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재정상태가 불안한 신흥국들이 금융위기를 맞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인도네시아, 터키의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인접 국가인 브라질이나 멕시코 등 남미 지역으로 확산될 조짐이 있고, 이는 동남아, 동유럽에서도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신흥국 경제 흔들

미국의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기준금리를 인상해 왔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도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으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를 연 3.1%까지 끌어올리면서 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렇게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신흥국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의 자금이 미국으로 회수되면서 재정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신흥국들의 통화와 가치, 주가, 채권 값이 폭락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페소화 가치 폭락을 견디지 못하고 IMF에 300억달러(약 32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40%로 동결하고, 전체 외환 보유고의 8%에 가까운 50억달러를 사용해 페소화 급락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페소화 가치는 최근 12일 동안 18% 하락했고, 액면가 1달러짜리 100년 만기 채권은 86센트로 하락했으며, 아르헨티나 관련 펀드 가격도 2% 이상 하락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 사태를 긴축발작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인해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현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르헨티나와 같은 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미 인도네시아에서도 루피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금융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당 루피화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이이던 1만4000루피아를 돌파하는 등 인도네시아의 루피화 가치 하락은 타 신흥국들의 통화가치 하락 평균의 배 이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5억 달러가 넘는 외환시장 개입에도 루피화 가치 하락이 멈추지 않고 있어서 인도네시아 통화 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다.

이뿐이 아니다. 터키의 리라는 15일(현지시간) 달러당 4.47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지난 석달간 낙폭이 15%에 이르고 있다. 이외에 브라질 헤알은 2%, 남아공 랜드는 2.5%, 러시아 루블은 1.4% 떨어졌다.

◆ 위기, 얼마나 확산될까

남미에서 시작된 금융불안은 동유럽과 동남아시아로 확산되는 분위기인데,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대체로 1980년대 초반의 남미 외채 위기나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변동환율제 도입과 충분한 외환보유액, 줄어든 경상수지 적자 폭 등을 고려할 때 대다수 신흥국들은 과거보다 자금 유출 충격을 잘 버틸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달러강세와 미국 금리인상, 국제 유가 상승 등 신흥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어서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터키,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카타르 등 5개국을 미국 등 선진국의 긴축 정책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5대 취약국(fragile 5)’으로 꼽았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도 고위험국으로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 금융전문지 배런즈는 “2013년 신흥시장을 참패로 몰고 간 프래자일 파이브의 귀환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한다”며 “당시 5개국 공통점은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프래자일 파이브는 브라질, 터키, 남아공,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Fed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경우 신흥국들의 해외 투자자금 유출이 더욱 가속화 될 수 있기에 재정이 부실한 국가들의 부도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신흥국 6월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상 계획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았다.

◆ 우리나라는 괜찮나

최근 아르헨티나, 터키 등 신흥국들이 금융 위기에 놓여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환율이 안정되고 부도 위험은 하락하는 등 다른 양상을 보였다. 13일 한국은행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11일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보다 1.3원 높은 1,069.3원으로 마감됐다. 이 기간의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엔화나 유로화보다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또 한국은 3% 수준의 성장세와 탄탄한 재정 등으로 외국환평형기금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1일 40bp로, 아르헨티나 등 타 신흥국들이 금융위기 위험에 놓일 때 오히려 부도 위험이 4bp 하락했다. 이는 2016년 10월 24일 이래 최저치이다.

다만 이미 70달러대에 진입했고 80달러대까지 인상될 것으로 보이는 유가상승이 불안 요인이 다. 미국 셰일 오일 생산 증가 등 수급 상황을 감안했을 때 하반기는 오히려 유가가 안정되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이 있지만,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등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어 낙관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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