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자 투표 직전 현금 주고 투표 요구…인증샷 요구에 쌍방 과실 협박까지
건설업계 “건설사는 자선단체 아냐, 받은 돈은 결국 조합원 부담으로 갈 것”

[뉴스워커_김동민 기자] “한마디로 현재 강남 재건축 수주 시장은 금권선거다. 브랜드 인지도나 재건축 실적, 상품 구성 같은 객관적인 지표만 보면 게임이 안 된다. 그런데 경쟁이 된다. 금품 향응 때문이다. 결국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받은 돈 이상 재산상의 피해로 나타날 것이다”

지난 15년간 재건축 수주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도시정비업체 모 부장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잠실 미성 크로바와 반포 한신4지구 수주 전을 지켜본 관전평이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가 ‘향후 과도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건설사는 해당 사업에 대한 입찰 또는 시공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한지 불과 일주일도 채 안된 시점이었다. 국토부의 발표는 먼 미래의 일일 뿐 당장 수주를 위해서는 금품 향응 제공은 ‘필요악’이라는 것이 현지 분위기였다.

실제 잠실 미성크로바와 한신4지구 현장을 찾아 수주전 내막을 살펴보면 당장 현금을 줄테니 표를 달라는 회사와 좋은 집을 지을테니 밀어달라는 회사와의 경쟁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 한 재건축 조합원의 제보를 통해 알게된 금권선거는 수주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조합원들에게 매표행위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누구는 200만 받고 누구는 1000만원을 받고

지난달 28일 잠실 미성크로바 조합사무실에서는 한 조합원이 모건설사가 100만원을 줬다는 신고를 하는 등 ‘현금 살포’의 구체적인 증거나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한 조합원은 “홍보요원이라는 사람이 와서 300만원을 준다길래 안 받겠다고 했더니 500만원을, 그 다음에는 1000만원을 준다고 하더라”며 “같은 조합원인데 누구는 200만원을 받았다 하고 누구는 100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기분 나빠 거절했다”고 말했다.

현금이 오가다보니 ‘향응제공은 불법도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실제 한신4지구에서는 지난 추석 연휴에 집집마다 50만원 내외의 고가의 선물세트가 전달되기도 했다. 설명회에 참석하기만 해도 모그룹 리조트 이용권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 금권 선거의 절정으로 변질 된 부재자투표

최근 강남재건축 수주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난히 높은 부재자 투표율이다. 실제 지난 달 반포 1단지 수주전에서 부재자 투표에 총 조합원 2294명 중 1893명이 참여해 무려 82.5%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잠실 미성크로바도 부재자 투표율이 약 82%에 달했다. 표심이 일찌감치 정해졌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표심이 일찍 정해진 이유는 뭘까? 현장의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뿌리는 돈에 비례해 부재자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불리한 회사가 매표를 통해 부재자 투표율을 높여 총회전에 전세를 뒤집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것. 실제 최근 들어 부재자 투표가 시작되기전 2~3일 전에 집중적으로 돈봉투가 살포되고, 이른바 표를 찍었다는 인증샷을 요구한다는 것. 미성크로바 조합원 조모씨도 ”일부 돈을 먼저 주고 나중에 인증샷을 찍으면 나머지를 준다는 요구를 했다“ 고백했다. 심지어 ”돈을 받고 안 찍으면 받은 사람도 처벌대상이라며 은근히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 건설사가 신고센터 운영하고 조합원이 나설 정도로 심각

부재자 투표를 앞두고 금품살포 움직임이 보이자 GS건설은 직접 신고센터까지 만들어 운영할 정도였다. 실제 경쟁에 참여한 GS건설은 한신4지구 부재자 투표일(10~13일)을 앞둔 지난 7일 “한신4지구 재건축사업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린 수주를 공표한 만큼 ‘공정 경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금품 향응제공으로 시끄러워지자 조합원들이 SNS 통해 불법 행위 차단을 동참하기를 독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업계의 강자인 GS건설이 클린 수주를 공표한 이후 경쟁사들이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 과연 클린 수주를 공표한 건설사가 경쟁사의 물량 공세를 이겨내고 수주를 이뤄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에서 금품·향응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미성아크로와 한신의 경우 브랜드 인지도와 금품·향응의 2파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 총회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재산권 지켜 줄 회사에 한 표 행사해야

조합원 입장에서는 결국 현장의 비용은 ‘나중에 청구될 조합원 비용’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재건축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또 문제가 불거질 경우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점도 알아야 한다. 현행법상 수주를 목적으로 한 금품·향응을 제공한 사람과 이를 받은 사람은 5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 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며 “내가 받은 현금이나 선물은 사업비나 공사비 등 어떤 식으로든지 청구될 금액이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미래의 재산권이 받은 돈이나 선물보다 더 크게 침해될 수 있는 만큼 총회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냉정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뉴스워커는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수주전의 실태를 총 2회로 나누어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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