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이 여성 고객에 술 강요”…해당 직원 대기발령
-대출시 ‘꺾기’ 관행 병폐…“은행 본연 역할 잊지 말아야”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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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자영업들이 부채의 늪에 빠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은행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대출이 절박한 이들이 늘면서 그들의 사정을 미끼로 한 은행의 갑질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은행 지점장이 대출 상담을 핑계 삼아 제 3자와의 술자리에 여성 고객을 불러 술을 강권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대출을 빌미로 한 금융권의 ‘갑질’ 관행이 질타를 받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03조 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8조6000억원 늘었다. 2012년 이후 최고치다. 국내 자영업자는 총 542만명이다. 이 중 238만명이 1인당 평균 3억3760만원의 빚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자영업자들이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실정이다. 매출감소에도 폐업을 하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버거운 임대료와 공과금 감면을 바라고 있다. 돈이 급한 이들은 대출문턱을 낮춰달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책은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렇게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에겐 은행은 갑 중의 갑이다. 그중 A은행의 갑질이 최근 온라인상에 퍼지고 있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다. 글에 따르면 A은행 지점장 B씨가 여성 고객 C씨를 술자리에 불러 음주를 강권한 것. 수출업을 하는 C씨 측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을 겪어 신용보증재단에 대출 신청했는데 받지 못하게 됐다. 대신 재단에서는 A은행 지점장인 B씨를 소개해줬다. 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B씨를 소개받고 얼마 후, 저녁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대출 상담인 줄 알고 나갔던 C씨는 “(본인을)접대 여성처럼 여기는 듯한 말에 모욕감을 느꼈고 두려움에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이 술자리에는 지점장이 ‘회장’이라고 부른 제3의 인물도 있어 B씨는 접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C씨의 손을 잡으며 술을 강권하고,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는 게 글의 주장이다.

A은행은 해당 지점장인 B씨를 대기발령하고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은행 측은 “현재로선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인사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금융계가 자영업자를 어떻게 인식하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글을 본 누리꾼들은 “하다하다 술자리까지 끼워 파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A은행의 간부급 직원의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9년에는 강남의 한 지점장이 직원들을 성희롱해 문제가 됐다. A은행은 이 지점장을 다른 지역 지점장으로 전보 발령을 냈지만 사내 반발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병폐 ‘대출 꺾기’ 막아야…‘금소법’ 시행


은행 갑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출을 빌미로 금융상품을 끼워파는 이른바 ‘꺾기'도 여전하다. 코로나19로 폐업의 기로에 선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부채를 활용하려는 대출자에게 갑질과 끼워팔기를 하는 시중은행 행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출이 시행된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67만7000건의 대출 가운데 다른 금융상품과 함께 가입한 건수는 22만8000건(34%)이다. 대출 3건 중 한 건은 끼워팔기를 한 셈이다. 은행법 등에 따르면 고객의 의사에 반해 예적금 등 은행상품의 가입을 강요할 수 없다. 또 대출받은 고객에게 대출일 전후 1개월 내 다른 상품을 팔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시정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제16차 경제 포럼에서 “코로나 19 극복위해 금융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고통분담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금융권을 향해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지원 과정에서 일명 ‘꺾기’ 또는 ‘끼워팔기’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기준 금리보다 대출 금리는 훨씬 높은 편이다. 앞으로 대출 심사가 더 엄격해질 전망이어서 자영업자와 서민에게 은행 문턱은 높을 것으로 보여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다행히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지난달 25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역할은 갑질을 제대할 제도를 시행시켰다고 끝난 게 아니다. 제도가 올바르게 시행되는지 감시해야 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A금융 ‘ESG금융’ 선언…“먼저 은행 본연의 역할 인지하길”


금융기관인 은행은 수신과 여신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우리가 저축한 돈으로 필요한 기업이나 자영업자, 개인에게 대출을 해주고 대출 이자는 두둑히 받는다. 물론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적 자금을 운용하면서 갑질을 하는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은행의 갑질을 뿌리 뽑기 위해 잘못에 대해선 처벌을 가하고 금융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올해 1분기만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건수는 2622건에 이른다. 작년 대비 10%,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9%나 증가한 수치다. 자영업자 중엔 버는 돈보다 빚을 더 내서 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 할수록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A은행 지점장과 같은 갑질이 일어났을까 싶다.

이런 가운데 금융권은 최근 ESG 경영에 촉을 세우고 있다. 해당 사건을 일으킨 A금융도 지난 22일 ‘ESG금융’을 선언했다. 오는 2030년까지 총 60조원 규모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금융을 조달·공급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핵심전략은 ▲금융을 통한 사회적 기여 확대 ▲ESG 경영 투명성 제고 ▲지속가능경영 의사결정 체계 구축 등이다. 또 이사회에는 ‘지속가능경영위원회’도 신설할 방침이다.

앞서 은행 지점장의 여성 고객에게 대출을 빌미로 술을 강권한 사건과는 대조되는 내용이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최소한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경영을 하자. 돈이 다급한 이들을 먹잇감처럼 대하는 행동부터 고쳐져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흔들리면 우리나라 경제 허리도 불안정해 진다.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가정도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정부과 금융권이 금소법 이행이 제대로 되는지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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