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기업인이 이끈 한국 체육의 빛과 그림자, 단일화 완수하고 체육인의 시대 열까?

2024년,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기흥 회장은 본인이 선수였던 적이 없는 순수 기업인 출신이다. 물론,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서 체육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터져 나오는 체육계의 문제점들이 ‘선수 입장에서의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중요한 화두...[본문 중에서]
2024년,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기흥 회장은 본인이 선수였던 적이 없는 순수 기업인 출신이다. 물론,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서 체육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터져 나오는 체육계의 문제점들이 ‘선수 입장에서의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중요한 화두...[본문 중에서]

지난달 11, 문체부로부터 직무 정지 통보를 받고도 3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이기흥 체육회장. 여론이 안 좋은 틈을 타 내년 1월에 있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의중을 보인 후보만 7명이다. 그리고 지난 3,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42)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학생 선수들과 학부모들, 최저시급밖에 되지 않는 처우 속에서도 선수 한 명 키워보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발버둥 치는 지도자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다시금 희망과 행복으로 바꿔드리겠다"며 출마 배경을 밝혔다. 유능한 탁구선수이자, IOC 선수 위원과 대한탁구협회장을 역임한 유승민의 도전은 체육인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박창범 전 회장은 이기흥 회장의 3선 출마 철회를 요구하며 11일간 단식 투쟁을 벌이다 2일 이종걸 전 국회의원의 권유로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반이기흥 연대'를 통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은 연간 4400억 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체육계의 대통령'이다. 58개 가맹 경기 단체와 17개 시·도 체육회, 17개 해외 지부를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그러나 42회에 걸친 체육회장 중 체육인 출신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회장으로 출마하겠다고 나선 후보들도 대부분 선수 출신이 아니다.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상식적인 이해 불가, 국방부는 군인이, 의료계는 의사가... 체육계는 왜 외부인이?


상식적인 질문이다.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를 이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방부 장관은 군인이, 교육감은 교육자가, 사법 수장은 법조인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이, 대한의사협회장은 의료인이 맡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오랜 경험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육계에서는 이 공식이 잘 통하지 않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체육회의 역사를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42회에 걸친 체육회장 중 체육인 출신은 단 두 명뿐이었다. 김종렬(럭비)과 김정행(유도)이 그 주인공이다. 나머지는 모두 정치인이나 기업가, 관료 출신이 차지했다. 심지어 체육계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인물들도 있었다. 이는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협회를 이끌거나, 교육자가 아닌 사람이 교육감이 되는 일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들이 뭘 안다고 저 자리에?

2024,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기흥 회장은 본인이 선수였던 적이 없는 순수 기업인 출신이다. 물론,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서 체육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터져 나오는 체육계의 문제점들이 선수 입장에서의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중요한 화두이기에 이것이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었다! 일단 인프라부터체육인이 주도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던 현실


해방 이후 한국 체육의 발전 과정에는 세 가지 결정적 한계가 있었다. 첫째는 자본의 한계였다. 1960년대까지 한국 체육은 변변한 체육관 하나 없이 초라한 환경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수 육성은 고사하고 훈련장을 마련하는 것조차 힘겨운 시절이었다.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던 1981년만 해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700달러에 불과했다. 경쟁 도시 나고야가 속한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둘째는 국제 네트워크의 부재였다. 엄청난 돈이 오가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메가 이벤트는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외교의 장이었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국제 감각과 외교력이 필수였다. 하지만 당시 체육인들은 외국어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의 정치 구도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선진국 체육계와의 인적 네트워크도 전무했다.

셋째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이었다. 1980년대 들어 스포츠는 더 이상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닌 거대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방송중계권, 스폰서십, 스포츠 마케팅 등 새로운 영역이 속속 등장했다. 체육회는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거대 조직이 됐다. 이는 경영 능력과 산업적 안목을 가진 리더를 필요로 했다.

선수들은 훈련과 지도에 전념하느라 이런 능력을 갖출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당장 2020년대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엘리트 체육인 육성, 그리고 체육 특기자 제도 등을 보아도 훈련이나 대회 준비로 인해 다른 재능을 계발하기가 쉽지 않다. 체육인에 의한, 체육인을 위한 체육회라는 이상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력했다. 결국 체육계는 선택해야 했다. 체육인의 순수성을 지키며 더딘 발전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외부의 힘을 빌려 도약의 기회를 잡거나. 시대는 후자를 선택했다.


정주영의 꽃다발 외교에서 김운용의 태권도 올림픽 입성까지... 비체육인 리더들이 남긴 족적


비선수 출신 회장들은 각자 자기의 장점을 극대화해 한국 체육의 발전을 이끌었다. 정주영 회장의 '꽃다발 외교'는 전설로 통한다. 아직 한국 스포츠가 세계로 나가기 전인 서울 올림픽 유치 이전 시기, 1981년 독일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그는 IOC 위원들의 부인들에게까지 매일 아침 꽃다발을 보내는 섬세한 전략으로 나고야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5227이라는 압도적 표차는 기업가다운 치밀한 전략이 만든 결과였다. 현대그룹의 경영 노하우를 체육 외교에 접목한 순간이었다.

사진 좌측부터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사진 좌측부터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통령 출신도 있었다. 훗날의 업적에 가려지고, 5공화국 시기 있었던 일이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지만, 노태우의 행보는 스포츠 부분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그는 1982년 체육부 초대 장관을 시작으로 대한체육회장,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어 올림픽을 직접 주관했다. 그 시절 스포츠는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4,748달러에 불과했지만, 159개국이 참가하는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러냈다. 특히 1980년 모스크바, 1984LA 올림픽이 냉전으로 반쪽짜리 대회가 된 것과 달리, 88서울올림픽은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하는 진정한 '평화의 제전'이 됐다. 40년이 흘러, 서울이 다시 2036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운용 회장의 20년은 한국 체육의 국제화를 상징한다. 그는 IOC 부위원장까지 오르며 한국 스포츠 외교의 새 장을 열었다. 특히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되기까지, 그의 국제 스포츠계 네트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다.

박용성 회장은 두산그룹 회장 출신다운 경영 마인드로 체육회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조직 문화를 개선하려 했다. 비체육인 출신 회장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한국 체육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들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한국 체육이 이처럼 빠른 성장을 이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체육계 내부의 자생력과 전문성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했다.


체육인에겐 없고 기업인에겐 있었다! 돈과 인맥, 그리고 국제 감각의 힘, 여전히 중요한 자격


기업인, 관료, 정치인 등 비체육인 출신 회장들이 갖추고 있었던 능력은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 스포츠의 규모가 커지고, 세계 속으로 나아갈수록 더욱더 이러한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현대 스포츠는 한 사람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많은 제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체육회는 이것을 뚫어주어야 한다.

비체육인 출신 리더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객관적 시각'이었다. 체육계 내부에서 성장한 리더들은 때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반면 외부에서 온 리더들은 체육계의 고질적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 혁신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자금 동원력도 큰 장점이었다. 기업가 출신 리더들은 재계 인맥을 통해 안정적인 스폰서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산업화, 자본화 되어가는 스포츠계에서 자금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된다. 투자가 없으면 유능한 선수도, 성적도 없다.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들은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뿐만아니라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도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체육인 출신들이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경기력과 지도력을 가진 체육인이라도, 수백억 단위의 자본을 끌어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위기관리 능력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나 국제대회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은 순수한 체육적 관점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각종 판정 시비나 외교적 마찰이 있었지만, 정관계 인맥을 가진 리더들은 이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다. 스포츠가 더 이상 운동장 안에서만 벌어지는 게임이 아닌 이상, 이러한 위기관리 능력은 필수적이었다.

협상력의 차이도 컸다. 메이저 스폰서와의 계약, 방송중계권 협상, 국제대회 유치 과정에서 비체육인 출신 리더들은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들은 계약서의 세세한 조항까지 꼼꼼히 살피고,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줄 알았다. 반면 체육인 출신들은 이런 비즈니스적 감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치적 중립성'이었다. 체육인 출신 리더는 현장에서 쌓은 인맥과 관계 때문에 특정 세력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리기 쉬웠다. 반면 외부에서 영입된 리더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서 체육계 전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이는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체육계에서 중요한 미덕이었다.


김종렬과 김정행이 남긴 두 번의 실험선수 출신 회장이 만능 해결사인가?


김종렬(럭비)과 김정행(유도)의 도전은 체육인 리더십의 소중한 이정표가 됐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한 김종렬 회장은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성사시키며 체육인 특유의 추진력을 보여줬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재임한 김정행 회장은 93년 체육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출된 국가대표 출신 회장으로서 체육인 교육센터 건립, 체육인 복지 향상 등 선수 중심의 정책을 펼쳤다. 두 회장의 시대는 체육인 리더십의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보여줬다.

첫 번째 교훈은 '현장 전문성''경영 전문성'의 균형이다. 체육인 출신 리더는 누구보다 선수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연간 4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운용하고, 58개 가맹단체와 17개 시·도 체육회를 아우르는 거대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경영 능력도 필수적이다. 김정행 회장이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두 번째 교훈은 '체육계 문화'의 혁신이다. 선후배 관계로 맺어진 체육계 특유의 문화는 양날의 검이었다. 끈끈한 유대감은 강점이지만, 지나친 폐쇄성은 약점이 됐다. 유달리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남아있는 한국 체육계에는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 고인물이 될 수 있다. 김정행 회장 또한 치우친 인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선배가 알아서 할게"라는 식의 불투명한 의사결정이나, "우리 식구끼리 해결하자"는 식의 폐쇄적 문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체육인 리더는 전통의 장점은 살리되,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은 과감히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소통의 진화'. 체육회는 더 이상 체육인들만의 조직이 아니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며, 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관계 설정은 중요하다. '관리·감독''간섭'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체육계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체육인 특유의 카리스마는 이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능력으로 진화해야 한다.

마지막 교훈은 '전문성의 확장'이다. 현대 스포츠는 순수한 경기를 넘어 거대한 산업이 됐다. 방송중계권 협상, 스포츠 마케팅,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체육인 리더는 이런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현장 경험은 기본이고, 거기에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는 향후 체육계를 이끌어갈 모든 체육인 리더에게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각종 비리 혐의, 지나친 사유화, MZ 선수들의 절규, 현장 감각의 필요성과 당위성


올해 대한체육회가 겪는 혼란은 비체육인 리더십의 한계의 총집합이다. 이기흥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갈등, 1000억 원이 넘는 예산 삭감 논란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체육계와 괴리된 리더십, 일방적인 소통 방식,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특히 파리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이 파행으로 치러진 것은 현 체제가 얼마나 선수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머나먼 땅에서 고생하며 대회에 임했고, 귀국길에 환영받아야 할 선수들이 정치적 이유로 단절되었다. 적어도 선수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비체육인 리더십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장 감각의 부재'. 재정과 조직을 잘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체육회의 존재 이유는 선수와 지도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최저시급밖에 되지 않는 지도자들의 처우,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문제, 은퇴 선수들의 진로 고민 등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있다. 이것이 폭발한 것이 안세영의 폭로였고, 그것에 대응하는 과정 또한 현재의 체육회 시스템이 선수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체육회가 '선수를 위한 조직'이 아닌 '조직을 위한 조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체육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자금력과 인프라 구축이 시급했지만, 이제는 체육계의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나 정부에 대한 자금 의존도 중요하지만, 체육계 스스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프로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균형 발전, e스포츠 등 새로운 영역의 개척, 디지털 시대에 맞는 스포츠 콘텐츠 개발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억지로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아닌, 훌륭한 선수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진 스포츠로의 필연이다. 이는 체육계 내부의 전문성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유승민의 선택, 'IOC 8''팀 유승민'... 트렌드가 아니라 필수적 자격이어야 할 것


최근 선수 출신 회장 후보들이 급상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 후보에 선수 출신인 허정무 전 감독과 신문선 해설위원이 출마했다. 대한체육회장 후보의 단일화가 논의되고 있는 이 시기, 유승민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첫째, 그가 유능한 선수 출신이라는 것은 인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시대의 요구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탁구협회장으로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고충을 잘 어루만져주었다. 때로는 리더로서 선수 권리에 대한 보호를, 때로는 같은 선수로서 연습도 뛰어주었다. 선수 출신인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IOC 선수 위원으로서의 8년간의 활동은 단순한 경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선수를 대표하는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다.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전 세계 선수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표를 모았다. 하루 3만보를 걸으며 선거운동을 했고, IOC 위원회에서는 99%의 출석률을 기록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그를 '하드워커'라고 칭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IOC 위원이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체육인의 진정성과 국제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 사례다.

셋째, 탁구협회장으로서의 5년은 조직 운영 및 자금 동원력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10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유치했고, 프로탁구 출범과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성공 개최를 이끌어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12년 만의 메달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파리 올림픽 찜통 버스 문제를 관리했던 그의 현장 중심 행정도 돋보였다. 42세의 젊은 리더가 보여준 이런 성과는 체육인 출신도 조직과 재정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체육회는 탁구협회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유승민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2000여 명의 선거인단 설득은 시작에 불과하다. 58개 가맹단체의 이해관계 조정, 문체부와의 관계 재설정, 4천억 원 예산의 투명한 운용 등 산적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선수 출신으로서 가진 강점은 분명하지만, 기업가들이 가졌던 재정 확보 능력이나 정치인들이 가진 정관계 네트워크는 여전히 필요한 자산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팀 유승민'이 필요하다. 본인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팀원을 잘 꾸려야 한다. 재계 출신 전문가를 영입해 체육회의 수익 모델을 개발하고, 행정 전문가를 통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정관계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면 체육계 원로들의 조언을 구하고, 정부와의 소통 채널을 전담할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문체부와의 관계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정부를 적이 아닌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가교 역할자가 필요하다.

2024년에도 여전히 스포츠는 돈도 있어야 하고 정치도 필요하고 인맥도 중요하고 수완도 좋아야 한다. 체육인이 이끌되, 각 분야 전문가와의 협력을 통해 이전 시대의 장점도 살리는 새로운 모델이 가능할까? 유승민의 도전이 던지는 질문이다. 100년 체육회의 역사가 그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무겁다. 체육계의 회장이 될 자격, 그것을 갖추는 것 또한 하나의 도전이요 극복해야 할 스포츠정신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