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 준비

[뉴스워커_염정민 기자]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 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2016년 10월 28일 산업은행 이사회에서 대우건설 지분 매각 결정을 했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검토나 준비 상황은 그 훨씬 이전부터 해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산업은행은 이사회 결정 이후 박창민 전 대표이사의 불명예 퇴진으로 인한 대표직 공석을 재무 전문가인 송문선 현 대표이사로 채웠고, 작년 말에는 잠재적 손실을 전부 털어내는 빅 배스를 하는 등의 본격적인 지분 매각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즉 산업은행은 적어도 2016년부터 지분 매각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졸속 매각 주장은 동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인수 가액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아람코를 비롯한 유력 참가 후보군들이 매각 절차에 불참하며 참가 후보들도 표면적으로는 인수에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등의 지금 상황은 지난 해 초만 해도 예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펼쳐진 원인으로 산업은행의 준비 부족이라기보다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서 찾는 경향이 더 강하다.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영향으로 2017년 11월 30일 한국도 기준 금리를 인상했고, 이에 따라 시중 은행의 주택 담보 대출 금리는 2%대에서 4.6%까지 치솟았다. 또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의 시행으로 건설업계의 향후 주택 사업 부문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산업은행이 매각을 추진했던 주택 산업 활황기의 2016년 말과 2017년 말의 건설업 전망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주택 정책은 국민 주거 안정이라는 측면과 연동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설업으로 한정 시켜본다면 그 잠재 가치에 의문 부호가 붙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의 지분 매각 흥행은 실패했고 참가한 인수 후보군조차 산업은행이 기대했던 2조원 대의 매각 대금을 지불하는 것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해석된다.

◆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거래 상황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고 물건을 팔아야 할 때에는 두 가지 상황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 판매자의 현금 유동성이 나쁘기 때문에 급하게 현금화를 해야 하는 상황, 둘째 물건의 잠재 가치가 나빠지기 때문에 시급하게 팔아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상황 정도가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판매자가 산업은행이라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산업은행은 2017년 3분기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269조에 달하고 2017년 9월 기준으로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이 103.82%로 현금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 경우는 매각 대상이 대우건설이라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물론 금리 인상과 주택 정책의 시행으로 향후 국내 주택 사업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하지만 2017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 8조 8522억 원의 매출액과 5805억 원의 영업 이익 실적을 기록한 대우건설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헐값에 매각할 정도의 필요성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즉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판매자가 건실한 재무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의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이고, 매각 대상이 연간 10조원 정도의 매출 규모를 가진 대우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매각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 산업은행은 시중 은행이 아닌 국책 은행이다

2016년 산업은행 이사회에서 3조 2천억 원을 투입한 대우건설 지분에 대해 손실을 감수하고 2조원 대에 매각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의 의사 결정 배경으로 몇 가지를 추측한 바가 있다.

이 추측들은 2016년에 대우 조선 해양의 분식 회계와 실적 악화로 산업은행이 보유한 비금융부문 주식을 시급하게 매각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과, 2018년에 바젤 3 기준과 새로운 회계 기준이 적용되어 보유 주식을 매각하여 현금화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대우건설 지분이 단순하게 비금융부문 주식이라고 하여 기업 가치도 평가함이 없이 급하게 매각할 이유는 없고, 산업은행은 바젤 3 기준도 무리 없이 통과할 정도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역시 급하게 매각할 이유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대우건설 지분을 헐값으로 급하게 매각하는 경우 산업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주식을 현금화하는 것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회계 기준 적용 시에 과거보다 유가 증권의 가치가 적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우건설 지분을 급하게 매각한다면 회계 장부상의 이점은 분명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시중 은행이 아니다.

1950년대에 설립된 산업은행은 한국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폐허가 된 한국 산업의 부흥을 위해 설립되었고, 1970년대에는 철강, 조선 산업을 지원했으며 1980년대에는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여 잿더미의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일조를 한 대한민국의 국책 은행이다.

현재도 산업은행의 주주 구성은 대한민국 기획 재정부가 92.15%의 지분을, 국토 교통부가 7.8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을 측면 지원하는 국책은행이다.

이런 산업은행이 이윤 추구 혹은 회계 장부상 실적을 위해서 보유 산업의 헐값 매각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은 시중 은행과 달리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 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월 8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 회의’에서 했던 “(구조 조정이) 재무적 측면 뿐 만아니라 산업 생태계 등 산업적 측면이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개선하겠다.”라는 발언에서도 산업은행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대우건설이라는 기업을 회계 장부 상의 숫자로만 인식하지 말고, 노동자가 근무하는 대한민국 산업 전선의 첨병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여유 갖고 매각 절차 임할 필요 있어

은행 경영을 위해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는 것 자체에는 비판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또한 작년부터 빅 배스와 경영진 교체 등의 매각 준비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졸속 매각이라고 비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건설업 전망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인수 흥행 분위기가 뜨겁지 않기 때문에 인수액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각을 급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산업은행이 책정한 적정 가격에 매각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시간에 쫓겨 부실기업을 털어내듯이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매각 협상에 최선을 다하되 헐값 매각 등을 통해 급하게 매각하는 것에 대한 것은 지양을 했으면 하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지분 매각 상대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인수 가액으로만 결정하지 않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산업 발전의 지원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의 매각 상대 결정시에 노동 승계, 기술 유출, 한국 산업 발전의 기여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해주길 요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협상장에서 여유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되 인수 가액 외에도 대우건설과 한국 산업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는 상대에게 지분을 매각할 것을 업계와 국민들은 산업은행에게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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