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 실책으로 역전패, 꼼수 지연에 벤치클리어링도... 야구계 새판 짤까?
![시간은 줄었지만, 그 속을 흔드는 플레이는 오히려 더 다양해지고 있다. 마운드 위 투수는 타자의 루틴을 깨기 위해 템포를 조절하고, 타자는 투수의 흐름을 끊기 위해 타석 진입을 지연시킨다. 그 어떤 것도 불법은 아니다. 단지 새로 생긴 룰의 경계선 위를 걷는 전략일 뿐...[본문 중에서]](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04/374337_393641_4348.jpg)
25초. 투수들이 지켜야 할 절대적 시간. 이것이 요즘 KBO 리그를 술렁이게 만들고 있다. 삼성 김재윤은 지난 5일 한화전 9회초 2사 상황에서 피치클락 위반으로 볼넷을 허용했고, 이는 곧 문현빈의 역전 스리런으로 이어졌다. 전날인 4일에는 SSG와 KT의 경기에서 피치클락을 두고 외국인 선수 간 신경전이 벌어지며 양 팀이 그라운드에 쏟아지는 벤치클리어링까지 발생했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피치클락이라는 시간의 룰이 KBO 리그 안에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사실 피치클락은 낯설지 않다. 그 필요성에 의해 23년에는 MLB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KBO에서는 작년에 시범 도입, 그리고 올 초 시범경기를 거쳐 올 시즌부터는 KBO 1군 정규리그에도 본격 도입되었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는 시간은 주자가 있을 때 25초, 없을 때 20초. 언뜻 보기에는 바뀌는 것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경기 흐름을 바꾸는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2시간 39분의 혁명-줄어든 시간, 늘어난 관중과 투수의 부담
피치클락은 원래 ‘경기 시간 단축’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MLB 사무국 발표에 따르면, 피치클락의 첫 정규 도입 시기인 2023년 정규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 39분 49초로, 피치클락이 없던 2022년(3시간 3분)보다 24분 단축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MLB는 관중 수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고 밝혔다. 피치클락 하나로 리듬이 바뀌고, 팬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규정은 단순한 제한이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무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투수는 시간을 끝까지 끌다 던지거나, 시계를 활용해 타자의 리듬을 깨뜨린다. 타자는 한발 먼저 들어가면 템포를 빼앗기고, 늦게 들어가면 스트라이크를 헌납한다. MLB에서는 2023년 피치클락 위반으로 인한 자동 삼진이 25건 이상 발생했고, 이 중 7건은 경기 말미 결정적 순간에 나왔다. KBO에서도 5일 삼성-한화전에서 김재윤이 9회 2사 풀카운트 상황에서 피치클락 위반으로 내준 이 볼넷은 역전 스리런의 씨앗이 되었다.
주자가 각 루에 차기 시작하고 투구 하나하나 결과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오면 단 몇 초의 차이가 승리를 가를 수 있다. 시간에 몰린 투수는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거나 선택할 수 있는 구종과 구위에 제한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누적된 끝에 나온 실수는 타자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MLB, 피치클락 등에 업고 도루 증가, KBO의 상황과 전술적 사용 가능성은?
피치클락이 도입되면 도루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다. MLB에서는 실제로 2023년 도루 시도와 성공률 모두 크게 증가했다. MLB 공식기록에 의하면 경기당 도루 시도는 2022년 1.4회에서 2023년 1.8회로 증가했고, 도루 성공 횟수 역시 경기당 1.0개에서 1.4개로 늘어났다. 총 도루 수는 2022년 2,486개 → 2023년 3,503개, 무려 1,000건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는 당시에는 1987년 이후 가장 많은 도루 기록이며, 100년간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성공률 역시 75.4%에서 80.2%로 급등,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 수치를 찍었다.
하지만 KBO는 다르다. 정규리그에서는 투구판 이탈 제한이 없어, 견제가 사실상 무제한이다. 주자는 여전히 쉽게 스타트를 끊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도루가 전략적으로 활발해질 기반은 아직 부족하다.
시간은 줄었지만, 그 속을 흔드는 플레이는 오히려 더 다양해지고 있다. 마운드 위 투수는 타자의 루틴을 깨기 위해 템포를 조절하고, 타자는 투수의 흐름을 끊기 위해 타석 진입을 지연시킨다. 그 어떤 것도 불법은 아니다. 단지 새로 생긴 룰의 경계선 위를 걷는 전략일 뿐이다.
이 밖에도 피치클락은 경기 내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계 플레이에서 포수가 사인을 여러 번 바꾸기 어렵게 되면서 사인 체계 간소화나 피치컴 등 전자기기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고, 투수 교체 직후 충분한 루틴을 확보하지 못한 채 첫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첫 타자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짧아진 시간 안에 주어진 공략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정보 처리 전술’의 싸움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심리전의 극대화, 꼼수 플레이 가능?
피치클락 때문에 벤치클리어링까지 발생했던 SSG-KT전을 더 자세히 보자. 이날 3회말, 타석에 들어선 에레디아는 초구를 지켜본 뒤 방망이에 그립 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경기 전에 마무리하는 준비동작을 경기 중 타석 안에서 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 행동은 약 10초 이상 시간을 끌었고, 쿠에바스는 2구째를 던지지 않고 피치클락 시간을 거의 끝까지 흘려보냈다. 타자와 투수가 서로 시간을 지연시키며, 일종의 ‘시간 밀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장면만으로는 규정 위반은 아니다. 투수는 주자 있을 때 25초 이내, 타자는 8초 전까지 타격 준비를 마치면 된다. 그런데 에레디아는 8초를 약간 넘기기 직전에 타석에 들어섰고, 쿠에바스는 0초 직전, 거의 1초를 남겨놓고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둘 다 규정을 지켰지만, 서로의 리듬을 깨뜨리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행동이 경기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규정을 벗어나지 않고도 상대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방식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이는 곧 반복 가능한 전술이 될 수 있다. 피치클락이라는 룰이 생긴 만큼, 그 틈을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이른바 ‘합법적 흔들기’, 규정 안의 심리전이 새 판을 짜는 셈이다.
시범경기에서 규정 보완했지만, 틈새는 여전, 혼란 계속될 듯...
KBO는 이 혼란을 예견했을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 도중 발생한 위반 사례들을 바탕으로 10개 구단 감독과 심판진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KBO는 피치클락 세부 규정을 보완했다. 고의 지연을 막기 위한 주의 및 경고 조치, 타자 스프레이 사용 시 타임 요청 횟수 미포함, 피치클락 위반 시 타격 결과 무효 처리 등이 포함되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심판과 선수 모두에게 각인시키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규시즌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보면, 여전히 회색지대는 존재한다. 쿠에바스와 에레디아의 사례처럼 규정은 어기지 않았지만, 경기를 흔드는 전략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고의성 판단은 주관적이고, 심판의 개입 역시 제한적이다. 현실의 빠른 적응이 제도의 설계를 앞지르고 있는 셈이다.
피치클락은 단순한 통제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기 리듬을 다루는 '시계'인 동시에, 경기 흐름을 설계하는 '메트로놈'이다. 더 빨리, 더 짧게가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가를 두고 팀과 선수는 전혀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시간의 룰은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야구라는 게임을 다시 설계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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