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외환거래에 횡령까지” 은행들 신뢰 잃고 있어

‘환치기’ 기승…STR 기준 명확히 하고, 은행 정화능력 되살려야

1비트코인당 1000만원의 차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차익을 노린 이들이 김치프리미엄을 활용해 환치기가 기승을 부렸다. 관세청은 지난해부터 중국 등에서 비트코인을 싸게 구매해 국내에서 비싸게 파는 환치기 조직들을 추적하고...<본문 중에서>
1비트코인당 1000만원의 차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차익을 노린 이들이 김치프리미엄을 활용해 환치기가 기승을 부렸다. 관세청은 지난해부터 중국 등에서 비트코인을 싸게 구매해 국내에서 비싸게 파는 환치기 조직들을 추적하고...<본문 중에서>

[뉴스워커_경제의 시선] 국내 은행들을 거쳐 해외로 송금된 수상한 자금의 규모가 총 85000억원(654000만달러)에 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앞서 7월에 금감원은 모든 은행에 신설·영세업체의 대규모 송금, 가상자산 관련 송금 등에 해당하는 20억달러(26000억원) 규모의 거래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지시했는데, 조사할수록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 적발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국내 은행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수상한 돈은 신한은행에서는 지난 1년간 13000억원이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 흘러갔다. 비슷한 시기 우리은행에서는 업체 다섯 곳이 8500억원을 해외로 보냈다.

하지만 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14일 금융감독원은 현장 검사 결과 지난 12일 기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 송금 거래 규모는 총 339000만 달러(44200억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은행들이 자체 점검한 결과 외환 송금 의심거래 액수는 315000만 달러(41000억원)로 집계됐다. 85000억원에 이르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자금의 출처와 송금 목적 등을 살펴보고 있다. 돈을 보낸 업체들은 물품 대금을 결제하기 위한 용도라고 당국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돈이 불법 자금 세탁이나 환치기용도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외로 송금된 수상한 자금의 상당액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은행을 거쳐 송금돼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김프)’을 노린 차익거래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상화폐가 해외보다 우리나라에서 비싸게 팔리는 점을 이용해 차익을 남기려 했던 의도로 보는 것이다.

이현복 금감원장은 이번 해외 송금 사태 등 금융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강력한 내부통제 규범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내부통제만으로 금융사고를 막을 순 없지만, 금감원 검사 결과를 보면 은행권이 내부통제가 허술하다는 게 드러난다. 한 은행은 직원이 700억원을 횡령을 저지른 후 해외로 파견 간다고 허위로 보고하고 1년 이상 무단결근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또 일부 은행은 이상 외환거래에 대한 증빙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송금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외국환거래법에서 허위 증빙 시 200만원과 위반금액의 4% 중 큰 금액을

과태료로 내야 한다. 이런 법이 있는데도 은행에서 이와 관련한 금융사고가 난 것은 그만큼 내부통제가 미비했다는 것이다.


상반기 최대 실적 달성한 은행들 횡령과 불법외환거래


상반기 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권이 잇따른 횡령과 불법 외환거래 등 금융사고로 신뢰를 잃고 있는 모습이다. 수백억원대 횡령과 불법 자금세탁의 정황이 있는 외환거래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자체 정화능력이 상실됐다는 판단에 따라 금융업권 전체에 대한 내부통제 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횡령·유용 사건은 86건으로 집계됐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유용 규모는 676000만원 이다. 은행권에서조차 현행 내부통제 수준에 대한 자성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은 억울한 점도 있다고 항변한다.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으면 돈을 보내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의도를 가지고 서류를 위조했어도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의심거래보고(STR)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점을 호소한다.

은행들은 여론의 비난을 잠재우고자 급히 내부통제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준법감시실의 내부통제 점검팀·컨설팅팀·상시감시 모니터링팀을 법규 준수팀와 영업조직·본부조직 모니터링팀으로 재편했다. 신한은행은 하반기 인사에서 장기근속 직원에 대한 부서 이동을 했다. 금융권에서 횡령을 저지른 직원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불법 외환 송금은행 유착 여부도 조사징계 세질 듯


관세청에 따르면 환치기자체가 불법 외환거래다.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다음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후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 화폐로 인출하는 수법이다. 즉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해 국내로 송금 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불어 암호화폐가 고수익 투자수단으로 인식됐다. 투자자들이 모이면서 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했는데, 이때 우리나라 비트코인 가격은 글로벌 가격에 비해 20% 이상 치솟았다. 1비트코인당 1000만원의 차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차익을 노린 이들이 김치프리미엄을 활용해 환치기가 기승을 부렸다. 관세청은 지난해부터 중국 등에서 비트코인을 싸게 구매해 국내에서 비싸게 파는 환치기 조직들을 추적하고 있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1건당 5000달러(연간 누계액 5만 달러)를 초과하는 해외 송금에 대해서는 거래 사유와 금액의 증빙 서류를 제출하게 돼 있다. 송금 목적을 벗어나 외화를 사용하는 등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부과된 과태료는 약 28억원이다. 이 가운데 10억원 정도가 김치 프리미엄투자 목적이었던 것으로 밝혔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이상 거래 대처가 미흡했다고 보고 있다. 신생 또는 영세 무역업체가 거액의 자금을 단기간에 빈번하게 보내는 수상하고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한 만큼, 충분히 이상 거래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해당 은행 영업점 직원과 업체 간의 유착 관계도 검사한다.

검사 결과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무거운 제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기관은 정도에 따라 업무 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된다.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 금융기관 제재는 물론 임원도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와 실효성을 높일 때라고 강조한다. 과연 8조가 넘는 돈이 김프를 노린 코인 환치기와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불법 외환거래가 근절되고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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