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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한국 재벌(財閥)에 대한 인식은 보는 관점에 따라 시각이 엇갈린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 성장기에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주역이지만, 각종 특혜를 받으며 한국경제의 불평등과 사회 불균형을 야기한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특히 70년대 이후 독점적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 압축 성장이 한계를 드러낸 데다 성장의 열매를 함께 누려야 하는 ‘포용 성장’과 ‘공정 경제’가 시대정신으로 자리하면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로 논란이 집중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갑질 경영 사례는 한국 재벌의 아픈 속성을 대변하는 표본 같다.

알려진 사실처럼 대한항공의 고(故) 조양호 회장은 이미 270억 규모의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그의 세 자녀가 100% 지분을 가진 싸이버스카이에 일감을 몰아주며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또 그의 가족은 직원을 사유화해 세관 신고 없이 명품을 반입하거나 다양한 갑질로 이미 기업 평판과 주가에 악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행위는 지난달 이 회사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인해 20년을 맡아온 조 전 회장의 이사 연임을 저지하기에 이른다.

시민사회는 이를 ‘주주 촛불혁명’에 준하는 쾌거로 받아들였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만능이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기업을 사유화한 총수의 전횡을 주주의 적극적 권한 행사로 제어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지만, 문제의 자녀들이 최근 차기 총수 경영권 자리를 놓고 벌이는 갈등 양상을 지켜보면 근본적인 지배구조 변화 없이 재벌개혁도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미국 등 선진 대기업의 경우 창업 후 2~3세로 넘어가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주류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 재벌은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전횡을 일삼는 독단경영과 불투명한 의사결정구조에 따른 편법 세습은 물론 가족들의 사익편취 관행이 여전하다.

상생협력이나 동반성장이 무색하게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 소득 양극화의 원인 제공과  갑질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간 세간에 보여준 재벌의 폐해는 열거하기에 입이 아플 정도다.

경제개혁연구소(ERRI) 등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자산순위 30대 재벌에 쏠리는 경제력 집중 현상은 여전하다.

1987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55.30%에서 2017년 4월 현재 100.31%의 비중을 차지한다. 삼성 등 국내 5대 재벌 가문의 자산은 2014년 국내 총생산의 무려 76.77%에 달한다.

특히 총수 일가 지분율은 더욱 작아지는 반면 계열사 등으로 확보한 지분율은 급격히 상승해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재벌의 내부 지분율이 1994년 43.6%에서 2017년에는 58.3%로 황제경영과 경영세습 환경이 이미 완성 단계에 와 있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소득 불균형과 사회 양극화로 우리 사회가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점이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 공기로 자리 잡은 재벌의 부실 경영이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도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체험했다.

더욱이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가구의 소득 격차는 지난 20여 년간 최고 속도로 확대해 소득 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에 이른다.

2010년대 들어 고용 없는 저성장의 와중에 저출산·고령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재벌 개혁의 핵심은 대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와 경제력 집중을 막는 공정경제 도입으로 요약되지만 출범 후 지난 2년간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폐로 대변되는 거악은 잡았지만 기득권층의 저항과 국회의 비협조 등으로 여전히 사회 제도화의 길은 여전히 멀기 때문이다.

소유‧경영을 분리하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나오는 것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과 편법 세습이 여전한 사회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재벌 개혁은 우리의 경제체질을 공정하고 생산적인 체제로 바꾸고, 소득 불균형과 저성장 양극화를 개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과정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시대 요구와 미래 세대를 위해 결코 후퇴하면 안 될 개혁 과제란 점에서 정책 당국의 강도 높은 실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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