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전 9시50분경, 명동으로 알려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소재 대연각(大然閣) 호텔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는 1974년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사고와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규모의 재난이었다. 사망자만 163명이었고 다친 사람은 63명이었다. 재산 피해는 당시 소방서 추정으로 약 8억 3820만 원이었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발화 원인은 1층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 있는 프로판 가스통이 폭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가연성 소재로 마감된 호텔 내부였기에 곧바로 호텔 전체로 확대되었다.

화재 진압을 위해 가용 가능한 거의 모든 소방차가 출동했고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되었는가 하면 주한미군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까지 투입되었지만 인명구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옥상에는 헬리포트가 없어 헬기 구조가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어 많은 투숙객이 희생당하였다. 고가 사다리차는 8층 높이까지만 도달할 수 있어 그 이상 고층 투숙객들의 구조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까지 현장에 나와 화재진압을 독려했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수많은 투숙객이 유독가스와 열기를 이기지 못해 창밖으로 뛰어내리는가 하면 이 광경이 TV 생중계로 보도되어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대연각 호텔 화재사고가 발생할 무렵 서울의 인구는 500만을 넘어섰고 고층빌딩은 90여개에 이를 정도로 급팽창 중이었다. 급속한 도시 팽창에 맞추어 고층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늘어갔지만 그에 걸맞은 안전대책과 시설은 태부족인 상황이었다.

대연각 호텔도 지은 지 1년 6개월 밖에 안 되는 신축건물이었지만 화재시 안전을 보장할 시설과 대책은 극히 미비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로 기록되고 있다.

그로부터 46년이 흐른 201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2시 30분경 수원 광교신도시의 한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큰불이 나 1명이 사망하고 소방관을 비롯해 14명이 다쳤다.

불은 지하층에서 불꽃을 이용해 용단(절단)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2시 46분께 경기도 수원시 이의동 광교신도시에 SK건설이 시공 중인 SK뷰 레이크타워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서 불이 났다. 29명의 희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닷세만으로 속보를 접한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불로 근로자 이모(29) 씨가 숨졌다. 또 장모(56·소방위) 씨와 김모(34·소방교) 씨 등 소방관 2명이 얼굴과 양손에 1∼2도 화상을 입고 근로자 12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 9개 소방서에서 헬기 6대와 펌프차 10대 등 장비 57대와 인력 120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대응 2단계는 인접한 6∼9곳의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으로, 화재 규모에 따라 대응 3단계로 확대된다.

소방당국은 신고접수 이후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 대응 1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2단계로 돌입해 대형화재 진압 경험이 많은 주변 소방서들의 인력을 총동원했다.

소방당국의 대규모 진화작업에도 불길이 워낙 거세 큰 불길을 잡는 데에만 3시간 가까이 걸려 이날 오후 5시 23분께 진화가 완료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재까지 확보한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불은 지하 2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근로자 3명이 용단작업을 하다가 불이 났고 근로자들이 자체 진화에 나섰다가 실패한 뒤 불길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것으로 알려져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화재 원인 등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으면서 화재 직후 시행사인 SK건설의 조치는 적절했는지, 부적절한 처신은 없었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특히 일선 후퇴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조기행 SK건설 부회장이 유임 20여일 만에 대형 악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 SK건설은 조 부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화재사고에 대해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과 부상자 및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말씀을 전한다”며 사죄했다.

이어 "시공사로서 책임을 지고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데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 등은 화재는 지하 2층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이 산소 절단기로 철골 구조물을 해제하던 중 불꽃이 주변 단열재 등 가연물에 옮겨 붙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현장에 불티 비산방지나 방화포 등을 설치하지 않고 작업하다가 주변 가연물로 불이 옮아 붙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며 건설 공사 현장 등의 안전 불감증이 또다시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합동감식을 통해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되는 오피스텔 건물 지하2층 용단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특히 당시 현장에 불티 비산방지나 방화포 등을 설치하지 않고 작업하다가 주변 가연물로 불이 옮아 붙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는 인재다. 제천 화재 참사와 광교 대형화재사고 등 분명한 것은 13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판박이로, 어설픈 건축행정법규를 악용한 불법증축, 열악한 소방시스템, 무리한 건설시행 등  빚어낸 후진적 안전사고의 전형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사고라 하더라도 대책을 소홀히 할 때는 언제든지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악재로 제천 화재 참사와 광교 대형화재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초등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소방당국은 물론 건물관리자와 건설시행사 등은 화재 안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