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 청년, 중견그룹 회장님 될 수 있었던 비결

대한민국 성장의 기반은 건설의 역사라 할 만큼 우리 한국이 성장하는 발판에는 건설의 힘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그 만큼 건설 기술의 큰 발전을 가져왔고 또 무엇보다 지금의 기업은 건설을 통해 성장의 활로를 개척한 바 있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국민이 미처 알지 못한 그림자와 같은 면도 있다. 이것을 일각에서는 ‘성장통’이라고도 위안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것이 명분으로 포장되고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에 뉴스워커는 대한민국 제1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건설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 가려진 모습을 [건설의 호랑이] 편을 통해 보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그래픽_뉴스워커 진우현 그래픽 담당

[뉴스워커_이호정 기자] 호남을 대표하는 건설사 하면 열에 아홉은 임대주택 사업으로 유명한 부영 또는 고래를 삼키려했던 호반건설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알짜는 따로 있다. 1983년 금남주택이란 사명으로 시작된 중흥건설그룹(중흥건설)이 주인공이다.

중흥건설은 지난해 말 기준 61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자산 9조원이 넘는 재계 서열 35위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시공능력평가 104위였던 중견건설사였던 이 회사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주인 정창선(76) 회장의 혜안 덕분이었다.

정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중흥S-클래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지구 입찰에 주력, 대형건설사의 관심 밖이던 지역을 집중공략 해 사세를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대형사들이 위약금을 물고 포기했던 세종시 토지를 대거 사들였고, 이는 중흥건설이 중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이 됐다.

실제 중흥건설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종시에 모두 12개 단지, 1만 3000가구에 이르는 아파트를 공급했다. 세종시가 행정복합중심도시로 위상이 강화되면서 수요가 몰렸던 것을 감안하면 회사의 폭발적 성장세가 정창선 회장의 선견지명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와 비자금 조성,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 물의를 빚었다. 또 중흥건설의 계열사가 모두 비상장사다 보니 정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50) 중흥건설 사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영승계 과정에도 뒷말이 무성한 상태다. 이외 시티건설과 시티글로벌을 바탕삼아 계열분리에 나선 차남 정원철(49) 사장의 완전 독립을 위해선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를 풀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공사판 청년, 중견그룹 회장님이 될 수 있었던 비결

정창선 회장은 1943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이던 1970년대 초 속칭 ‘노가다판’으로 불리는 건설현장에서 잔뼈를 키운 뒤 1983년 지인들과 함께 중흥건설의 모태가 된 금남주택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에는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참 일었던 시기였고, 90년대 중반까지 부동산 황금기가 이어졌다. 이는 정 회장이 금남주택에 이어 1989년 중흥건설을 설립하고 1993년과 1994년 각각 중흥종합건설, 세흥건설을 세워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아울러 1996년 중흥파이낸스, 1997년 중흥정보통신을 설립하고 2000년 나주관광개발을 편입해 사업다각화에 나설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정 회장이 30여년 만에 중흥건설을 중견그룹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자금관리 덕분이었다. 업무용이 아닌 자산은 사지 않고, 보증은 되도록 서지 않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사업계획을 세우고 자금조달 계획을 세우는 여느 건설사들과 달리 자금사정에 맞춰 사업계획을 세우다 보니 시장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세종시 주택공급 사업이다.

2011년 국내 부동산 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생채기에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마저 미분양이 나며 골머리를 앓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세종시로 정부청사의 이전이 결정됐음에도 불구, 이곳에 아파트 용지를 분양받았던 상당수 대형건설사들이 수백억 원의 위약금을 물고 토지를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중흥건설에게 호재가 됐다. 해당 용지를 사들여 세종시에 ‘중흥S-클래스’ 홈타운을 만들며 중견그룹을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흥건설은 2012~2013년 2년 연속 전국 아파트 공급실적 3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세종시에 아파트를 대량 분양한 결과였다.

중흥건설은 지금도 철저한 자금관리를 바탕삼아 기회를 포착하는 경영전략을 흐트럼 없이 유지하고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보니 계열사를 포함한 매출 역시 증가추세다. 2013년만 해도 매출이 2조 2070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5년 4조 5610억 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17년 6조 8211억 원으로 증가해 4년 새 3배 이상 불어났다.

※ [건설의 호랑이]1-2부에서는 [정찬선 중흥건설 회장의 ‘중흥S클래스’의 빛과 그림자…2부 내부거래와 ‘몸살 앓는 중흥S-클래스’하자]에 대해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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