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집단 이기주의’라는 지적을 받아온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택배 갈등’의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택배사와 다산신도시 아파트의 갈등이 깊어지자 정부가 다산신도시 논란에 대한 대안인 ‘실버 택배’로 문제해결에 나서려 했으나 “집단 이기주의를 자처한 아파트의 택배 사건을 국민 세금으로 막으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오히려 여론의 반발로 인해 역풍만 자초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주요 포털사이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품격을 지향하기는커녕 택배 갑질만 낳은 격인 아파트”라며 여전히 해당 아파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 그래픽_황규성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품격과 가치’ 위한 갑질?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 어떻게 불거졌나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은 ‘지상 위에 차 없는 아파트’를 지향한 단지에서 아이가 다칠 뻔한 택배 차량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거졌다.

사고 이후 2차 사고에 대한 위험성을 두고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전’을 위해 택배 차량 운행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관리사무소가 ‘택배차량 통제 안내문’을 게재했다.

이에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정문에 택배 물품을 내려 쌓아놓고 주민들이 찾아가게끔 하거나 수레를 사용해 배달, 혹은 배송 자체를 거부하는 등 진풍경이 펼쳐졌다.

해당 아파트 택배 업계 관계자들은 “택배 차량 통제문 이후로 택배 차량이 일절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지 못 하면서 택배 기사들이 손수 수레로 배달해야 하거나 하는 상황이다”라며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해당 아파트 배달을 제외하고도 하루 평균 2~300개의 택배를 배달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의 업무 시간이 상당히 지체돼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상에 올라온 해당 아파트의 ‘택배차량 통제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택배사가 현재 정문으로 찾으러 오던지 놓고 간다고 전화/문자 오면 이렇게 대응하세요”에 대한 대응 방안에 “정문과 동문 주차장 파킹 후 카트로 배달 가능한데 그걸 제가 왜 찾으러 가야 하죠?? 그건 기사님 업무 아닌가요??” 라고 하라.

둘째, “아파트 출입을 못 하게 해서 반송하겠다고 하면 이렇게 대응하시기 바랍니다”에는 “택배기사님들 편의를 위해 지정된 주차장이 있고 카트로 배송하면 되는데 걸어서 배송하기 싫다고 반송한다는 말씀이신데 그게 반송 사유가 되나요??”라고 하라 등의 지침이 적혀 있다.

이어 안내문에는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게재돼 있었다.

이로 인해 해당 아파트의 통제 안내문이 포털사이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품격과 가치를 위해 택배 회사에 갑질을 행해도 되는거냐”라며 택배업체에는 동정론을, 해당 아파트에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이어갔다.

◆ 논란 점화되기는커녕..대안인 ‘실버 택배’로 역풍만 자초돼

아파트 입주민들과 택배업체 간 갈등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입주민들은 택배사에 “카트 배달이 어려우면 지하주차장을 출입할 수 있는 ‘저상 차량’을 도입해달라고 택배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택배 업체는 차량 개조비용 부담과 함께 기사들이 허리를 숙여 일을 해야 하는 불편함 등을 이유로 제안을 거절했다.

여론은 “갈등의 불씨는 해당 아파트가 통제 협조문을 게재한 뒤 시작됐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파트가 제안하고 나선 ‘저상 차량’은 아파트와 택배회사와의 비용 분담 방식의 도입이 아닌 택배 회사 측의 순수 경비만을 들여 저상 차량을 도입하라는 제안이었기에 일방적인 태도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에 사태는 장기화에 빠질 우려가 감돌았고 비난 여론은 더욱 쇄도하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

지난 17일 국토교통부는 17일 김정렬 2차관 주재로 입주민 대표와 택배업체, 건설업계 관계자 등과 회의를 개최해 단지 내 배송을 ‘실버 택배’로 해결한다는 데 합의했다.

실버택배는 아파트 인접 도로에 ‘택배차량 정차 공간’을 설치하고 녹지공간 일부에 물품 하역보관소를 조성하면 이 지점부터 주택까지는 아파트 거주 노인 등으로 구성된 실버 택배 요원들이 도보로 배송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버 택배 운영 비용의 절반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해당 아파트의 택배사가 분담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세금을 왜 특정 단지 아파트 갑질 논란 사건에 대한 보전 방식으로 사용하느냐”라며 반발 여론이 불거졌다.

이에 국토부 측은 “실버 택배는 노인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진행돼온 사업”이라며 “다산신도시 외 다른 단지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론의 비난은 국민청원으로 옮겨갔고 지난 17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다산신도시 실버택배 비용은 입주민들의 관리비로 충당해야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에 따르면 “개인이 필요해서 주문한 택배를 배송받는데 왜 세금을 들여야 하냐”고 지적했다.

이 청원 글은 하루 만에 12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이 밖에도 “다산신도시 아파트에 세금을 쓰지 말라”고 지적하는 청원 글이 130건 이상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의 실버 택배 지원 방침은 19일 철회됐다.

청와대 국민 청원이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특정 아파트 세금 지원을 반대하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다.

국토부는 19일 오후 보도 기사를 통해 “실버 택배 비용을 수익자인 입주민이 부담하는 방안에 대해 택배사와 입주민간 재협의를 중재했다”며 “하지만 합의가 되지 않아, 택배사가 실버 택배 신청을 철회하는 것으로 정부에 최종 통보했다”고 밝혔다.

◆ ‘실버 택배’ 제도 자체 결함 아닌, ‘갑질’이 문제

‘지상 위 차 없는 아파트’는 이미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입주민들의 안전과 쾌적한 실외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다산신도시 아파트가 유독 여론의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는 택배사측과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통제 안내문’을 단지 내에 붙였기 때문이다.

택배사가 차를 대지 못 해 택배 업무에 차질이 생김에도 불구, 카트를 사용하라는 식의 일방적 형식의 아파트 입장이 여론의 입장에서는 ‘갑질’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택배 업계와 전문가들은 차 없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의 ‘실버 택배’ 제도 시행 취지에는 긍정의 입장을 표한다.

앞으로도 지어질 신식 아파트 단지들 또한 “차 없는 지상”을 표방할 것이고, 실버 택배 제도를 시행한다면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노인 일자리 또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택배 업계에서도 다산 신도시 아파트의 갑질로 인해 ‘실버 택배’의 취지 자체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못 하다는 의견을 표하며, 차 없는 지상을 표방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미 환영받고 있는 제도라는 데 입장을 모은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