷寒)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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