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기자의 窓] 돌고 도는 재벌 갑질·알바 갑질...갑질로 얼룩진 사회 속엔 프롤레타리아의 설움이 있다
[뉴스워커_기자의 窓] 돌고 도는 재벌 갑질·알바 갑질...갑질로 얼룩진 사회 속엔 프롤레타리아의 설움이 있다
  • 김태연 기자
  • 승인 2018.12.11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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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봉 1억 원을 받는 회사원이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다. 비단 고소득, 사회적 지위와 영예를 갖게 되는 전문직종인 의사도 예외사항은 아닐 것이며, 단순 회사원, 공무원, 영업사원 등도 마찬가지로 계급적 제약이 있는 신분이자 그 신분이 우두머리가 형성한 수직적 구조에 종속된다면 영락없이 프롤레타리아 일 수밖에 없다. <그래픽_황성환 그래픽 1담당>

[뉴스워커_김태연 기자] 칼 마르크스 사상에는 흔히들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의 사상을 관철하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계급의 계급화를 인정하고 노동의 가치를 자본력에 종속시켜 착취의 기반으로만 노동의 평가를 심화시키게 된다는 경고에서다. 하지만 한동안 죽은 정의 취급받던 마르스크 사상은 양극화, 경제 불평등, 인간 이기주의가 심화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느새 다시 꺼내보게 하는 진리 그 자체가 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칼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자본가의 자본과 그로부터 작동되는 권력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 사회의 최하층 계급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더욱 비껴가자면 자본가의 ‘자본력’으로 일컫는 상품의 가치 생성 구도에 노동자가 종속되면서 임금과 같은 대가성을 쥐어주고 자본가가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취해가는 구도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현대사회에 빗대 의의를 두자면, 연봉 1억 원을 받는 회사원이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다. 비단 고소득, 사회적 지위와 영예를 갖게 되는 전문직종인 의사도 예외사항은 아닐 것이며, 단순 회사원, 공무원, 영업사원 등도 마찬가지로 계급적 제약이 있는 신분이자 그 신분이 우두머리가 형성한 수직적 구조에 종속된다면 영락없이 프롤레타리아란 것이다.

지난 2주 전 발생한 ‘맥도날드 갑질 사건’이 여론의 울분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은 그전의 갑질에 비하면 사실 그저 놀랄 것 없는 사안이었다. 웹하드 카르텔 의혹과 얽힌 양진호 회장의 무차별 폭행 사건의 충격이 이미 분노를 관통했을 때 쯤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조현민 진에어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일일이 읊기도 힘든 무수한 갑질 실태가 겹겹이 쌓여있다. 늘 그래왔듯 갑질은 공존해왔고 그 사이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설움이 스며들어 있다.

노동 시장에 귀속되는 순간부터 회사의 이익창출을 위해 서비스 정신을 온 몸에 도배하고 매뉴얼을 따라 노동자는 기계화된다. 고객 만족을 축적하고 고객 불편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속성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여 이윤을 창출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적정선상 이상의 기대를 모으는 자본가, 일부 분노조절장애로 무장한 소비자들은 서비스와 노동 가치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인격까지 사유화하고 제어하려 들고 있다.

내가 지불한 자본에는 따라와야 할 당연한 기대 그 이상의 것이 심어져 있기를 원하는 것, 그로부터 당당히 초월한 서비스와 노동력을 요구하는 이들은 자본가의 종속 구조에 놓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 심어진 현장으로 다가가 맹공을 펼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일상이 된 것은 자본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단순한 등가교환 이상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자본론의 심취는 자본의 절대적 힘과 권력을 더 중요시한다. 자본가들, 혹은 힘과 배짱을 거머쥔 소비자들은 합세해 프롤레타리아의 머리를 짓누른다. 노동 매뉴얼 그 이상의 초월적인 것을 바라며 자본의 가치가 머리 꼭대기를 짓누르기를 바란다. 이에 프롤레타리아는 무력화된다.

갑을문화 정립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본주의에서 멀어져 자본주의에 심취된 우리 사회의 속성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인구 5000만 명 중 대다수는 자본시장에 나서며 책정된 값에 의해 재화의 취급을 당한다. 이를 지적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는 노동 강도에 비해 적게 책정된 급여 문구를 보면 ‘열정페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재화의 취급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인구가 많아 감당되지 않을 때는 낙태버스를 운영해 불필요한 도구화의 생성을 억제시키다가도, 고령화 사회에 뒤따라올 파장을 막기 위해 저출산 정책을 유도하는 것 또한 명백히 인간을 도구화한 현대사회주의의 폐단을 상징한 형태가 아닐까.

갑질은 개인과 개인의 분노조절장애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등한시하다 못해 노동자의 인권마저 사유화하고 제어하려 한 신자유주의의 폐단에 모든 갑질이 생성되고 있다. 우리부터 자본에 종속된 자유 의지를 되찾는다면 사람이 중심인 사회를 만들고 노동자를 급과 값으로 따지려 드는 형태를 해소하는 데 더욱 가까워질 지도 모른다. 칼 마르크스 사상 따위는 정말로 ‘철 지난’ 사상 따위로 정의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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