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특집…기록을 뿜어대는 부산>

<부산 특집…기록을 뿜어대는 부산>
2006년 부산에 입성한 대다수 건설사 조합에 자금중단…조합 언성
대우건설은 조합의 고통 분담 2009년부터 수주조합에 운영비 수혈


부산하면 해운대, 자갈치, 갈매기, 마스코트 부비, 용두산, 오륙도, 동백꽃 등 여섯 일곱 가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부산을 알고 있는 사람 일부만이 다대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하구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곳 중 하나다. 부근(강서구)에는 작년 12월에 개통된 거가대교(부산 가덕도~거제시 유호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지난 10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던 부동산시장에 대 반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그곳이 당리1구역(조합장, 김말일)을 재개발하는 푸르지오아파트 분양현장이다. 조합에서는 이날을 회상하며 ‘110대 1’이라는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청약가점 또한 65점으로 커트라인을 높게 유지했다고 한다. 이 같은 경악은 1개월 뒤 인근 다대푸르지오 분양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주거면적 85㎡를 중심으로 1, 2차를 나눠 분양했던 다대주공아파트 재건축(조합장, 류승호) 다대푸르지오는 중·소형 주택형에서 105대 1이라는 두 번째 기적을 뿜어대며 성공리에 분양을 마치게 되었다.

부동산경기의 시작이라는 서울과 경기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결과이다. 아니 미분양으로 남을 것이 두려워 분양시기조차 잡지 못하는 형국에 부산의 푸르지오는 달랐다.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부산에 체류하면서 알게 된 뒷이야기는 ‘성공’이라는 결과의 뒤안길에는 무수한 그늘의 굴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당시 부산의 부동산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기였다. 대우건설은 남달랐다 근래에 4-5년간 사하구내 신규아파트 분양이 없던 점과 푸르지오 브랜드로 통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분양시장에서 대우건설의 엄청난 고민의 흔적이 묻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업재개를 한다는 것은 대우건설의 경영진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대우건설이 수많은 조합원으로부터 삿대질을 받아야 했고 육두문자가 언급되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부산지사(지사장, 박성필) 분명 조합원의 이익을 분양자에게 나누면 그 뜻이 받아들여져 성공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결과는 작년 10월에 꿈 같이 나타났다. 분양 첫날 길게 줄을 선 청약자들과 어디에서 소식을 듣고 나타났는지 빼곡히 들어찬 속칭 ‘떴다방’까지.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이날 대우건설 박성필 부산지사장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박성필 지사장은 “당리푸르지오 분양을 앞두고 심한 압박감으로 자다가 악몽을 꾸기도 수차례, 심지어 ‘안 돼’ ‘안 돼’하며 꿈을 깨다가 팔을 휘둘러 같이 자고 있던 집사람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에서야 박 지사장이 웃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끔찍했을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은 다대1주공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졌지만 다대1주공재건축의 아픔을 모르고서는 ‘성공’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다대1주공재건축 조합의 류승호 조합장은 모든 사업과정을 조합원과 같이 하기로 유명하다. 시공사 대우건설과의 협의 하나 하나를 모든 조합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뤄 조합원이 한 치의 의심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다. 투명 조합의 기준처럼 느껴진다.

다대1주공은 회의가 있기 하루 전날 조합원에게 문자로 알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회의는 저녁 7시경에 한다. 조합원이 참석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늦은 7시부터 시작되는 협상은 새벽1~2시를 넘기기 일쑤다.

당시 다대1주공 담당이었던 대우건설 정상한 소장은 그날의 회상을 이렇게 전했다.

“회의 장소에 갈 때마다 책상 사이로 자기 쪽은 혼자 있고, 상대편은 40~50여명이 참석했다. 내가 한마디 하면 저쪽에서는 수십 명이 말을 한다. 마치 인민재판을 받는 듯 했다.”대우건설은 당리푸르지오와 마찬가지로 한 사하구에 2개의 사업장을 동시에 벌려놓기가 불확실한 시장상황에서는 또 다른 모험을 감수하여야 했다.

지분제 사업이었기에 대우건설이 미분양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분양을 미루고 싶은 심정은 대우가 더 했을 것이다. 대우건설 부산지사는 조합원의 고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사업을 중단하면 대우로써는 큰 리스크를 피해가는 것이지만 조합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위험하지만 분양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엄청난 결단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피 말리는 전쟁 속에 일군 결과였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리푸르지오와 다대푸르지오의 대성공은 대우건설이 위험을 무릅쓰고 얻어진 뜻 깊은 승리였다. 어느 건설사조차도 부산에서 분양을 언급조차 못했던 시기에 감행했던 역사로 그 의미는 조합의 열정과 대우건설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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