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남북정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9월 평양공동선언(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군사합의서)’에 비준했다.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에서 후속 선언의 성격을 가진 평양선언을 먼저 비준한 셈인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재정 부담과 입법 사항이 필요할 때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남북관계 발전법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의 후속 격인 평양선언을 문 대통령이 먼저 비준한 것에 대해 야당의 반발이 거센데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 문제는 정치적 갈등의 핵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9월 평양공동선언(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군사합의서)’에 비준했다.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에서 후속 선언의 성격을 가진 평양선언을 먼저 비준한 셈인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재정 부담과 입법 사항이 필요할 때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남북관계 발전법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담당>

문 대통령, ‘북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견인을 위해 우선 비준 필요’

문 대통령이 23일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에 대해 비준하면서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남북 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 쉽게 만들어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 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 이루어지는 것이 불투명한데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고 있어 우리 정부 권한으로 가능한 조처를 통해 문 대통령의 임기 안에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후속 성격을 갖는 ‘평양선언’에 대해 우선 비준했다는 점에서 절차적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07년에도 남북 총리회담 비준동의안이 국회 계류 중인 상황에서 후속 합의서인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 합의서, 서해 평화협력 추진위원회 합의서, 국방장관 합의서 등이 국무회의 의결 뒤 비준된 사례가 있다”면서 과거의 사례를 들어 이번 비준의 정당성을 밝히고 있다.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비준을 왜 먼저 했을까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후속 성격인 평양선언을 먼저 비준한다고 하면 야당 반발이 거셀 것으로 문 대통령은 예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를 강행한 문 대통령의 의도는 무엇일까.

대체로 판문점선언 비준 지연·불발에 대비하고 이산가족사업 등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없는 사업부터 우선 추진해 나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 성격상 국회비준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에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의 경우 국회가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에 대해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하면서 철도·도로 협력과 산림협력 등에 총 2천986억 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비용추계서를 낸 바 있다. 이는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국회 비준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평양선언에는 철도·도로 연결 현대화 사업의 착공식 연내 개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 재재 등에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주는 요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제처도 재정적 부담이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만큼 그 후속 성격인 평양선언은 비준동의 사항이 아니라는 해석을 통일부에 보낸 바 있다.

또한 청와대는 평양선언이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성격도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서에 담긴 내용 자체로 효력이 발생한다고도 판단했다. 그래서 판문점선언 비준없이 평양선언 자체만으로도 비준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또한 평양선언 비준으로 남북 정상 합의를 제도화·법제화 하여 남북 정상 간의 합의가 더 이상 번복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간에 합의한 내용에 약속한 시한이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도 “남북 간에 합의한 내용에 약속한 시한이 있는 것 아닌가, 그 시한에 맞춰서 약속을 이행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 야당 반발 거세

예상했던 대로 이번 비준을 두고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상위성격을 갖는 판문점 선언이 지난달 11일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속 합의인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를 먼저 비준하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전문가는 “평양선언의 대통령 비준은 판문점 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일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하면 평양선언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법제처 해석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청와대가 평양선언이 독자적 선언으로 효력을 갖는다고 했는데, 평양선언엔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 예산 조치가 수반되는 행위가 명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법제처의 해석이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얼마부터 중대한 부담인지가 문제”라는 의견을 내놨다.

또 다른 남북관계 전문가는 한 언론을 통해 “보통 정부가 국회의 비준 동의를 안 받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데 판문점 선언은 정부가 국회 비준을 받겠다고 하는데도 야당이 거부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야당이 국회 비준을 거부하자 빨리 남북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야당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문 대통령이 이번 비준을 강행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는 결국 또 하나의 정치적 갈등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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