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신의 해장국>

<미스터 신의 해장국>

‘조합장’이 바보인 이유 세 가지

첫째, 반대파는 조합 못하는 거 잘만 말하는데, 바보는 잘한 거 얘기 못한다.
둘째, 사람들과 밥 한 끼 하면 식대는 당연히 조합장이 내는 줄 안다…돈 없는데
셋째, 수많은 경·조사 돈 걱정에 안 갈 수 없고 10만원이상 안내면 욕할 것 같다.

 말이 많은 세상이다. 누가 한마디 하면 여기서 거들고 저기서 떠든다. 그러면서 소문은 사실이 되고 그 사실은 음해성 비방이 된다. 사실 확인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누가 그랬다더라 한 마디면 그 소문은 진실처럼 여기저기를 나돈다.

조합장이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 조합에서는 추진위원회,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사업을 위해 많은 사람이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고 고뇌하며 사업을 한발 한발 꾸려나간다. 힘든 점 참 많다. 그런 일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다. 너무 많아 그렇다. 한두 가지면 악센트를 넣어가며 말하겠는데 힘든 점이 너무 많아 다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잘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몇몇 조합원이 훤히 잘도 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마냥 잘도 떠든다. 어찌 이렇게도 잘 알까. 의아한 생각도 든다. 그런데 지금 떠드는 이 사람 조합이 잘한 일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조합에서 “사업 추진해 나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냐”라고 말하면 하나도 모른다. 또 그건 월급 받는 당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않느냐며 큰소리를 친다.

시나 구청에서는 그 알량한 인·허가권을 가지고 쥐 흔들며 ‘기부채납해야한다’는 둥 ‘자전거도로 내놔라’, ‘학교 건립해야 하니 토지 내놔라’, ‘동사무소 지어라’하며 자기네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떠넘긴다. 조합은 “그것까지 우리가 왜 해야 하느냐” 며 시청·구청 쫓아가 책상을 들었다 놨다, 명패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핏대 세워 싸운다. 한 푼이라도 조합원 부담 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안 되면 국회의원 찾아가 하소연하고, 시나 구청에 힘 Tm는 사람 여기 저기 수소문해 찾아다녀 손해를 최소화시키려 한다. 그렇게 겨우 겨우 성공시켰으면, 몇 명의 조합원이라도

“조합장, 정말 고생했네, 당신이 있어 우리가 이렇게 잘되어가는것 같네”라고 한마디 해줬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뒤로하고 모두가 어렵지만 그 중에 풀기 어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들을 가지고 몇 사람의 조합원은 아픈 곳 쑤셔 된다. 어디 그 뿐이랴 어디서 하소연 하듯 소주잔이라도 기울이고 있으면 “조합장이 우리 돈으로 술 먹고 있다”고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해댄다. 자기만 알면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 만날 때마다 미주알고주알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마치 진실인 양 떠드는데, 성질 같아선 가서 확 패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명예훼손죄로 걸기도 힘들다. 십 수 년 또는 수십 년을 한 동네에서 살던 사람을 그렇게 매몰차게 할 수 없다. 조합장은 이래서 바보다. 우리 시대 바보가 바로 여기있다. 성격은 ‘지리산 순이’요, 마음은 ‘예수님’인데. 이를 어찌하랴. 그렇게 바보인 것을.

조합장은 바보다. 자기를 비방하고 음해하는 사람과 웃으며 대면하니 참 바보다. 속마음이랴 그렇겠는가. 보기에는 한 주먹감도 되지 않는 놈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니 들어서 패대기라도 치고 싶다. 하지만 묵묵히 들어준다, 그것도 웃으며.

이런 저런 얘기하려하니 사태를 부드럽게 진정시키기 위해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한다. 그러면 돈은 누가 내나. 바보가 낸다. 자기 개인카드를 식당 주인에게 내민다. 그렇게 잘 달래고 먹여 돌려보낸다. 그런데 또 이상한 소문이 돈다. 조합장은 조합 돈 펑펑 쓰고 다닌다고.

조합에는 참 많은 업체사람들이 찾아온다. 자기 상품 좀 봐 달라는 둥 자기가 제공하는 용역이 최고라는 둥 왜 이리도 업체는 많은지. 그런데 공교롭게 점심 때 다되어서 찾아온다. 찾아온 사람 매정하게 돌려보낼 수 없어 점심이라도 한 끼 먹여 보낸다. 점심 값 업체에서 내면 혹여 코 낄까봐 바보가 계산한다. 카드영수증 받아 들 때마다 집에 있는 마누라 얼굴 생각난다. 월급이라고 얼마 되지 않는데 점심값 계산하니 미안하다. 무슨 경·조사는 왜 이리 많은가. 일주일에 3~4개는 보통이다. 심지어 토요일 하루에만 4곳의 상갓집을 찾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안 가볼 수 없다. 조합원의 일 일 때도 있고 사회생활 하다 보니 개인적인 경·조사일 때도 있다.

바보는 혼자다. 조합원은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른다. 이런 사람 모두가 집안 행사 있으면 아무생각 없이 문자를 날린다.

‘○○부친상 ○○병원장례식장 ○○호’

통상 판공비는 100만 원 정도한다. 물론 다 쓰지 않을 때도 있다. 화환도 한 달에 3개 정도를 꽃집에 맞춰놓기도 한다. 이 또한 남을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자란다. 수천 명을 한 사람이 책임져야하니 어찌 남아 있겠는가.

옛날이 좋았다. 경·조사에 2~3만원이면 됐던 그 시절이 좋았다. 요즘에는 잘 모르는 사람이면 5만 원이고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다하면 최소 10만원, 그 이상을 내야 한다. 적게 내면 그 사람이 화낸다.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못쓰겠어!”하고 결국 돈 쓰고 욕먹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의 예의를 차리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니 늘 쩐이 부족하다.

옆 단지 또는 구역의 조합장은 돈 잘 쓴다. 항상 대장역할을 하고 상석에 앉아 식사하고 돈도 척척 잘도 낸다. 가끔 의아할 때도 있고 부럽기도 하다. “저 사람은 대체 돈이 얼마나 있기에 그렇게 잘 내나”

돈이 없으니 사람도 쪼잔 해 진다. 바보들이 그렇다. 조합장이 되던 시절 여기저기 행사참석우편이 날아온다. 전화가 오기도 한다. 참석 잘 했다. “역시 조합장되니 주변에서 알아주는 구나”한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런 우편물 날아올 때면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엔 얼마를 내야 하지?” 조합장은 봉이다. 봉 됐으니 바보가 맞다. 잘났다고 하지도 않지만 해 봐야 ‘봉’일 뿐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사람들에게 욕만 먹고, 개인적인 소송도 들어온다. 인생의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여태껏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들 하기 싫다는 나를 조합장하라고 꼬시고 밀어서 어찌어찌 하게 됐는데 지금에 와선 욕을 해댄다. “사람도 아니다.”

그만 두려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때려치우자는 생각 굴뚝같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책임감 때문인지, 내가 그만두면 조합은 누가 꾸려가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걱정부터 앞선다. 잘 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만두면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 잘 지낼까하는 생각도 머릿속을 스친다. 그만 두겠다고 조합사무실 직원들에게 이야기 하면 난리다. 대안도 없는 반대파들 이야기 때문에 절대 의지 꺾여서는 안 된다고, 맞다. 그들은 대안이 없다. 그저 떠들 뿐이다. 대한민국은 생각의 자유, 의사의 자유가 있다. 그래서 마냥 떠든다. 자꾸 떠드니 주변에서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듣게 된다. 그런 사람 때문에 조합원과 직원들 버리고 나가려니 이건 아니다 싶다. 결국 또 눌러 앉는다. 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으며 눌러 앉는다. 그래서 바보다. 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도 결정짓지 못하는 이 시대 늙다리 바보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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