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1담당

주요 7개국(G7)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중국 국영기업이 이탈리아 항구 4곳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내용으로 협상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24일까지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유럽을 비롯한 미국은 이탈리아의 이러한 선택이 중국의 유럽침투를 허용하는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 21~24일 시 주석 이탈리아 방문, MOU 맺을 듯

이탈리아 라스탐파 등 현지언론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노바에서 열린 외교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중국의 일대일로는 사회기반 시설을 연결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라며 "이탈리아는 중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이 체결할 양해각서(MOU)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5페이지 분량의 초안에는 이탈리아가 과거부터 동서양을 잇는 교역로 역할을 했으며 영국이 정치적, 상업적 관계를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역내 평화를 강화하기 위해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는 내용과 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자금을 받아 공동 사업을 하고, 도로와 철도 교량, 민간항공, 항만, 에너지, 통신 등 이해를 공유하는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AIIB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유럽연합(EU)나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확장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하는 서방으로 중국의 세력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반발을 우려한 이탈리아는 AIIB에서 자금을 지원 받기로 한 것이다.

그간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파키스탄, 라오스,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들은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의 인프라 펀드를 통해 차관을 받았다. 즉 중국이 상대국에 초기 자본을 빌려주고 주로 중국 기업들을 통해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완공 뒤에 얻는 운영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구조인데, 사업 채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재정난으로 이어져 결국 참여국 대부분이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AIIB의 경우 중국이 주도해 세운 다자간 개발은행이기는 하지만 중국 국유은행과는 달리 EU등 참여국들이 요구하는 경쟁입찰, 환경영향평가 등 국제 기준에 맞춰 돈을 빌려줘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AIIB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대출을 해주는 기관인 만큼 이탈리아로서는 EU등 주변 서방국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 이탈리아 중국에 항구 4곳도 개방..서방국가 긴장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기로 한 이탈리아는 중국에 항구 4곳을 개방했다. 20일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탈리아는 기존에 발표한 트리에스테 항구 외에도 라베나 항구, 제노바 항구, 팔레모토 항구를 개방한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 국영기업이 이탈리아 항구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해 수출 확대를 꾀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어 중국과의 무역을 활성화하고 중국으로부터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정부는 일대일로 참여가 이탈리아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과 EU 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서방국가 입장은 다르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일대’가 실크로드 경제벨트, ‘일로’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인데, 해양 실크로드는 중국 광저우에서 이탈리아까지다. 그러니까 중국입장에서 보면 이번 이탈리아 투자로 해상 실크로드 출구를 확보한 셈이 된다. 그러나 서방국가 입장에서는 입구가 뚫린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가 중국 국영기업에 지분을 갖도록 허용한 항구 가운데 트리에스테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 육로와 직접 맞닿아 있어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중국 국유 항만기업 자오상쥐 그룹이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미국과 EU는 유럽으로 향하는 교두보가 될 항구들이 중국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EU는 중국이 유럽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문을 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EU 집행위원회 역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동참은 EU의 공동입장과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중국과 글로벌 패권 다툼을 하고 있는 미국은 더욱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게릿 마키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20일 “중국의 약탈적 투자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건 이탈리아 국민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일대일로 더욱 확대하는 중국

서방국가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그리스, 헝가리, 세르비아 등이며 지중해 소국인 몰타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몰타는 소국이기는 하지만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일대일로 확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미국이 화웨이를 전방위로 압박하자 돌파구로 유럽을 끌어안는 전술을 펴고 있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반화웨이 전략 등 중국 봉쇄 작전을 폈던 미국의 전략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더불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패권 다툼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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