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민국에서의 낙태죄에 관하여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 기자

2019년 4월 11일


지난 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 조항에 ‘헌법 불합치’를 선고했다. 대체 법안 마련 시한은 2020년 12월 31일. 이제 채 3달이 남지 않았다. 지난 3월 유엔(UN) 여성차별철폐협약은 한국 정부에 낙태 합법화 의견을 냈고, 그로부터 5달 뒤인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예상한 바와 같이 각종 종교 단체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24주 이후 낙태는 모두 불법, 14주 이전 낙태는 합법이며 15주에서 23주 사이의 낙태는 특정 요건을 만족할 시 합법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한 법조계와 의료계, 여성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는 낙태를 줄일까


Abortion Worldwide 2017: Uneven Progress and Unequal Access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하지 않은 낙태는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국가가 집중된 개발도상국에서 압도적으로 발생했다. 여성이 안전보다 비밀을 우선시하도록 하는 사회 풍조 때문이다. 그러한 낙태가 만연한 14개 개발도상국에서 낙태 여성은 열 명 중 네 명꼴로 치료가 필요한 합병증을 앓았다.

이 보고서의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낙태 발생률’에 관한 구간이다. 낙태 발생률이 국가의 경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낙태에 대해 가장 제한적인 법률을 가진 나라의 여성과 가장 자유로운 법률 아래의 여성이 거의 같은 비율로 낙태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따르면, 낙태죄의 유지는 낙태를 줄일 수 없다. 단지 위험하게 할 뿐이다.


법조계와 의료계, 여성계의 이야기


법조계에서는 현재 입법 예정된 법 개정안 속 ‘14주’가 상당히 모호하다고 말한다. 여성의 월경 주기 또는 태아의 크기에 비추어 오로지 추정만 가능한 주 수에 따라 산모를 처벌한다는 것은 명확한 기준이 되어야 할 법이 취할 입장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태아의 주 수를 측정하는 것은 산모를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적절한 보조를 제공하기 위함을 생각하면, 더욱이 낯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의료계의 비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지가 늦을 수 있는 청소년이나 장애인에게 14주는 다소 짧으며, 건강이 좋지 않으면 14주가 지나도 낙태가 필요할 수 있다. 낙태가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인정받기 위해 또 힘겨운 시간을 보낼 환자의 건강권을 생각했을 때, 낙태죄는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계는 이번 개정안이 반인권적이라고 지적했다. 임신중절수술과 약이 여성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낙태를 감행하는 것은 그러한 위험을 여성이 온전히 부담하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낙태 남용을 불러올 것을 우려하는데, 본인에게 나쁠 것을 정확히 인지한 여성 중 낙태를 ‘남용’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의견이다.


태어날, 혹은 태어나지 않을 아이를 위하여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임신 중단 경험자의 임신 중단의 주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둘째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 셋째가 자녀계획 때문(31.2%)이었다. 이처럼 낙태를 고려하는 부모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충분한 사랑, 아니, 최소한 관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낙태 금지론자는 대체로 태어날 생명의 소중함을 예찬하지만, 태어난 후의 긴 삶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아이를 가진 것이 그 부모의 책임이듯, 아이를 기르는 것도 그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낙태를 생각한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가? 어떤 어른에게 의지하여 자라는가. 낙태 금지는, 정말 아이를 위한 길인가.


두 약자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할 여성도, 자신을 원치 않는 부모, 또는 부나 모에 의해, 또는 그조차도 아닌 어른에 의해 길러져야 할 아이도. 낙태죄 아래 둘은 약자가 되어 서 있다.

우리 사회는, 이 약한 이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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