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택배업체 ‘갑질’만연 12월 한 달에만 총 75건 접수
-택배기사‧정부, 사회적 합의했지만 “합의 안 지켜져 파업 불가피”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장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1팀장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바깥 외출이 쉽지 않은 요즘. 스마트폰을 켜고 클릭 몇 번을 하고 다음날이면 구매한 물건이 내 집 앞에 도착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택배 서비스 덕분에 거리두기를 비교적 잘 지켰는지 모른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늘어난 배송물량을 감당하느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쇼핑이 늘면서 택배노동자의 업무시간은 평균 30% 가량 늘었고 지난해만 16명이 생을 달리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최근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사가 맡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지만 6일 만에 다시 파업을 선언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택배 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택배노조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살기 위한 택배 멈춤’, ‘사회적 총파업’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해서 지난 21일 1차 사회적 합의를 이룬 택배 노사가 또다시 갈등의 기로에 섰다.

택배 분류작업은 이른바 ‘공짜노동’이라 불린다. 허브터미널에서 배송된 택배 물건을 택배기사가 담당 구역별로 나눠 택배 차량에 싣는 작업을 한다. 이 분류작업이 업무 중 42.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택배 노사와 정부는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의 기본 업무에서 제외하고, 택배사가 전담인력을 투입해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조치로 택배분류를 업무부담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합의문에는 ▲택배 분류작업 명확화 ▲택배기사의 작업범위 및 분류전담인력의 투입 ▲택배기사가 분류작업 수행 시 수수료 지급 ▲택배기사의 적정 작업조건 ▲택배비 거래구조 개선 ▲명절 성수기 특별대책 마련 ▲표준계약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로써 ‘공짜노동’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대회의실에서 “택배사들이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택배사들이 지점과 영업점에 ‘분류작업을 계속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며 “과로사 방지를 위한 합의를 택배 회사들이 깼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정부와 택배 노사가 택배 분류작업을 사측이 책임지기로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택배회사를 대표하는 한국통합물류협회는 “합의에 따라 3월 전까지 약속했던 분류 인력은 예정대로 투입하고 택배 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하게 될 경우 수수료를 지급하겠다”며 “합의를 깼다는 건 노조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택배사·영업점, 수수료 명세 공개 않는 등 ‘갑질’ 태만


이런 와중에 택배사·영업점의 ‘갑질’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택배 불공정 특별제보 접수 결과 지난해 12월 한 달 간 75건의 갑질 신고가 접수됐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신고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의 수입원인 배송 수수료를 일부 가로채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등 택배사와 대리점의 ‘갑질’ 행위가 끊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불공정 유형으로는 ▲수수료 편취·지연지급 ▲영업점의 비용 전가 ▲부당한 업무지시 ▲택배 분실·훼손 책임 일방적 전가 ▲부당한 계약해지 ▲노조활동 불이익 등이 있었다.

이중 택배기사에게 수수료 명세를 공개하지 않거나 늦게 지급하는 사례가 많았다. 산재보험료 명목 등으로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깎는 일도 있었다. 동의도 받지 않고 회비, 지각 벌금을 걷은 곳도 있었다. 갑질 유형은 다양했고 이렇게 모은 돈은 불투명하게 쓰였다.

정부는 택배 갑질 신고사례의 위법사항을 바탕으로 올 상반기 내 갑질 근절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제보된 내용의 사실관계를 파악해 위법사항이 밝혀질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 택배사에도 유형별 불공정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을 요구할 예정이다.


택배노동자 권익 보호 위한 법률 제정 절실


우리는 택배 없이는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택배노동자는 필수인력인 만큼 소비자인 우리들도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 아쉬운 부분은 택배노동자들의 주장이 과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점이다. 그들은 정당한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코로나로 인한 불평등은 국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새로운 불평등 구조로 특별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언처럼 택배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과 노동권 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관계 안정, 휴식보장 및 안전 조치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조속히 시행될 때 그들의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의 내용이 지켜져야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개선되고 소비자인 우리의 생활도 정상화 될 수 있다.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산재보험법상 일반근로자들과 다르며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에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선 택배기사들을 향해 “일한 만큼 많이 버는 것 아니냐”, “개인사업자니까 힘들 때 일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다르다.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노동자들은 기본급 없이 택배 한 건당 700~8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여기서 7~10%의 대리점 수수료부터 세금, 보험료, 기름 값 등 차량 유지비를 빼야 한다. 또 택배기사들은 자기 구역에 할당된 택배를 그날 모두 책임져야 한다.

택배노동자나 경비원, 청소노동자 등 그들이 위험에 처할 때만 내보이는 ‘보기 좋은 정책’ 말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개선책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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