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재계 돋보기]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사퇴를 선언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소송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주주들은 남양유업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 오너리스크를 불식시키고 경영 정상화 및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하지만, 사건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홍원식 회장은 ‘제3자 매각’이라는 일관된 태도만을 보일 뿐, 사퇴를 선언했을 당시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벼랑 끝 남양, 지분 매각 선언
최근 몇 년간 남양유업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며 각종 구설에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대리점 밀어내기 논란,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 씨의 마약사건 등으로 이미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남양은 연이어 붉어진 ‘불가리스 사태’로 인해 회생불가 수준에 이르렀다.
불가리스 사태란, 남양유업이 자사의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된 사건이다. 2021년 4월 13일, 남양유업은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에서 위와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의 발표가 동물·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 이뤄진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이로 인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공장 내 세종연구소 등 총 6곳을 압수수색 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같은 해 5월 4일 오전 10시, 홍원식 회장은 본사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에 나서게 되었다. 이날 보도된 주요 일간지 등에 따르면 홍 회장은 “회사 성장만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또한,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앤컴퍼니, 남양유업 인수키로 결정
21년 5월 27일, 홍원식 회장은 자신이 가진 지분을 한앤컴퍼니에 모두 매각하기로 한다.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가 인수하기로 한 지분은 홍원식 회장의 지분 51.68%를 포함한 오너 일가 지분 53%로, 총 37만 8938주다. 한앤코는 경영권과 함께 이를 매수하면서 남양에게 3107억 2916만 원을 지불하는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했다.
대금 지급 시기는 매각 선행조건이 완료된 후 13영업일 또는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이다. 당사자들 합의가 없는 경우, 8월 31일을 넘기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최대주주 변경은 대금시점에 이뤄질 예정이었다.
홍 회장의 변심, 한앤코에 계약 해제 통보하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1일, 한앤코에 지분을 넘기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홍원식 회장이 마음을 바꿨다. 홍 회장은 한앤코에게 주식 매매 계약 해제를 통보하며 그 책임을 한앤코에게 돌렸다. 홍 회장의 법률대리인 LKB앤파트너스가 밝힌 계약 해제 이유는 한앤코의 부당한 사전 경영간섭, 비밀유지의무 위반, 신뢰 훼손 책임이다.
한앤코는 홍 회장 측의 주장에 “사실무근”으로 맞섰다. 하지만 21년 9월 23일, 홍 회장이 한앤코를 상대로 31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같은 날,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LKB앤파트너스 측은 “계약금도 전혀 없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본 계약은 한앤코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계약”이라며 “한앤코 측은 사전에 서로 합의한 사항을 어기고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하고 계약과 협상 내용을 언론에 밝히며 비밀유지 의무까지 위배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한앤코 측은 거래종결 시한 전부터 홍 회장을 상대로 주식양도 청구 소송과 주식처분금지가처분까지 제기했으나 적법하지 않다”라며 “계약은 이달 1일 해제됐다”라고 단언했다.
법정 싸움 시작, 재판부의 판단은?
한앤코는 홍 회장을 상대로 다수의 소송을 제기했다. 21년 8월,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9월에는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서 22년 1월에는 남양유업과 대유홀딩스의 협약이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는데 위 3가지 소송에서 한앤코가 모두 승소했다.
21년 8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앤코가 홍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자등록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한앤코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남양은 제3의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10월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송경근 수석부장판사)는 한앤코가 제기한 홍 회장의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남양유업은 29일에 임시주주 총회를 열어 사내이사 3인과 사외이사 1인을 새로 선임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홍 회장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22년 1월 26일에는, 남양유업과 대유홀딩스의 상호 협력 이행협약 이행 금지를 요청한 가처분 소송 역시 한앤코가 승소했다.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홍 회장 측이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대유홀딩스 측과 추가 교섭, 협의나 정보 제공 등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다.
남양의 협력자, 대유위니아 그룹의 등장
21년 11월 19일 대유위니아그룹과 남양유업은, 남양유업이 한앤코로부터 승소할 경우 대유위니아그룹이 남양유업을 인수하기로 한 조건부 계약을 체결한다. 이날 대유위니아그룹 관계자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번 협약을 통해 국내를 대표하는 식품기업인 남양유업의 탄탄한 브랜드, 최고 수준의 제품 경쟁력에 대한 재정비를 통해 국민에게 더욱더 사랑받는 식품기업으로 재도약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같은 달 25일, 대유홀딩스는 남양유업과 상호 협력 이행협약을 맺고 이에 따른 ‘매매예약 완결권’을 부여 받았다고 공시했다. 매매예약 완결권은 남양유업의 현재 법적 분쟁이 해소되는 등 대상주식 37만8938주를 양도하는데 법적 제한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 남양유업과 대유홀딩스가 대상주식의 양수도를 상호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대유홀딩스의 변심, 매매예약 완결권 해제...
하지만 22년 3월 5일, 대유홀딩스 역시 변심했다. 대유홀딩스는 남양유업과 체결했던 매매예약완결권이 지난 7일부로 해제됐다고 14일 공시했다. 같은 달 15일 여러 뉴스에 따르면 대유홀딩스는 “이행협약을 체결해 매매예약완결권이 부여됐으나 상호협력 이행협약이 해제됨으로써 해당 주식(37만8938주)에 대한 매매예약완결권이 전부 소멸했다”고 밝혔다.
또한, 매매예약 완결권 해제의 이유가 홍 회장 측의 계약 위반이기 때문에 대유홀딩스는 남양에 건넸던 계약금 320억 원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홍 회장 측은 계약 위반 사항이 없으므로 대유홀딩스와의 계약이 파기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남양이 대유홀딩스에게 계약금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대응했다.
업계에서는 대유홀딩스의 변심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 중, 남양과 한앤코가 진행 중인 재판이 한앤코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으므로 대유홀딩스가 일찍이 남양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 아니냐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 2심 승기 잡은 한앤코, 이어지는 압박...
22년 9월 22일, 한앤코가 홍 회장과 가족 등 3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 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고, 피고(홍 회장과 가족)들은 계약 내용에 대해 쌍방대리와 변호사법 위반 등을 주장했으나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판시하며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한앤코는 11월 22일, 남양유업 일가를 상대로 5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하며 남양을 압박했다. 이날 한앤코 측 관계자는 “여러 소송을 통해 (홍 회장 측의) 남양유업 매각 약속 미이행의 책임소재가 명백해진 가운데 남양유업 경영권 이양 및 정상화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번 소를 제기했다”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3년 2월 9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는 주식매매계약(SPA) 이행 2심 소송 역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변론 종결 이후에 피고인 측에서 변론을 재기해달라는 신청을 여러 번 제출해 구체적으로 검토했지만, 변론을 재개할 만한 사유는 없다”라며 “피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라고 선고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남양에 자사주 공개매수 요구
지난 2월 27일,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은 남양유업에 자사주 매입을 위한 공개매수를 요구했다. 주당 82만 원에 총 1916억 원의 자사주를 남양이 공개 매수할 것을 요구한 것 외에도 감사 선임, 5대1 액면 분할, 보통주 주당 2만 원 현금 배당 등을 제안했다. 차파트너스는 이를 3월인 다음 달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차파트너스는 최근 남양유업 지분 3%가량을 매입해 감사 선임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날 한 경제지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차파트너스 관계자는 이와 같은 공개매수 요구에 대해 “홍 회장 측과 한앤컴퍼니 간 법적 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주주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양, 차파트너스에 먹튀 행보라 비난
남양유업은 3월 14일 공시한 의결권대리행사권유에 관한 의견표명서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 투자 이익을 얻고 매각 행보를 보인다.”며 차파트너스를 비난했다고 한국경제신문 등 다수의 매체가 보도했다. 남양유업은 “차파트너스의 제안대로라면 자사주 매입에 1916억 원이 드는데, 매년 700억 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발생하는 회사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대응했다. 이에 대해 차파트너스는 반박했다. “자사주 매입은 소수주주에게도 투자회수의 권리를 주자는 제안”이라며, “남양유업의 비핵심 자산과 운전자본이 약 4000억 원에 달해 자금력은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위기의 남양유업, 우선주 상폐되나...
다수의 분쟁 속에서 남양유업에 또 다른 악재가 등장했다. 남양유업의 우선주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것이다. 우선주의 최소 발행 주식 기준은 20만 주다. 하지만 22년 11월 30일 기준, 남양유업 우선주의 총발행주식 수는 16만6662주로 기준을 밑돌았다. 따라서 남양유업의 우선주는 관리종목에 지정됐고 이를 6월까지 해소하지 못하면 7월에 상장폐지 될 위기에 처한다.
또한, 남양유업은 한앤코와의 인수합병 계약 미이행으로 벌점 11점이 누적된 상태다. 거래소는 불성실공시법인 벌점이 1년간 15점을 넘는 상장사에 대해 거래를 정지하고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절차를 밟게 하기 때문에 남양유업이 매각 과정에서 또다시 4점 이상의 벌점을 받게 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포함될 수 있다.
이에 남양유업은 23년 3월 31일, 주주총회를 열어 우선주 유상증자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과 우선주 액면분할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동시에 상정했다. 우선주 유상증자는 회사가 추진하는 안건이며, 우선주 액면분할은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의 제안이다.
유상증자로 71억 유입, 상폐 위기 넘기다...
상장폐지 기로에 섰던 남양은 결국 유상증자를 통해 우선주 상장폐지라는 위기를 모면했다. 남양유업은 정기주주총회에서 유상증자를 위한 정관변경을 가결했고, 75억 6772만 원 규모의 주주 우선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발행주식은 주당 22만7000원에 신주 3만3338주로 기존의 우선주 16만6662주와 합치면 20만 주가 돼 우선주 최소발행주식 기준에 충족된다.
남양유업은 유상증자를 위해 가장 먼저,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우선주 주주배정 청약에 나섰다. 하지만 경쟁률이 0.3대1에 그치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실권주 일반청약을 진행했는데 경쟁률이 133.37대 1을 기록하며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23년 6월 13일, 남양유업은 유상증자를 통해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71억에 달하는 자본금을 확보했다.
한앤컴퍼니,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한편, 지난 6월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한앤컴퍼니 일부 직원들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긴급조치(패스트트랙) 제도를 이용해 서울남부지검에 사건을 이첩했다. 긴급조치 제도는 금융당국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긴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 검찰에 곧바로 이첩하는 것을 말한다.
금감원은 한앤코가 지난 21년 5월 남양유업 인수 계약 발표 전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미리 매입해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남양유업이 오너 지분을 매각하기로 공시한 후 이틀간 주가가 60% 가까이 오른 바 있다. 하지만 한앤코 측은 국내에서 주식거래 자체가 금지돼 있고, 또 수시로 확인한다면서 어떤 임직원도 남양유업 주식 거래를 한 사실이 없음을 주장했다.
소송이 장기화 될 수록, 홍 회장 책임론 부상...
홍 회장이 한앤코와의 계약을 무른 변심이 자충수가 되어 돌아오는 판국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소송이 장기화 될수록 홍 회장을 겨눈 소 제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남양유업 내부에서도 홍 회장을 향한 손해배상 청구가 시작됐다. 지난 5월 30일,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심혜섭 남양유업 감사가 홍 회장 등의 이사보수 한도 결의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소 제기했다. 심혜섭 감사는 23년 6월 21일에도 홍원식 회장을 상대로 52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현 사태의 책임을 홍 회장에게 물었다.
홍 회장이 남양유업을 이끄는 동안 각종 구설에 휘말렸고, 이에 따라 남양유업은 과징금 및 벌금 등을 지급해왔는데 이에 대한 책임이 홍 회장에게 있다는 취지다. 또한,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이사 보수한도 의결이 위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홍 회장이 수령 혹은 수령 예정인 보수와 퇴직금 등에 대한 손해배상·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도 제기했다.
이로써 홍 회장은 불명예 퇴진과 더불어 금전적 손실까지 떠안게 될 위기에 처했다. 홍 회장이 한앤코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패소했고, 한앤코로부터 500억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외에 대유홀딩스에 돌려줘야 할 계약금 320억 원, 및 회사 내부에서 건 각종 손해배상금액 등을 합산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홍원식 회장은 1950년 6월 12일 생으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77년 남양유업 이사로 시작해 1988년,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1990년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한 뒤 2003년 회장직에 올랐다. 홍원식 회장의 아버지는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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