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엄중한 도발이며, 난폭한 침해이다. 미국은 감히 우리를 건드린 저들의 초래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대북 추가제재에 나서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 말이다. 이로써 그동안 완화 분위기였던 한반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美,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북한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북한을 9년만에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미 국무부는 테러확산을 막는 차원에서 1978년부터 테러지원국을 지정해 각종 압박을 가해 왔다. 북한의 경우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으로 1988년에 처음 지정된 바 있다. 1987년 북한 공작원이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858기를 안다만 해상에서 공중 폭발시키는 바람에 115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또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파 사건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이후 20년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있다가, 2008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핵 문제를 놓고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 “1987년 이후 어떤 테러범도 지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테러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9년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된 것이다. 미 국무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을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한 일과 미 대학생 웜비어를 억류하고 숨지게 한 일, 이란과 공모한 핵개발 등의 이유로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를 고려하고 있었다. 지난 8월에 통과된 대북제재 법안에 따라 90일 이내에 국무장관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달 말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북핵 해결 향방이 될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잡히면서 발표가 미뤄졌다. 그 사이에 북미간 대화 가능성도 점점 커지는 듯 했고, 최근 중국의 대북 특사인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하자 북핵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은) 큰 움직임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자”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쑹 부장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결과물없이 빈손으로 귀국하자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압박·제재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사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을 ‘불량국가’로 낙인찍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효과는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무기 관련 수출·판매 금지, 무기용으로 가전용 가능한 이중용도 품목 수출 통제, 대외원조 금지, 무역·금융 등 추가 경제 제재 등의 조치가 행해진다. 이는 안보리 결의안이나 그동안 미국이 독자적으로 제재해온 내용과 중복된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은 단순한 ‘북한 압박용’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선 ‘대북 적대시 정책 강화’를 상징하는 조치도 받아들일 수 있어 더욱 강경한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 대북 추가 제재..해상 무역 봉쇄에 초점, 북 정권 고사 작전

21일(현지시간)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에서 북한 선박 20척을 비롯한 북한·중국기업, 중국인 등에 대한 추가제재를 단행했다.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기업은 북한 해사감독국과 육해운성 등 정부기관, 릉라도 선박, 릉라도 룡악무역 등 무역·선박회사, 노동 인력 송출회사(남남협조회사) 등 9곳이다. 이 회사들이 운영하는 장경호·금성3호 등 석탄수출이나 원유 수입에 관여한 북한 선박 20척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또한 남남협조회사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을 통한 외화벌이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8월 중국 기관 5개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데 이어 이번에도 중국인 쑨쓰동 단둥 둥위안 실업 대표와 이 회사를 포함한 중국 무역회사 4곳을 추가 제재에 포함시키면서 중국을 더욱 압박했다. 단둥 등위안 실업은 미국의 안보 관련 연구기관에 의해 북한의 핵폭탄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련된 기계와 부품류를 장기간 공급해 온 것으로 지목된 곳이다.
미 재무부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쑨쓰동과 단둥 둥위안 실업은 몇 년간 자동차, 전자기계, 무선항법장치, 알루미늄, 철, 파이프 그리고 원자로와 관련된 품목 등 2800만 달러(약 306억원)가 넘는 제품을 북한 수출해온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특히 단둥 둥위안 실업은 대량파괴무기(WMD)와 관련된 북한 기관들을 위한 유령회사들과 연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쑨쓰동은 북한으로부터 광물 등을 수입하고 그 대금으로 북한이 원하는 미사일 부품 등을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8월 북한에 몰래 미사일 부품을 수출하려다 나포된 선박 제순호의 소유주로 알려져 미국 당국의 감시 리스트에 올랐다가 이번에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미국의 이번 제재는 주로 해상무역 봉쇄에 초점을 맞추고 북한 고립을 가속화하는 정책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국제무역의 대부분을 해운 물류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상무역 봉쇄는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미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재지정하는 극약처방을 내놓으면서 북·미간 대화는 사실상 어려워진 셈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미사일 도발로 자국에게 유리한 대화조건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계속 제재를 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양측간 강대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한반도는 또 다시 긴장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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