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 번 바랍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시켰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 “이번 저희 가족득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 및 대한항공 임직원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대한항공의 회장으로서,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에 대하여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저의 잘못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담당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이 2014년 12월과 2018년 4월 직접 발표한 사과문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칠순을 코앞에 둔 노인이 자식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여러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게 딱해 보인다. 그럼에도 ‘땅콩회항’ 갑질 논란이 불거진 지 4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물벼락’ 갑질이 나온 걸 떠올리면 조 회장의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있었는지 물음표가 따라붙는 게 사실이다.

국민 대다수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웍스 사장 및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에 대한 성난 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조현태 대한항공 사장을 넘어 조양호 회장까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전원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헌데 이상하다. 최근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조양호 회장이 게임의 승자가 돼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국토교통부, 관세청, 교육부 등 정부의 주요 당국들이 조 회장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의 경우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올 상반기에만 한진 주요계열사에서 58억 원의 연봉을 챙겼다. 이는 주요 대기업 오너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으로 최근 그에게 ‘연봉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경이다.

조원태 사장도 아버지인 조 회장 못지않다. 인하대 부정 편입학 사실이 발각됐지만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을뿐더러 주요 포털사이트에 그의 학력 역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로 명기돼 있다. 조 회장 부자(傅子)가 겉으로는 치명상을 입은 듯 행동하고 있지만 신변에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궁지에 몰린 건 조양호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아닌 정부 주요 당국이라는 이야기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조사에 나섰던 기관 중 어느 곳 하나 뚜렷한 조치를 취한 곳이 없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와 관세청은 한진그룹과 유착 논란에 휘말리면서 체면을 구겼고, 조원태 사장의 편입학 취소를 요구한 교육부는 인하대의 이의신청으로 비웃음을 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그리고 들끓는 민심에 성급히 덤빈 결과가 아닌가 싶다.

분명한 사실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에 잠재돼 있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울러 제왕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소모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해 굳이 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유착 등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정부가 앞장서 이번에 단호히 끊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에 한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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