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평화 올림픽을 지향했던 우리의 의도대로 이번 올림픽에는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그 가운데 눈길이 가는 인사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으로 방남을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한정(韓正)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등 북핵 관련 인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북핵 해결 향방은 물론 북미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 김정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등 역대급 북한 고위급 인사 방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대표단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포함됐다. 여기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휘 당 부위원장과 남북 고위급회담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도 함께 한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고 단원 3명, 지원인원 18명으로 구성된 고위급대표단이 9~11일 우리 측을 방문할 계획임을 알려온 바 있다. 그리고 어제인 7일 김여정 부장을 포함한 구체적인 명단을 통보해 왔다. 김여정 부장의 경우 북한 김씨 일가를 뜻하는 이른바 ‘백투혈통’의 일원으로서, 이 일가가 남한 땅을 밟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의도와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외신들도 이를 집중 보도하면서 북미 고위 접촉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북한 김씨 일가의 첫 공식 한국 방문이라면서 “남북은 물론, 어쩌면 북미 간 고위급 접촉 가능성을 높이는 행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인 김여정과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을 고위급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더불어 했다. 또, 핵·미사일 도발을 일관해온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 평화와 화합의 무대에서 “우호적인 표정을 내밀려고 하고 있다”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전문가 분석을 통해 김여정의 방문은 북한이 남한과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고 올림픽을 이용하려는 야망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CNN 방송의 경우는 김영남과 김여정의 방남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잠재적 돌파구를 위한 희망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北·美 대화 이뤄질까?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미국 측 인사에서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로써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만남이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평창올림픽이 21개국 정상급 26명이 참석하는 다자외교의 무대가 되는 만큼 북미가 어떤 형식으로든 외교적 접점을 찾을 수 있게 중재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미국은 올림픽 기간 동안 북한 대표단과 동선 자체를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할 만큼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펜스 부통령도 김영남을 만날 계획이 없다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북한 정권의 억압적인 실상을 지적할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 역시도 남 방문기간에 미측과 만남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조영삼 북한 외무성 국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북측 대표단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접촉 문제에 대해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표단이 남조선에 나가는 것은 순수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하여 그 성공적 개최를 축하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겨울철 올림픽과 같은 체육 축전을 정치적 공간으로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입장은 다르다. 최근 중남미 순방 중 북미 대화 전망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 가능성에도 문을 열어놓는 모습이다.

◆ 문 대통령-김영남의 만남 이뤄질지도 관심사

북한 헌법상 행정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북한 고위급 대표급 단장으로 방남하는 만큼 문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통일부 백태현 대변인은 “(김영남이) 북한 헌법상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정상외교를 담당해온 만큼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한 바 있다. 따라서 청와대에서는 문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의원장의 회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문 대통령과 김영남의 회동을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회동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만나면 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하고 싶다는 김정은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문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회동을 확대해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만남을 정상회담으로 격상하면 안 된다. 그러면 김정은 위원장이 상왕(上王)이 된다”며 “김영남 방남에 대해 청와대가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통해 북핵·미사일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고, 북한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대북 제재 압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로서는 북핵 관련한 인사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자리에 모두 모이는 만큼 이 기회를 북핵 해법의 단초가 될 북미대화를 중재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셈이다. 따라서 북측 고위급 인사와의 접촉도 신중의 신중을 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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