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 '까짓거 월드컵 안 나가도 된다', 이정효 '얼렁뚱땅 그만', 온도 차 있는 김판곤의 시각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거쳐 U-23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그다음, 연수차 FC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를 역임한 그는 그 어떤 클럽 감독 경력도 없이 2009년 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 말 많던 황선홍도 이때는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감독 선임시 홍명보의 자격 논란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본문 중에서]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거쳐 U-23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그다음, 연수차 FC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를 역임한 그는 그 어떤 클럽 감독 경력도 없이 2009년 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 말 많던 황선홍도 이때는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감독 선임시 홍명보의 자격 논란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본문 중에서]

2024927, 울산 HD의 김판곤 감독이 대전과의 K리그1 3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직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발언은 77일 이후 계속된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과 924일 국회 현안질의에 대한 반응이었다.

김 감독은 "제가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 검증한 부분을 두고 모든 감독을 '검증'해야 한다고들 생각하는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는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대표팀 감독은 최고 레벨의 지도자인데, 'PPT' 같은 것을 요구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정치하시는 분이나, 유튜버나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직언하기도 했다.

반면 광주FC 이정효 감독은 28"월드컵에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습을 정확하게 하고 매듭을 짓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 대충 하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발언은 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차를 여실히 드러냈다. 과연 김판곤 감독의 발언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의 달라진 스탠스 뒤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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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홍명보 선임 논란으로 회자되던 '벤투' 추억 속의 김판곤은 어디로?


김판곤 감독은 한때 한국 축구의 개혁가로 여겨졌다.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정력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논리적인 설득 과정,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진 성공적인 월드컵 캠페인. 이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감독 선임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이는 전임 감독 클린스만과 현 감독 홍명보의 선임 과정에서 나온 온갖 논란들에 대해 지친 팬들이 좋은 시절이었던 김판곤 감독의 이력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김판곤 감독의 발언은 과거의 그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최고 레벨의 지도자에게 PPT를 요구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는 그의 말은, 과거 그가 주장했던 '체계적이고 투명한 선임 과정'과는 배치된다. 이에 대해 누구보다 투명한 절차를 추구했던 그가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의문을 갖는 팬이 많다.

벤투 감독을 예로 들면서 그가 했던 논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벤투 때 한번 그랬던 것 가지고 모든 감독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는 그의 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럴 수도 있다. 당시 벤투 감독은 하락세를 타는 감독이라 검증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모든 부분을 수치화,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진짜 모시고 싶은 감독을 애원해야 할 때, 이런 요구와 상관없이 제발 와달라고 사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는 아직도 축구 변방 지역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에 위치한 국가도 아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한국 축구가 과거에 비하면 월드클래스 수준의 선수들도 많아지고 유럽 진출도 활발해졌고 수준도 올라갔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난 명장들은 한국에 오길 꺼린다. 이미 유럽국가에서 한창 거론되는 감독이라면 굳이 한국에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인 감독에 있어서 우리는 항상 정말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괜찮은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노력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홍명보 감독이 과연 이러한 절차를 모두 건너뛰어 검증이 끝난 감독인가?’라는 점이다. 벤투 감독 선임 당시 김판곤은 "감독의 경력, 전술, 리더십,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김판곤 감독이 한 발언을 보면 홍명보 감독은 이미 검증이 끝난 최고의 감독이니 면접은 보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면접 프리패스 논란 홍명보 감독, 심층면접 본 바그너, 포옛보다 최고 레벨 감독?


김판곤 감독의 발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홍명보 감독을 '최고 레벨'로 분류한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경력을 자세히 살펴보자. A대표팀도 아닌 올림픽 동메달, K리그 우승 2연패가 전부다. K리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리그에서의 활약이 세계적 수준의 A매치에서 검증된 감독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또한, 이미 한차례 국가대표 감독 경험이 있던 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27위를 하며 최악의 성적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실패했다.

반면 다비트 바그너, 거스 포옛 등 최종 후보였던 감독들의 경력은 어떠한가? 바그너는 EPL 노리치 시티를 이끌었고, 포옛은 유로파리그 우승 경력이 있다. 유럽 축구가 무조건 세계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축구의 본고장이자 지금도 수많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활약하는 유럽 무대를 못본채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이들 후보는 심층 면접까지 거쳤지만,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통지받지도 못했다. 이것은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이런 과정 없이 선임되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프로세스인가?

더불어 김판곤 감독 자신이 선임한 벤투 감독의 경우를 살펴보자. 벤투는 스포르팅 CP에서 FA컵 우승 2,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등의 성과를 냈고, 포르투갈 대표팀을 유로 4강까지 이끌었다. 이런 벤투도 단지 하락세라는 이유로 면접과 훈련 세션 검토를 거쳤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왜 이런 과정 없이 '최고 레벨'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국내 감독들과 비교해 봐도 홍명보 감독의 '최고 레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김도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에 K리그 우승 6회를 달성한 최강희, FA2연패와 리그 우승 2회를 기록한 황선홍 등의 경력과 비교해도 홍명보의 성과는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K리그 2연패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최고 레벨로 검증됐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감독 후보로 거론됐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감독들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에르베 르나르 감독은 잠비아와 코트디부아르를 이끌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달성했고, 카를루스 케이로스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 레알 마드리드, 포르투갈, 이란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홍명보 감독의 경력이 검증을 프리패스 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 축협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던 홍명보. 특혜논란 무관치 않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의 홍명보 감독의 특혜논란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다. 홍명보는 2006년부터 대표팀 코치로 특별 대우를 받았다. 당시 축구협회 정관에 따르면 대표팀 코치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러나 홍명보는 2급 자격증만으로 코치가 되었다. 이것을 특혜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거쳐 U-23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그다음, 연수차 FC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를 역임한 그는 그 어떤 클럽 감독 경력도 없이 2009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다. 그 말 많던 황선홍도 이때는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감독 선임시 홍명보의 자격 논란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이때의 결과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후 U-23 대표팀 감독을 거쳐 그 말 많던 홍명보호 1기를 거치게 된다. 이후 첫 클럽 감독이었던 중국 항저우 뤼청에서는 갑급 리그로 강등되었다.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홍명보는 분명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선수와 지도자의 자질은 다른 것이다. 그는 항상 축협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격 논란에도 바로 대표팀 코치가 되었고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보이고 있다. 홍명보는 최종 후보들을 제치고 면접도 없이 선임되었다. 이는 '공정한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이번 특혜논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맥락인 것이다. 그런데도 김판곤 감독은 이를 옹호하고 있다. 반면, 팬들은 홍명보 감독이 대체 왜 면접도 거치지 않을 만큼 최고 레벨의 감독인지?’를 묻고 있다. 그 설명을 해달라는데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가?


정치인유튜버 일침. 축협과 같은 맥락, 그 유튜버 안에는 전 전강위원 박주호도 있어


김판곤 감독의 '정치인, 유튜버' 비판은 조금 실망스럽다. 이는 축구협회의 논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크다. 쓸데없는 잡음과 유튜브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정보를 양산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튜버' 중에는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도 포함된다. 박주호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축구협회의 비정상적인 감독 선임 과정을 폭로했다. 이는 단순한 '유튜브 조회수 장사'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축구 팬들도 유튜브를 하고 잡음을 만들어내는데 그것도 그들의 욕심이란 말인가? 특히 주목할 점은, 김판곤이 현재 울산 HD의 감독이라는 것이다. 울산 팬들은 불과 몇 달 전 홍명보 감독을 지키기 위해 트럭 시위까지 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축협을 비판하며 대표팀 감독을 안 할 것을 내비쳤다. 울산 팬들도 현직 K리그 감독을 빼가는 축협에 행태에 반발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정당한 절차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임생 이사와 빵집에서 대면한 불과 몇 시간 만에 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연히 분노할 만한 일이고 잡음이 나올만한 일이다. 팬들이 잡음을 만든 것이 아니다. 축협과 홍명보 감독이 그 원인이다.

김판곤 감독의 발언은 자칫 이런 내부 고발자의 용기를 욕심으로 치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더불어 이는 축구 팬들의 정당한 비판을 '선동'으로 치부하는 축구협회의 태도와 맥을 같이한다. 건전한 비판을 막고 현상 유지만을 추구한다면, 한국 축구의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다.


월드컵에 나가야 하니까? 결과가 좋다고 과정을 잊을 수는 없는 것. 책임은 축협이 져야


"월드컵에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질 거냐?" 이것이 김판곤 감독의 질문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흐리는 질문이다. 책임은 명확하다. 축구협회와 그들이 비정상적으로 선임한 감독이 져야 한다. 클린스만 감독 때에도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컵은 나가야 하니까라는 논리로 넘어갔다. 또다시 그럴 것인가?

이것은 '결과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우리는 2024년에 살고 있다. 이제는 과정도 중요하다. 많은 팬이 말한다. "까짓거 월드컵 안 나가도 된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 축구의 정상화다. 당연히 팬들도 우리 축구가 월드컵에서 성공하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그렇지만 팬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월드컵 진출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프로세스를 통해 발전하는 축구다.

이정효 감독의 말을 되새겨보자. "월드컵에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수습을 정확하게 하고 매듭을 짓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자세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스포츠도 축구도 그것에 맞게 선진적인 모습을 보이길 원한다. 과거처럼 애국주의에 빠져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잘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과정과 결과가 의도한 대로 납득할 수 있게 나오기를 바란다.


축협 은인 홍명보, 홍명보 울산의 후임, 현대가의 감독. 결국, 이 그물을 벗어날 수 없나?


김판곤 감독의 과거 행적은 분명 존경받을 만했다. 팬들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김판곤은 공정과 투명의 아이콘이었다. 벤투 때의 많은 논란을 일축한 것도 그의 그런 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이에 우려하는 팬들도 많아 보인다.

물론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별로 영향력 없었던 김판곤을 축협 행정의 핵심으로 추천하고 밀어준 은인 홍명보, 그리고 그가 떠난 울산의 후임, 현대가의 감독. 물론 홍명보가 없어진 축협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나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지금, 다시 알게 모르게 현재의 김판곤 감독은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한쪽을 얻으면 한쪽을 잃을 수도 있는 법. 홍명보 감독은 인맥 축구로도 논란이 많았다. 김판곤도 그 늪에 빠져버릴 것인가? 홍명보 라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한때 김판곤 감독은 외로이 싸우며 한국 축구의 개혁을 이끌었다. 김판곤 감독은 울산으로 오기 전까지 해외를 떠돌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행정가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모습도 증명해 냈다. 그때의 모습이 더 멋있었다. 그래서 팬들은 그가 국내로 들어온다고 했을 때 환영했다. ‘혹시 그의 능력이 어지러운 한국 축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와 팬들 사이에는 온도 차가 확연했다. 이번 축협 사태를 정리하는 그의 생각이 이것이 다가 아닐 것을 희망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팬들에게는 슬픈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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