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의 꿈 공무원…실상은 폐쇄된 문화·갑질 언제까지?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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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충남도청에서 공무원노조가 ‘갑질’을 이유로 국장실을 폐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광역자치단체 특정 국장이 직원들을 상대로 폭언과 갑질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난 24일 해당 국장실 문 앞을 봉쇄한 것. 급기야 부하 직원들이 상사인 국장의 이런 행위를 노조에 고발하고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충남도청 공무원들의 내부 토론방에는 24일 하루 동안 직장 갑질 사례를 토로하는 글이 100여건이나 올라왔다. 노조는 충남도청 본관의 국장실 앞에서 “갑질 국장을 업무에서 배제하라”며 “해당 국장의 인신모독성 발언과 공포 분위기 조성 등으로 직원들은 자멸감이 들어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차례 씩 든다”고 호소했다.

김태신 노조위원장은 “도는 해당 국장의 업무를 배제하고 갑질 행위를 조사하라”며 “해당 국의 직원을 대상으로 감정소진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전했으며, 충남도청 익명 토론방에서도 “불이익을 받을까 봐 관례적으로 묵인하고 당해왔지만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공무원 사회는 갑질이 여전하다”와 같은 글이 게재됐다.

공무원 갑질은 한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남 공무원 2명 중 1명은 지방의원으로부터 갑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공무원노조 전남본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3개월에 걸쳐 전남본부 소속 10개 시군 조합원 2356명의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합원의 지방의회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 25일 발표했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지방 의원들의 공무원에 대한 갑질 여부에 대해 55.6%가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갑질이 없다는 응답은 10.6%. 갑질의 구체적인 형태로는 권위적인 태도(34.3%)가장 많았고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자료 요구(22.5%), 각종 이권개입(22.4%), 처리 불가 민원 반복 요구, 인격 모독(5.6%) 순으로 나타났다.

갑질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공무원 노조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42.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집행부와 의회와의 대화를 통한 자정 노력(37.4%),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해결(12.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공무원 징계 받으면 성과급도 없다”


앞으로 국가공무원들은 경징계(감봉·견책)만 받아도 성과급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지난 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현재 성과급 지급 제외 대상은 중징계를 받았거나 금품 수수·성비위·음주운전 등 3대 중대 비위를 저지른 경우다. 갑질 행위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비인격적 대우’라는 별도의 비위 유형으로 못박아 공직 사회 갑질 문화 근절에도 나선다.

군산시는 공직비리신고를 위한 익명신고 시스템 ‘레드휘슬’을 지난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레드휘슬’은 IP 추적방지 기술을 바탕으로 신고자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익명으로 청탁, 금품수수, 부당업무지시, 내부 비리와 갑질 등 비윤리적 행위를 신고할 수 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철밥통’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공무원의 조기 퇴직자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2019년 재직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6664명으로 2018년(5670명), 2017년(5181명)에 비해 늘었다는 공무원연금공단 자료가 공개됐다. 이 중 임용 1년도 안 돼 공무원을 그만둔 경우가 전체의 26.5%(1769명)에 달했다.

공무원의 경우 갑질 고충을 토로하는 집단은 하급 공무원인 경우가 많다. 업무적으로 ‘갑질’ 하는 상급자를 신고하기 힘든 폐쇄적 문화도 문제로 꼽았다. 인사고충을 전달할 창구는 있으나 소극적인 징계 등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 특히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고충을 밝히는 말단사원에게 문제를 찾으려하고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기 때문에 ‘버티거나’, ‘스스로 퇴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공직사회 내 갑질 신고의 활성화와 철저한 조사 및 징계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철밥통 공무원 ‘그들만의 관행’이 문제…스스로 꼰대인지 돌아봐야


공무원은 고용 안정성이 극에 달해 ‘철밥통’이라 부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신규 공무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방행정직 9급 11년차 공무원이 쓴 책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를 보면 인감증명서, 출생·사망신고, 전입신고 등 주민 삶의 흐름 기록으로 남기는 것과 걸핏하면 큰소리치는 민원인들이 말단 공무원의 일상을 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책에 따르면 주니어와 시니어 공무원 52%가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조직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주니어 45%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시니어는 36%가 ‘그렇다’고 답했다. 시니어들은 90년대 직원들의 ‘개인주의’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고, 주니어들은 ‘톱다운’ 방식의 수직적 업무 환경을 힘들어했다.

취업난과 고용불안 시대에 ‘정년보장’과 ‘연금’이라는 매력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는 공무원. 그 이면에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문화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불만은 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갑질을 당하고도 참아야하는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원래 그런거야”라는 ‘그들만의 관행’을 만든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당연한 건’ 없다.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와 인격모독 같은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그런 답답한 조직에서 ‘창의성’이란 게 발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갑질 피해자가 고통 받는 일 대신 일하기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상급자는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평소 언행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이때 ‘내가 꼰대 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나이를 불문하고 해봐야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자신만의 틀에 갇히지 않는 게 포인트다.

스티브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새로운 세대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여러분도 기성세대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 과거엔 새로운 세대였고 또 기성세대가 된다. 우리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자세부터 공직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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