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촉감 '햅틱 기술', 진짜 촉감 재현가며 기기는 소형·경량화
아직 숙제 많지만 시장 성장 가능성 커…의학실습 등 실용화 기대

디지털 기술로 생생한 감촉을 구현하는 디지털 촉각, 즉 햅틱(haptic) 기술의 발달이 눈부시다. 게임과 영화 등에 응용되는 가상현실(VR)은 햅틱 기술과 만나 시각적 리얼리티는 물론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촉감에 도전하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인공적인 감촉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기의 대형화가 불가피했지만, 기술의 발달로 햅틱 장치들은 점점 작고 가벼워지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가 최근 공개한 ‘햅트글로브(HaptGlove)’는 고글형 VR 시각장치와 연동하는 장갑형 햅틱 기기다. 자체 무게는 단 250g으로, 현재 시판되는 가상 촉감 기기들의 절반 수준이다.
‘햅트글로브’는 보다 생생한 촉감을 제공하기 위해 미세유체와 공기압을 결합했다. 그간 가상 촉감 기기들은 소형 모터나 유압식 액추에이터를 이용했기 때문에 크고 무게감도 부담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휴대가 불가능했고 소비 전력도 컸다.
미세유체 센서와 공기압을 이용한 ‘햅트글로브’는 가상 촉감의 민감도와 정밀도를 끌어올렸다. 글로브의 손가락 당 피드백 모듈을 탑재했고 무선 제어도 가능하다. 손가락에 닿는 물체의 크기와 모양 등 특징을 미세유체 센서가 분석한 뒤 서로 다른 공기압을 통해 최대한 사실적인 촉감을 구현한다.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한 ‘햅트글로브’가 제공하는 촉감은 어떨까. 체험자들은 가상공간에서 활을 쏠 때 팔 전체에 걸리는 힘이나 활시위를 놓을 때 감촉이 잘 재현됐다고 호평했다. 체스 말을 놓거나 무게가 서로 다른 물체를 들어 옮길 때도 현실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평가다.
‘햅트글로브’ 개발을 주도한 NUS 바이오의학 엔지니어링학과 Chwee Teck Lim 교수는 “손가락에 하나씩 탑재된 촉각 피드백 모듈은 무선으로 제어돼 객체의 형상이나 크기, 경도를 감지하고 미세유체 센서 및 공기압 소자를 통해 손가락 끝에 압력을 준다”며 “시각과 촉각 지연은 20밀리초 미만으로 사실상 실시간 체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20명이 참여한 테스트에서 경도가 서로 다른 4개 물체를 ‘햅트글로브’로 구분하는 정확도는 90% 이상이었다”며 “모터를 이용하는 기기와 비교해 현장감을 높이고 VR 체험을 향상시켰다는 유의미한 평가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발전을 거듭하는 햅틱 기술은 사용자들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열고 있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산학협력 스타트업 모션립은 지난해 리얼햅틱 VR 악수 솔루션을 통해 코로나19 시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아이돌과 팬들을 이어줬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는 VR과 햅틱 기술을 이용, 키스의 달콤한 느낌을 전달하는 장치를 지난해 말 내놨다. 마우스 햅틱(Mouth Haptics)이라는 고유 기술이 적용된 이 장치는 VR 헤드셋과 고글 아래쪽의 초음파 진동자 다발을 통해 입술이 맞닿는 짜릿한 촉감을 구현했다.
물론 햅틱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최근 방송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부활한 ‘전원일기’의 배우 고 박윤배는 손도 잡을 수 있냐는 동료에게 “나중에”라고 말한다. 이것만 봐도 햅틱 기술은 아직 제약이 있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다만 관련 연구가 아주 활발하다 보니 햅틱 기술은 실제와 차이를 점점 줄여가고 있다. 신기한 사용자 경험을 넘어, 의대 실습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위험한 실험 등 실용적인 분야에도 햅틱 기술은 적극 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로 인한 긴 거리 두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촉감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글로벌 햅틱 기술 시장 규모는 오는 2026년 무려 10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