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포스터 중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포스터 중

한국 상업영화의 오리지널리티는 언제나 갈증의 대상이었다. 웹툰 원작, 일본 소설 번안, 할리우드식 장르 차용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이상근 감독의 악마가 이사왔다는 분명 반가운 실험이다. 새벽이면 악마로 변하는 여인과 그 곁에서 혼란과 설렘을 동시에 경험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흔치 않은 발상이다. 그러나 발상의 참신함이 곧 영화적 완성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상상력의 기발함과 배우들의 호흡에서 힘을 얻지만, 장르적 리듬과 주제적 밀도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를 지닌다. 길구(안보현)의 시선으로 이사 온 이웃 선지(임윤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숨겨진 얼굴을 알게 되는 과정은 전형적인 로맨틱 서사의 변주다. 그러나 이상근 감독은 여기에 악마라는 초자연적 요소와 미스터리적 장치를 결합시킨다. 이로써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넘나들다가 어느 순간 미스터리 스릴러의 껍질을 덧입는다.

문제는 이러한 혼합이 매끄럽게 융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초반의 발랄한 톤과 후반부의 미스터리 전개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며, 이는 일부 관객이 산만하다고 평하는 이유다. 엑시트에서 보여준 이상근 감독 특유의 속도감은 여전하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결이 자주 끊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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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구축한 영역은 캐릭터와 배우의 호흡이다.

임윤아는 선지라는 인물을 통해, 청순함과 악마적 매력을 오가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변신 이상의 성취다. 관객은 그녀의 눈빛 하나, 미소의 각도 하나에서 서로 다른 선지를 경험한다.

안보현은 순박하고 서툰 길구라는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서사의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다.

여기에 성동일과 주현영 같은 조연진은 코미디적 완급을 조절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결국 악마가 이사왔다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케미스트리가 작품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동시에, 캐릭터의 성장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선지는 악마와 인간 사이의 경계에서 어떤 존재론적 질문도 던지지 않고, 길구 역시 순박한 청년 이상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서사가 감정의 여운을 남기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이상근 감독은 일상적 공간을 코미디적 무대로 만드는 데 능하다. 골목, 옥탑방, 좁은 아파트 복도 같은 평범한 장소가 그만의 리듬을 통해 활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악마라는 초자연적 설정을 시각적으로 상징화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 악마의 존재는 배우의 연기와 몇몇 소품에 의존할 뿐, 강렬한 비주얼 장치나 상징적 미장센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촬영은 밝고 산뜻한 톤을 유지하며 여름 영화의 감각을 살려내지만,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구축하는 순간에는 평면적이다. 음악 역시 코미디 장면에서는 적절하지만, 장르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기에는 개성이 부족하다.

악마가 이사왔다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악마조차도 인간의 따뜻한 품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이는 무해하고 잔잔한 힐링 메시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영화적 깊이의 부족으로 읽힌다. 관객은 상영관을 나서며 미소를 지을 수는 있으나, 더 오래 곱씹을 질문은 얻기 어렵다.

이 점에서 악마가 이사왔다는 오락적 소비와 감성적 위로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적 울림이나 사회적 담론을 확장시키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악마가 이사왔다는 작은 성공에 해당한다.

오리지널 발상으로 차별화에 성공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케미가 관객의 호감을 끌어냈다. 그러나 장르 혼합의 리듬 조율에 실패했고, 캐릭터의 성장이 부재했으며, 주제 의식은 얕았다. 이 영화는 결국 여름 한철, 무해한 웃음과 따뜻한 감성으로 소비되는 힐링 무비라는 자리에 머문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상근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경쾌한 연출의 성과이자, 동시에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오리지널 발상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깊이라는 차원에서는 비평적 아쉬움이 크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악마가 이사 온 건 맞지만, 진정한 영화적 도전은 아직 이사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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