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한미FTA 개정협상이 6개월 만에 타결됐다.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철강 등의 분야에서 관세부과방침을 발표하는 등 우리 측에서는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철강과 농업은 지키고 자동차의 일부를 양보하는 등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선방했다는 평가와 얻은 것 없이 내주기만 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농업과 철강 지키고 당초 미국측 요구인 자동차 수용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FTA 개정협상 결과를 설명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농산물 추가개방과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등을 지키고, 철강 고율관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미국이 당초 요구한대로 자동차 부문에서 일부 양보했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미국에 양보한 자동차 부문은 한국산 화물차(픽업트럭) 수출 관세 강화, 미국산 수입 쿼터이다.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를 20년 더 연장하고, 미국산 자동차는 한국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해도 업체별로 연간 5만대까지 국내 판매를 가능하게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미국 측은 협상 기간 동안 대미 무역흑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에 집중했고, 결국 한국산 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을 2021년에서 2041년으로, 미국 안전기준만 충족되면 수입을 허용하는 차량 쿼터(수입 할당량)도 2만 5000대에서 5만대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브리핑을 통해 “‘5만대’라는 숫자는 실제 수입량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며 “실제 제작사별 미국산 수입물량은 1만대 미만인데, 이것은 중요한 팩트”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의 재협상처럼 자동차 역내 부가가치 기준을 62.5%에서 85%로 올리고 미국산 부품 50% 의무사용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고 픽업트럭 부문만 수용한 것인데, 이 조차도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모델이 없어서 수용했다는 것이다.

주요 이슈였던 철강의 경우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 받는 조건으로 철강 수출 물량을 이전 3년간 평균 70%로 제한하는 쿼터 설정을 수용했다. 즉 한국산 철강재의 대미 수출은 2015~2017년까지 평균 383만t의 70%인 268만t까지만 허용하는 것이다. 또한 대미 수출의 주를 이루는 강관류 쿼터의 경우는 2017년 203만t 대비 절반 수준인 104만t만 할당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미 철강 수출은 전체 철강 수출 3170만t의 11%에 불과해 전반적인 수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수입 규제로 철강재 가격 상승이 현실화되고 있고, 다른 경쟁국은 25%의 관세를 무는 만큼 수출물량 감소하더라도 금액 면에서는 감소폭이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당초가 우리가 협상 내용으로 제시했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제도(ISDS)나 무역구제 제도 개선 등 제도·절차적 측면에서 개선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실리 챙겨..호평 VS 일방적 양보.. 악평 대비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에 대해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논리적으로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자동차의 일부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소한의 양보로 최악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전 통상교섭본부장이자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철강 관세를 면제받고 쿼터(수입할당량)를 정한 것은 우리의 수출 물량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불리한 면이 있지만,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벌이는 철강 수출 제한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차량의 수입 확대는 우리가 양보한 것 같아 보이나 현 수준인 2만5천대에 이미 미달하는 만큼 국내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도 호평이 나오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양허관세율 조정, 원산지 규정 강화 등 부분에서 많이 우려했지만, 현행대로 유지하도록 선방한 정부의 협상 노력을 높게 평가 한다”고 밝혔다. 한국철강협회도 “철강 수입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려 했던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학계에서도 호평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원하는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하지 않고 한미FTA를 개정하기에는 어려웠다는 점에서 대응을 잘 한 협상”이라고 봤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자동차를 양보한 대가로 한국이 받아낸 것이 빈약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의 경우 FTA라는 게 한번 만들어놓으면 고치기 어려운 만큼 자동차 업계에 앞으로 수출하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25% 관세를 물고는 미국 픽업트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픽업트럭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1차, 2차 협정 때는 픽업트럭 관세 얘기를 꺼내지 않다가 3차에서 2021년에 철폐되는 관세를 20년 더 연장해서 2041년까지 요구한 것은 미국이 픽업트럭 관세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 측이 자동차 부문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아직은 협정문이 나오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한미FTA 개정 협상이 우리와 미국 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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