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특집…기록을 뿜어대는 부산(특집)

 

▲ 2010년 4분기 이전의 부산 부동산시장은 그야말로 초토화였다. 지어도 안팔리고, 할인해도 팔리지 않는 부산의 아파트시장은 좌절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부산의 다대푸르지오가 분양하는 순간. 부산시민은 와~하는 환성을 질렀다. 그들은 느꼈다. 이것이 바로 희열이구나 하는 것을...

[부산=신대성 기자] 부산하면 해운대, 자갈치, 갈매기, 마스코트 부비, 용두산, 오륙도, 동백꽃 등 여섯 일곱 가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부산을 알고 있는 사람 일부만이 다대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하구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곳 중 하나다. 부근(강서구)에는 작년 12월에 개통된 거가대교(부산 가덕도~거제시 유호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지난 10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던 부동산시장에 대 반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그곳이 당리1구역(조합장, 김말일)을 재개발하는 푸르지오아파트 분양현장이다. 조합에서는 이날을 회상하며 ‘110대 1’이라는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청약가점 또한 65점으로 커트라인을 높게 유지했다고 한다. 이 같은 경악은 1개월 뒤 인근 다대푸르지오 분양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주거면적 85㎡를 중심으로 1, 2차를 나눠 분양했던 다대주공아파트 재건축(조합장, 류승호) 다대푸르지오는 중·소형 주택형에서 105대 1이라는 두 번째 기적을 뿜어대며 성공리에 분양을 마치게 되었다.

부동산경기의 시작이라는 서울과 경기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결과이다. 아니 미분양으로 남을 것이 두려워 분양시기조차 잡지 못하는 형국에 부산의 푸르지오는 달랐다.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부산에 체류하면서 알게 된 뒷이야기는 ‘성공’이라는 결과의 뒤안길에는 무수한 그늘의 굴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당리1구역재개발은 당초 제시된 비례율은 100%를 상회했다. 비례율 100%란 재개발 후 종전 자산가치와 맞먹는 사업이익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부산의 부동산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기였다.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대우건설로써는 조합원 비례율 100%를 보장하자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로서는 ‘높은 분양가=미분양사태’라는 공식이 성립된 시기였기에 조합원에 제시되는 비례율을 낮출 수밖에 없었지만 조합원으로써는 자신의 이익은커녕 오히려 손해를 봐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를 승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이일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부동산시장을 인식해 대우건설의 의지를 전격 수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셀 수도 없는 조합과 대우건설과의 협상과정이 있었다. 때론 대우건설이 수많은 조합원으로부터 삿대질을 받아야 했고 육두문자가 언급되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부산지사(지사장, 박성필) 분명 조합원의 이익을 분양자에게 나누면 그 뜻이 받아들여져 성공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결과는 작년 10월에 꿈 같이 나타났다. 분양 첫날 길게 줄을 선 청약자들과 어디에서 소식을 듣고 나타났는지 빼곡히 들어찬 속칭 ‘떳다방’까지.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이날 대우건설 박성필 부산지사장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박성필 지사장은 “당리푸르지오 분양을 앞두고 심한 압박감으로 자다가 악몽을 꾸기도 수차례, 심지어 ‘안돼’ ‘안돼’하며 꿈을 깨다가 팔을 휘둘러 같이 자고 있던 집사람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에서야 박 지사장이 웃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끔찍했을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은 다대1주공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졌지만 다대1주공재건축의 아픔을 모르고서는 ‘성공’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다대1주공재건축 조합의 류승호 조합장은 모든 사업과정을 조합원과 같이 하기로 유명하다. 시공사 대우건설과의 협의 하나 하나를 모든 조합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뤄 조합원이 한치의 의심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다. 투명 조합의 기준처럼 느껴진다.

다대1주공은 회의가 있기 하루 전날 조합원에게 문자로 알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회의는 저녁 7시경에 한다. 조합원이 참석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늦은 7시부터 시작되는 협상은 새벽1~2시를 넘기기 일쑤다.
당시 다대1주공 담당이었던 대우건설 정상한 소장은 그날의 회상을 이렇게 전했다.

“회의 장소에 갈 때마다 책상 사이로 자기 쪽은 혼자 있고, 상대편은 40~50여명이 참석했다. 내가 한마디 하면 저쪽에서는 수십 명이 말을 한다. 마치 인민재판을 받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초 제시된 다대1주공의 무상지분율은 110%였다. (무상지분율이란 시공사가 대지지분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평형을 추가부담금 없이 조합원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그런데 갑자기 80%가 주어진다는 것은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가 아닌 ‘헌 집과 돈을 내야 새집 준다’는 것으로 바뀐 것과 같다. 실로 살을 잘라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니 어찌 조합원의 언성이 높지 않았을까.
우여곡절 끝에 무상지분율 85%로 전격 타결을 짓게 된다. 조합원은 자신의 살을 도려냈고, 대우건설은 미루려는 마케팅팀의 조사결과를 뒤로하고 감행한 모험이었다. 지분제 사업이었기에 대우건설이 미분양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분양을 미루고 싶은 심정은 대우가 더했을 것이다. 대우건설 부산지사는 조합원의 고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사업을 중단하면 대우로써는 큰 리스크를 피해가는 것이지만 조합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하여 지분율을 낮추고 위험하지만 분양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피 말리는 전쟁 속에 일군 결과였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리푸르지오와 다대푸르지오의 대성공은 대우건설이 위험을 무릅쓰고 조합원의 고통을 이해하여 얻어진 뜻 깊은 승리였다. 어느 건설사조차도 부산에서 분양을 언급조차 못했던 시기에 감행했던 역사로 그 의미는 조합의 열정과 대우건설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만하다./

<침체라는 긴 터널 빠져나온 부산재개발>
침체의 긴 터널…그러나 그 속에 핀 희망꽃 핀 ‘부산재개발’
협력업체·건설사 모두 발을 빼던 시기, 자금줄 막힌 조합은 사업포기 일로까지
하지만 대우건설은 자금수혈로 조합 살리기 나서 ‘역시 대우 맨’이라는 평받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국의 부동산시장은 침체일로로 돌아섰다. 특히 부산은 과도한 주택공급물량으로 인해 위기의 불씨를 안고 있던 곳으로 이미 2006년 재개발수주전이 들끓던 때부터 일각에서는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곳이다. 그 폭발의 도화선이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이후 부산의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침체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사업을 준비했던 곳은 물론 이미 사업이 추진되던 지역까지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하나 둘 협력업체가 떠나기 시작했고, 건설사까지 지원하던 자금을 일순간 중단해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 초부터 불기 시작한 조합설립무효소송은 부산 재개발 재건축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조합설립무효소송이 제기되고 연이은 조합(인·허가청)의 패소로 사태악화의 정중앙에 들어서게 된다.

건설사에서는 언제일지 모를 시장활기를 기약하지 못해 조합에 자금줄을 막고, 조합을 더욱 힘들게 했고, 2006년 문전성시를 이뤘던 재개발·재건축조합은 개점휴업사태로 까지 갔다.

그날을 회상하는 조합장들은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고 했다. 한 조합장은 건설사가 자금줄을 막자, 사무실 운영은 해야 해 자신이 가진 차까지 팔아가며 운영비로 충당하는 현상까지 일었다.

이런 시기 대우건설은 달랐다. 조합이 힘들면 대우건설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2009년부터 최소한의 비용이지만 조합에 운영비를 지급하게 된다. 그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온 조합에게는 단비와 같았다고 한다. 부산시 남구 용호동을 재개발하는 용호2구역재개발 김영재 조합장은 “정말 대우건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김영재 조합장은 “아직도 다른 건설사가 수주 한 현장에서는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며 “그들이 우리를 보면 너무 부러워 한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왜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 없는 사업에 자금을 지원했을까. 이에 대해 부산지사 이한승 소장은 “그분들의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용호2구역의 김영재 조합장과 차대호 이사는 모든 자금이 끊긴 시기 서로가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두 사람이 무거운 몸을 끌고 부산 본사에 하소연하러 갔다한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이한승 소장이었다. 이 소장은 당시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올라온 두 분을 그냥 보내드릴 수 없어 따뜻한 점심 한끼 대접하며 ‘자신이 부산에 내려가 용호2구역을 맡아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김영재 조합장의 말이다. 그런데 실제 거짓말처럼 들렸던 이 소장의 말이 얼마 후 현실로 나타났고 조합 운영비까지 받게 돼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김 조합장은 재개발 준공 후 머릿돌에 ‘이한승’소장의 이름 석 자를 넣기를 희망한다고까지 했다. 얼마나 고마웠기에 그렇게까지 감사함을 표현할까. 이해할 만도 하다.

▲ 대우건설 부산지사 임직원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성필(지사장), 이한승, 한미영, 곽미연, 김송이, 이현희, 운종표, 변태일

※기사 후기: 대우건설의 부산성공스토리를 진행하게 된 것은 조합측면에서나 마케팅적 측면에서 또한 사업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당시까지 부산의 재개발에 대한 인식은 마이너스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리재개발과 다대1주공은 철거가 끝난 상태에서 사업이 미뤄진다는 것은 끝 모를 손실을 감내해야 함과 같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왜 사업을 진행하지 않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 했다. 하지만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분양 후 발생하는 리스크는 기업이미지 훼손뿐 만 아니라 관리비용과 건설비용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 속에서 조합과 건설회사가 서로 신뢰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 굳은 의지로 진행했기에 지금의 성공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결국 이 글의 요지는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마음 커야 한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이익에 묶여 이도저도 못하는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합일된 마음으로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부산의 ‘푸르지오’ 성공스토리가 보여주고 있다.

※알립니다.
본 기사는 리웍스리포트 집짓는 이야기 6월호에 작성된 부산특집기사로 유료인 관계로 기간 만료 후 인터넷에 올리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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