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꺾고 U-20 월드컵 제패, '은둔의 강호' 북한 여자 축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 여성의 스포츠 참여도 이전보다는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몇몇 종목에서 두각을 보일 뿐, 메이저 종목에서는 남성들의 영역이 되는 것이 흔하다. 세계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도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축구 같은 스포츠는 남성이 주도되어서 이끌어왔고 지금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그것에 비하면 북한 여성의 사회 및 스포츠 참여는 훨씬 더 빨랐다. 그것이 비록 좋은 의미는 아닐지라도...[본문 중에서]](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409/349629_360084_3832.jpg)
지금 우리는 축협과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체육계 논란으로 매우 시끄럽다. 믿었던 올림픽 축구의 탈락, 핸드볼을 제외한 단체구기 전멸, 그리고 각종 논란.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축구의 성적은 저조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26 북중미 월드컵 하나이다.
축협의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이 국회로 나와 현안질의를 하기 하루 전인 23일. 모두가 심각한 이 시점에서 뜻밖의 존재가 세계 무대에서 웃었다. 북한 여자 축구가 콜롬비아 보고타의 밤하늘에 빛났다. 이날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북한과 일본의 아시아 대륙 맞대결이 펼쳐졌다. 숨 막히는 접전 끝에 북한은 1-0 승리를 거두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반 15분에 터진 최일선의 결승골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로써 북한은 독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이 대회에서 세 번 우승한 국가가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북한의 행보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7경기 전승, 총 25골을 몰아넣으며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특히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1-0으로 제압한 것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과 감탄을 동시에 안겼다. 최일선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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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자 축구의 강세는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2006년과 2016년 U-20 월드컵 우승, 2008년 준우승 등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내왔다. 성인 대표팀 역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AFC 여자 아시안컵과 EAFF 여자 동아시안컵에서 각각 3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16강에서 개최국 콜롬비아를 만나 접전 끝에 탈락했다. 한국 여자축구도 10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며 실력을 끌어올렸으나 북한과 비교하기엔 매우 부족하다. 북한의 한국 성인팀 상대 전적은 20전 16승 3무 1패로 북한의 절대 우세다.
분단의 그늘 속에서 피어난 불꽃, 체제경쟁, 그 생존의 에너지를 그라운드로!
남북 분단의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여자 축구의 비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체제 경쟁의 장이 되었다. 특히 축구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스포츠로,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최적의 수단이었다.
북한에게 여자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존엄과 자존심을 건 '총성 없는 전쟁'이다. 윤덕여 전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북한에서 스포츠는 총포성 없는 전쟁이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스포츠는 때때로 자국의 애국심이 모인 대리전쟁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여자 축구 선수들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전사'로 인식된다.
게다가 분단은 북한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70년대 이전까지 김일성 치하에서 북한은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앞서나갔다. 2024년 현재, 우리가 그들보다 몇 배는 더 풍요롭게 살고 북한보다 국력도 강하다. 당연히 스포츠는 국력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 지금보다 국력의 차이가 훨씬 적었던 70년대를 돌아보면, 북한이 우리보다 잘하는 스포츠들도 많았다. 그것이 그때의 그들에게는 당연했다. 체제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지만, 북한 지도부는 이것으로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들은 그들의 체제가 옳다고 믿는다. 스포츠는 이런 점에서 적국인 한국에 자국의 국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좋은 정치·외교적 수단이다. 아직도 강건하다고, 우리는 ‘강성국가’라고… 따라서 그들에게 국제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체제 경쟁의 승리로 나아가는 조국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는 '성전'과도 같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선수들이 극한의 노력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의 선전은 주민들에게 뭐 하나 줄 것 없는 북한 정권이 그나마 줄 수 있는 자긍심이기도 하다.
북한식 몰빵외교 닮은 여자축구, 안되는 것은 과감하게 접어라! 틈새시장을 찾아라!
북한에서 여자 축구가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포츠는 때때로 자국의 국력을 해외에 간접적으로 과시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북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들 한두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죄다 못하는 줄 알았던 그 나라가 의외의 영역에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면? 사람 하나를 보더라도 달라 보일진대, 국가 단위로는 더 하지 않겠는가?
1986년 FIFA 총회를 기점으로 북한은 여자 축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시작했다. 이 시기가 되면, 이미 경제력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북한이 우리에게 밀리던 때였다. 냉전도 말기로 치닫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한국은 여자 축구에 관심도 없을 때였고, 마침 FIFA가 여자 월드컵 개최를 결정하자, 북한은 이를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높일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 것이다. 선제적으로 집중 투자하고 육성한다면 또 하나의 종목에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정책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적 결정이었다.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외교적 잠재력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스포츠 종목 하나 육성하는 데는 엄청난 투자가 요구된다. 그 당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북한을 경제력에서 앞서갔고, 88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며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을 시기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에서 잘 드러나듯 이때까지도 남북한은 유엔 가입을 놓고 세계 각지에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적 위상이 중요한 외교전에서 그것을 따라가기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돈이 북한에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한국이 잘하고 있는 분야에 뒤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틈새시장이 중요하다. 남들이 안 하거나 못하는 것. 모든 스포츠에 균등하게 투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여자 축구처럼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종목에 집중했다. 안되는 것은 과감하게 접는다. 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의 좋은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의 핵 개발도 이러한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 목숨 걸고 추진한 측면이 크다. 이런 분야에서는 북한이 잘한다.
이렇듯 여자 축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는 김정일 시대부터 이어져 왔으며, 현재 김정은 체제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여자 축구를 단기적인 성과를 위한 도구가 아닌, 장기적인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여자 축구 관련 드라마가 제작되는 등 대중문화를 통해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도구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관심 덕분에 북한의 여자 축구는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남자 축구에 비해 소외되기 쉬운 여자 축구가, 북한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평등’의 가치로 시작한 사회주의, 여성 스포츠 발전을 통해 남녀 평등 보여줘야 할 의무
북한에서 여자 축구가 강세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독특한 여성관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라도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여성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라는 김일성의 말처럼, 여성의 사회 참여는 이념적으로 장려되어 왔다.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한국 여성의 스포츠 참여도 이전보다는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몇몇 종목에서 두각을 보일 뿐, 메이저 종목에서는 남성들의 영역이 되는 것이 흔하다. 세계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도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축구 같은 스포츠는 남성이 주도되어서 이끌어왔고 지금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그것에 비하면 북한 여성의 사회 및 스포츠 참여는 훨씬 더 빨랐다. 그것이 비록 좋은 의미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들이 스포츠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북한에서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성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된다. 이는 앞서 말한 한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서구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여자 축구가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 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은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스포츠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앞서 여성 평등이 ‘표면적’이라고 했던 것은 진출은 장려하되 생각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곳에 진출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유리천장’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다른 진로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에서, 스포츠는 사회적 지위 상승과 더 나은 삶을 위한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특히 축구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어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력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랜 기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높은 적응력과 생존력을 갖추게 되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장사에 소질 있는 여성이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일이 허다하다. 이러한 특성이 그라운드에서 발휘되어 북한 여자 축구의 '투혼'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사회주의적 여성 해방'이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낳았다.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면서, 동시에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자 축구 선수들 역시 이런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보다 더한 엘리트 체육의 극한 실험, 팀 자체가 군대, '축구 군단'이 탄생하기까지의 비밀
북한 여자 축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철저한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다. 마치 군대를 운영하듯 선수들을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축구 군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분단의 상황은 북한을 군사 국가로 만들었다. 북한에서는 여성들도 예외 없이 군에 복무한다. 사실상 전 인민이 군인이다. 그 때문에 스포츠도 군대식 규율과 분위기로 돌아가는 측면도 크다.
한국의 스포츠 발전도 엘리트 체육에 기댄 면이 크고 그래서 문제도 많지만, 어느 정도 민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한국의 엘리트 체육은 경제적 지원과 육성이지,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강제로 끌어올리는 시스템은 아니다. 그리고 인권을 강조하는 자유 한국에서 선수들을 강제로 훈련시킬 수도 없다. 아직 체육계 부조리와 똥군기 같은 좋지 못한 문화가 많이 남아있지만, 이들은 척결 대상이지 장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도의 북한의 선수 양성 과정은 매우 체계적이다. 북한의 선택과 집중은 여기서도 통한다. 어린 나이부터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학교와 지역 단위에서 우수한 선수를 선발하고, 이들을 전문 체육 학교나 스포츠 구단에서 키워낸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425 체육단'의 존재다. 북한 군 소속의 축구팀으로, 여자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군대식 훈련과 규율,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결합된 이 팀은 북한 여자 축구의 핵심 전력이다. 이들의 훈련 강도와 규율은 일반적인 프로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집중적인 훈련과 국가적 지원은 선수들의 기량을 빠르게 향상시키고 팀워크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특혜—예를 들어 평양의 아파트—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평양 같은 대도시에 살 수 있는 것은 어지간히 신분이 높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극도의 압박과 통제는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국가 주도의 시스템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선수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더욱이 이런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거나 정권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언제든 지원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선전의 압박감, 집중 투자를 해주지만 충분하지 못한 자금, 국제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성과를 내야 하는 절박한 자국의 현실 등은 때때로 무리한 수단으로까지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1년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 선수들의 도핑 스캔들은 이런 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계를 떨게 하던 북한 여자축구의 아성은 살짝 꺾이게 된다.
스포츠계의 갈라파고스? 고립이 낳은 기적, 폐쇄된 세계에서 피어난 독자적 축구 철학
북한은 개방된 사회가 아니다. 미지의 국가다. 우리처럼 북한을 알아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거나 북한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은 지구촌이 하나라는 현재도 어려운 일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역설적으로 여자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은 내부적으로 독자적인 축구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을 마치 고립된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들이 독특한 진화를 거친 것과 유사하다고 하여 ‘갈라파고스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제 교류의 제한은 북한만의 독특한 축구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외부의 영향을 덜 받은 채 자체적으로 발전한 북한식 축구는 국제 무대에서 예측 불가능한 전술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무기가 되었다. 이는 마치 1950년대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나 1970년대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처럼 독자적인 축구 철학의 탄생을 연상시킨다.
‘미지’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그 효과가 크다. 실제로 축구팀 전략분석관은 각 팀의 경기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여 상대의 전술이나 약점을 간파해 내는데, 미지의 국가이자 갈라파고스 팀인 북한 여자축구팀에 대한 정보가 많을 리가 만무하다. 상대의 핵심 선수가 어떤 스타일인지, 팀 자체의 메인 전술이 뭔지를 분석할 만한 충분한 데이터를 얻기가 힘들다. 아무리 감독이 명장이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팀으로는 허를 찔리기 딱 좋다.
그러나 이런 고립의 장점은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축구도 시대가 흐를수록 트랜드가 변한다. 고립된 북한은 국제 축구의 빠른 변화와 발전을 따라가기 어렵고, 다양한 스타일의 축구를 경험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개별 선수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팀이 기억하고 학습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 축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최근 국제 대회에 불참하면서 북한 축구의 경쟁력이 저하되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국제 사회와의 단절은 선수들의 개인적 성장과 경력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의 선수들처럼 해외 리그에서 뛰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북한 축구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남북 여자 축구의 엇갈린 운명, 같은 뿌리에서 피어난 다른 꽃, 최근에서야 조금씩 투자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축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남북한 여자 축구는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는 단순히 축구 실력의 차이를 넘어 두 체제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우리 여자 축구는 북한에 비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FIFA 랭킹에서도 북한이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남북 대결에서도 북한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력이나 국력만으로는 스포츠 경쟁력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런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두 나라의 스포츠 정책과 사회 구조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이 여자 축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한 반면, 한국에서는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축구가 여전히 '남성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여자 축구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 스포츠가 발달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수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체제경쟁에서 반강제적이자 전략적으로 여자 축구에 투자한 북한과는 다른 모습이다.
선수 육성 시스템의 차이도 크다. 북한의 국가 주도형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단기적으로 높은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우리의 자율적이고 다원화된 시스템은 아직 여자 축구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 또한 아무리 엘리트 체육으로 효과를 보았다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 주도의 스포츠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국가가 이끌어주는 것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지, 클럽팀과 리그의 활성화와 기업의 후원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최근 우리도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WK리그의 발전과 함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국제 제재와 경제난으로 인해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모델일 수 있다. 선수들의 인권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우리와 같은 조건이었다면? 경쟁적 스포츠를 평화의 스포츠로…
북한 여자 축구의 U-20 월드컵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사건을 넘어 한반도의 복잡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것은 분단의 비극, 체제 경쟁의 그림자, 그리고 스포츠의 정치화라는 복잡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역설적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이번 우승은 북한 여자 축구의 강세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체계적인 노력의 결실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스포츠의 성공이 체제의 우수성을 의미하는가? 국가 주도의 군대식 체육 시스템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포츠는 정치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 자체가 우리 사회의 성숙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북한 여자 축구의 성공은 남북 스포츠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축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며, 궁극적으로는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재의 경색된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스포츠야말로 정치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결국, 북한 여자 축구의 우승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준다. 그것은 단순히 축구 기술이나 전술의 차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언젠가 남북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세계 무대에서 뛰는 날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진정한 '코리안 드림'이 실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어울림도 당당함이 있어야 가능한 법.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여자축구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남북 축구가 체제 경쟁의 도구에서 평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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