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國技)가 축구, FIFA 올해의 선수상의 삼바, ‘미네이랑의 비극’ 아픔 딛고 다시 춤출까?

한때 세계 축구의 왕국으로 군림했던 브라질의 몰락은 서서히 시작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네딘 지단의 완벽한 패스와 티에리 앙리의 결정적인 결승골 앞에서 브라질은 8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에 무릎을 꿇으며 다시 8강에서 탈락했다. 화려한 개인기는 여전했지만, 조직력과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한 브라질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본문 중에서]

지난 17(현지 시각), FIFA 주관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2007AC 밀란 소속이었던 카카 이후 10년이 넘게 브라질 출신의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는 없었다. 브라질 축구의 위축 속에 올해의 선수상은 한동안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브라질의 라이벌 국가인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가 돌아가면서 타 먹고 있었다. 세계를 호령하던 축구 강국 브라질. 삼바축구의 고장. 펠레의 나라, 축구로 정치할 수 있는 곳 등등, 축구에 진심인 이 나라. 한국이 감히 말도 꺼내보지 못할 정도로 정상급의 축구 제국이 요즘 들어 시원치가 않다. 브라질 축구가 삐걱거리고 있다.

이런 사이 16(현지 시각), 브라질 축구의 전설 호나우두가 브라질축구협(CBF)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매체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축구는 브라질 국민들의 탈출구 역할을 해왔다""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대표팀에 전혀 관심이 없다. CBF 회장 후보로 나서게 된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대표팀이 항상 가져왔으나 지금은 누리지 못하는 명예와 존경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의 출사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삼바축구는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비니시우스는 월드컵 무대에서 삼바를 출 수 있을 것인가?

호나우두의 도전은 단순한 은퇴 선수의 행정직 도전이 아니다. 그는 이미 두 개의 프로 축구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FIFA 게임에서조차 '사기 캐릭터'로 불렸던 선수가 이제는 브라질 축구의 부활을 위해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 선다. 다만 이번에는 축구화가 아닌 혁신의 깃발을 들고서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게임 속 사기캐릭터가 현실이 된 사나이, 호나우두의 귀환... 축구계 판도 바꿀까?


한때 브라질은 축구 게임 속에서도 '사기 팀'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중심엔 호나우두가 있었다. 호나우두가 활약하던 FIFA 98쯤의 시리즈를 플레이해 본 사람이라면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게임의 법칙마저 무시하는 듯한 속도와 파워, 정확성까지 갖춘 그는 마치 '치트키'를 발동시킨 캐릭터처럼 상대 수비진을 농락했다.

펠레는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화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의 창의적이고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은 브라질 특유의 ‘삼바 축구’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의 별명은 '축구의 왕(King of Football)'이며, 브라질 국민에게는 국가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2022년 12월 29일, 펠레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히 축구 역사에 남아 있다.(사진_인스타그램)
펠레는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화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의 창의적이고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은 브라질 특유의 ‘삼바 축구’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의 별명은 '축구의 왕(King of Football)'이며, 브라질 국민에게는 국가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2022년 12월 29일, 펠레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히 축구 역사에 남아 있다.(사진_인스타그램)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브라질에는 이런 '사기 캐릭터'들이 수두룩했다는 점이다. 펠레, 가린샤, 지지, 소크라테스, 지코, 호마리우, 베베토,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네이마르, 카카... 이름만 들어도 상대 수비수들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나라였다면 '올타임 베스트'로 꼽힐 만한 선수들이 브라질에서는 그저 여러 레전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월드컵 우승만 다섯 번, FIFA 랭킹 1, 2위를 양분하던 시절, 브라질은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 공장'이었다. 그래서 이 시절, 대전게임을 하면서 브라질을 선택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됐다.

베베토(Bebeto)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본명은 호베르투 가마 지 올리베이라(José Roberto Gama de Oliveira)이다. 베베토는 창의적이고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기억되며,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_인스타그램)
베베토(Bebeto)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본명은 호베르투 가마 지 올리베이라(José Roberto Gama de Oliveira)이다. 베베토는 창의적이고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기억되며,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_인스타그램)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호나우두는 '현실판 치트키'였다.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8골을 몰아치며 득점왕과 우승컵을 동시에 품었다. 특히 결승전에서 독일의 골문을 두 번이나 흔들며 브라질에 통산 다섯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안겼다. 그의 드리블이 시작되면 상대 수비진은 마치 삼바를 추듯 우왕좌왕했다.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임'이라는 표현이 그에게는 클리셰가 아닌 현실이었다.

하지만 전설의 화려한 발걸음은 그라운드를 벗어나서도 계속됐다. 2018, 그는 스페인의 레알 바야돌리드를 인수하며 구단 경영에 뛰어들었다. 2부 리그에 머물던 구단을 단숨에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2021년에는 고향 브라질의 명문 크루제이루까지 품었다. 당시 크루제이루는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며 2부 리그로 강등된 상태였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8개월 만에 1부 리그 복귀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선수 시절 상대 수비를 뚫던 그의 돌파력은 이제 경영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호나우두의 경영 철학은 단순했다. "축구는 팬들과 유소년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팬 커뮤니티 강화와 유소년 육성에 집중했다. 마치 자신이 브라질의 거리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던 것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그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브라질 축구협회 회장 도전으로 이어졌다. '게임 속 사기캐릭터'가 이제는 브라질 축구의 미래를 바꾸겠다며 나선 것이다. 선수로서도, 경영인으로서도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사기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축구가 밥 먹여 주는 나라? 아니, 축구로 정치하는 나라! 삼바의 땅 브라질


브라질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생존이고, 희망이며, 때로는 정치다. 이곳에서 축구는 그야말로 국기(國技)에 가깝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골목에서 양말 뭉치를 차며 기술을 익히는 아이들에게 축구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도 리우의 빈민가에서 시작해 축구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꿨다. '브라질에서는 길거리의 거지도 국대급 실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 나라에서 축구는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계층 이동의 사다리다.

축구는 브라질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기도 하다. 군사 독재 시절부터 축구는 정권이 국민을 통제하고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1970년 월드컵 우승은 군사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적극 활용했던 대표적 사례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들은 그래서 단순한 선수를 넘어 정치적 상징이 되곤 했다. 펠레는 스포츠부 장관을 역임했고, 호마리우는 상원의원이 되었다. 축구 스타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건 브라질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축구는 브라질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자 도구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축구의 정치적 도구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당시 지우마 호세프 정부는 월드컵을 통해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경제난과 사회 불평등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13조 원이 넘는 월드컵 예산이 투입되는 동안, 교육과 의료 같은 필수 복지는 외면받았다. "우리는 병원이 아니라 축구장이 필요하냐"는 국민들의 분노가 거리를 메웠고, 월드컵은 축제가 아닌 저항의 장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패트로브라스 스캔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치인들과 기업 간의 부패로 수십억 달러가 낭비된 사실이 드러나며, 월드컵을 둘러싼 분노는 폭발했다. 호세프 정부는 월드컵을 통해 국민적 단결을 이루려 했지만,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다. 여기에 독일에게 당한 1-7 참패는 브라질 국민의 자존심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축구가 더 이상 '국민의 자부심'이 아닌 '부패한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춤과 무술, 축구가 만나다! 영화 속 소림축구? 아니 우리는 진짜로 삼바축구


삼바축구는 그 이름에서부터 브라질의 영혼이 묻어난다. 아프리카에서 전해진 춤과 리듬은 브라질 축구의 DNA가 되었다. 삼바 리듬의 유연함과 창의성은 축구장에서 '징가'(Ginga)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승화됐다. 징가는 상대를 농락하는 드리블과 예술적인 몸놀림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브라질 축구의 정수다. 흥미로운 건, 이 징가가 브라질의 전통 무술인 카포에라(Capoeira)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주성치의 2001년 개봉, 액션 영화 소림축구는 중국의 무술 중 하나인 소림권을 축구로 표현한 작품이다. 비록, 현재 중국의 쿵후축구는 그것과는 상관없지만삼바축구에는 진짜 무술이 결합했다. 카포에라는 브라질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이 만든 독특한 무술이다. 언뜻 보면 춤 같지만 실은 치명적인 공격과 방어 기술을 숨긴 싸움이다. 2/4박자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카포에라는 순간적인 회피와 반격, 예측 불가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런 카포에라의 기술은 자연스레 축구장에서 재현됐다. 허리를 유연하게 꺾어 상대를 속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폭발적인 스텝을 밟는 브라질 선수들의 드리블 기술은 마치 카포에라 동작을 보는 듯하다. 삼바와 카포에라는 브라질 축구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삼바축구의 정점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선보인 4-2-4 포메이션이었다. 속칭 닥공축구의 원조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이 전술은 마치 무용수들이 무대를 장악하듯 경기장을 지배했다. 네 명의 공격수가 마치 삼바 댄서처럼 자유롭게 위치를 바꾸며 상대 수비를 현혹했고, 두 명의 미드필더는 이 춤판의 리듬을 조율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펠레와 가린샤 같은 '축구의 예술가'들이 이 전술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은 다시 한번 삼바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2002 월드컵의 우승국의 위엄.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로 이어지는 '3R' 트리오는 카포에라 무술가들처럼 상대 진영을 휘저었다. 2002 월드컵을 기점으로 박지성, 이영표 같은 한국의 스타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뻗어갔지만, 브라질은 세도 너무 셌고, 기량이 조금 하락하긴 했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맞붙었던 브라질은 여전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의 월드클래스 선수를 보유한 지금도 브라질은 넘사벽급 수준이다. 한번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처럼 브라질의 삼바축구는 단순한 경기 방식을 넘어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문화적 혁명이었다. 전 세계가 이들의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모방하려 했지만, 삼바와 카포에라의 DNA를 타고난 브라질 선수들의 움직임은 결코 쉽게 따라 할 수 없었다.


1-7 참패, 미네이랑의 악몽... '축구 제국'이 하룻밤 사이 무너졌다


그러나 한때 세계 축구의 왕국으로 군림했던 브라질의 몰락은 서서히 시작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네딘 지단의 완벽한 패스와 티에리 앙리의 결정적인 결승골 앞에서 브라질은 8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에 무릎을 꿇으며 다시 8강에서 탈락했다. 화려한 개인기는 여전했지만, 조직력과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한 브라질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브라질 축구는 과거에 멈춰있다"는 유럽 언론들의 혹평이 쏟아졌다.

201478, 안방인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펼쳐진 독일과의 4강전은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 되었다. ‘미네이랑의 비극이라고 일컫는 이 경기에서 시작 30분 만에 5골을 내주며 무너진 브라질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건 축구가 아니라 도살이다"라는 중계진의 표현이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전했다. 결국 1-7이라는 믿기 힘든 스코어가 전광판에 새겨졌고, 경기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날 이후 브라질은 사회적 혼돈에 빠져들었다. 미네이랑 참패 직후 벨로 호리존테 시내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분노한 군중들은 월드컵을 위해 지어진 호화로운 경기장을 향해 화염병을 투척했고, 경찰과 충돌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는 수만 명의 브라질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브라질의 장례식'을 치르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민들은 축구 유니폼을 불태우고, "이제 브라질은 죽었다"는 팻말을 들었다.

이 패배의 여파는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월드컵 개막식에서 야유를 들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독일전 패배 이후 급격히 하락했다. 브라질 국민은 경기장 건설에 쏟아부은 막대한 예산을 비난했고, "월드컵보다 교육을!"이라는 구호가 전국을 뒤덮었다. 결국 이 사회적 불신은 2016년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축구 하나로 버텨왔던 브라질의 자존심이 무너지자, 그동안 쌓여있던 모든 사회적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브라질의 추락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에,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크로아티아에 패하며 연거푸 8강 탈락의 쓴맛을 삼켰다. 더 이상 브라질은 '축구의 제국'이 아니었다. '미네이랑의 비극'은 단순한 축구 경기의 패배를 넘어, 한 나라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것, 가장 잘하는 것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브라질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삼바는 이제 끝? 현대축구의 흐름 못 읽은 브라질, 몰락의 4가지 경고


브라질 축구의 몰락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삼바축구로 대표되는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는 한 시대를 평정했지만, 21세기 축구의 흐름 속에서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현대 축구는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전술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진화했다. 브라질은 이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했고, 삼바축구의 한계는 뚜렷해졌다.

일단, 전술적 한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삼바축구는 개인기를 중심으로 한 창의적 플레이와 화려한 공격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점유율에 기반한 빌드업 플레이, 조직적인 프레싱, 그리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전술적 효율성을 추구한다.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이 보여준 축구가 바로 그것이다. 독일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취약점을 파고들었고, 마치 컴퓨터 시뮬레이션처럼 정확한 패스와 움직임으로 브라질을 압도했다. 반면 브라질은 여전히 네이마르 같은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기에 의존했고, 그 한계는 명백했다.

선수 육성과 관리 시스템도 문제다. 브라질이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자유분방한' 축구는 거리와 빈민가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유소년 시절부터 체계적인 전술 교육과 팀 플레이를 강조한다.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 시스템이나 독일의 유소년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개인기뿐만 아니라 전술적 이해도, 팀 플레이, 그리고 현대 축구에 필요한 체력까지 종합적으로 가르친다. 브라질은 이런 시스템적 접근에서 크게 뒤처졌고, 결과적으로 '완성된' 선수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스타 선수들의 자기 관리 실패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선수들이 전성기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몰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호나우지뉴는 바르셀로나와 AC 밀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지만, 파티 문화와 사생활 문제로 일찍 전성기를 마감했다. '황제' 아드리아누도 마찬가지다. 인터 밀란 시절 세리에 A를 평정했던 그는 잦은 음주와 체중 관리 실패로 서서히 무너져갔다. 네이마르 역시 부상과 사생활 문제로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개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브라질 축구에서 이러한 스타들 한명 한명의 자기 관리 실패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축구협회의 구태의연한 운영 방식도 한몫했다. 브라질축구협회(CBF)는 오랫동안 비효율적인 운영과 부패 문제로 비판받아 왔다. 특히 브라질 국내 리그의 경쟁력 약화는 심각한 문제다. 유망한 선수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유럽 리그로 너무 일찍 떠나버리고, 이는 브라질 축구의 근간을 약화시켰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도 18세의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국내 리그가 허약해지니 자연스레 국가대표팀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럽 축구는 끊임없이 진화했다. 펩 과르디올라로 대표되는 현대 축구는 경기의 모든 순간을 통제하려 한다. 선수들의 포지셔닝, 볼 터치 하나까지 데이터로 분석하고 전술적으로 접근한다. 물론 이런 '교과서적' 축구가 브라질의 예술적인 플레이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서는 이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수가 되었다. 브라질은 이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거나, 혹은 읽기를 거부했다.

삼바축구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화려하며 시원하다. 그러나 브라질은 이제 갈림길에 서 있다. 전통적인 삼바축구의 장점은 살리되, 현대 축구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개인기와 예술성은 유지하면서도, 전술과 조직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황제의 귀환, 축구판 다시 뒤집나? 호나우두 개혁 바람, 이번엔 통할까?


호나우두의 브라질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는 단순한 은퇴 선수의 도전이 아니다. 세계 축구계에서 브라질이 가진 상징성과 호나우두라는 전설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는 브라질 축구의 새로운 혁신을 향한 선언이다. 최근 한국 축구계에서도 정몽규 회장의 4연임에 대항해 허정무, 신문선 같은 선수 출신들이 협회장 선거에 도전하는 상황과 맞물려 흥미로운 비교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호나우두의 도전은 차원이 다르다. 그는 이미 두 개의 프로 구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검증된 경영자다.

호나우두의 공약은 명확하다. 유소년 시스템 개혁, 국내 리그 활성화, 그리고 협회의 투명성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브라질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이는 단순한 홍보용 공약이 아니라 현대 축구의 흐름을 브라질에 도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조직적인 빌드업 축구를 강조하는 과르디올라의 스타일은, 브라질 축구의 전통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선수 출신 리더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점이다. 호나우두는 선수로서의 경험과 구단 경영의 노하우를 동시에 가진 드문 인물이다. 그는 레알 바야돌리드와 크루제이루에서 보여줬듯이 재정 건전성과 유망주 발굴을 동시에 추구할 줄 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FIFA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존 축구협회 세력의 저항은 물론, 브라질 축구계에 만연한 부패와 비효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삼바축구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 축구의 흐름을 수용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도 있다. 마치 삼바 리듬에 발레의 정교함을 더하는 것처럼, 브라질의 창의성과 현대 축구의 과학성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윈도우 95 시절, '게임 속 사기캐릭터'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주던 호나우두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의 도전이 성공하려면 브라질 축구계 전체의 변화 의지가 필요하다. 17년 만에 브라질 출신으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비니시우스과연 호나우두는 월드컵 무대에서 그로 하여금 다시 삼바를 출 수 있게 할 것인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