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솔로몬의 고립, 타레미 FIFA 월드컵 불참, 태권도 소년의 사망, 스포츠 외교의 시험대

현재의 이란과의 관계는 산업화 시기 한국의 이란 진출도 맺어진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911테러와 중동에 대한 서방의 안 좋은 시선 속에서도 아시아 첫 월드컵인 2002년 월드컵에서 이란은 높은 참가 의지를 보였다. 한국과 이란은 아시아 4강이면서도 서로 친선전도 많이 하며 스포츠로 꾸준히 교류하고...[본문 중에서]
현재의 이란과의 관계는 산업화 시기 한국의 이란 진출도 맺어진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911테러와 중동에 대한 서방의 안 좋은 시선 속에서도 아시아 첫 월드컵인 2002년 월드컵에서 이란은 높은 참가 의지를 보였다. 한국과 이란은 아시아 4강이면서도 서로 친선전도 많이 하며 스포츠로 꾸준히 교류하고...[본문 중에서]

지난 13,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으로 시작된 양국 간의 분쟁이 필드 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대표이자 토트넘 소속인 마노르 솔로몬은 6A매치와 신혼여행으로 고국을 방문했다가 떠나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반대편 이란에서는 대표팀 에이스 공격수이자 인테르 소속인 메흐디 타레미가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충돌 여파로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공습 직후 한때 행방이 묘연했던 타레미는 SNS에 글을 남기며 자신의 안부와 조국에 대한 연대감을 동시에 전했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국영 IRNA 보도에 따르면, 지난 이스라엘의 공습에 태권도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희생됐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태권도를 사랑하던 행복하고 활기찬 아이였던 모하마드 메흐디 아미니가 자신의 꿈을 잔해 속에 남겨두고 떠났다고 밝혔다.

총성이 멈추지 않는 시대, 스포츠가 한때 평화의 언어였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선수의 안전을 묻는 보도, SNS로 전해지는 무사 안부, 그리고 전쟁에 휘말린 소년들의 꿈까지... 과연 스포츠가 지금도 전쟁과 증오를 넘어선 대화의 끈이 될 수 있을지,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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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시작해서 전쟁을 막는 중재자로... 스포츠의 양면성, 이스라엘과 이란엔 없다?


스포츠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역설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393년까지 1,169년간 계속됐다. ‘올림픽 휴전(에케케이리아)’이란 어느 도시 국가라도 올림피아 경기 기간 중에 다른 나라를 침범하면 그에 대한 응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올림픽 기간에는 전쟁하지 말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쟁을 멈추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사들의 훈련이기도 했다. 축구는 중세 영국 마을 간의 전투, 태권도는 아예 전투를 위한 무술이고, 이 밖에 양궁, 펜싱, 원반던지기, 그리고 그냥 오래 멀리 달렸던 마라톤마저도 전쟁과 연관 있다.

스포츠를 정치·외교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흐름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적 분쟁을 막아왔다. 냉전이 한창이었던 1952~88년은 미국과 소련의 메달 경쟁으로 스포츠는 각국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 메달 수가 곧 체제 경쟁의 목표였지만, 한편으로는 접촉 가설에 따라 일반 시민이 적국을 인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양국 간의 실체적 전쟁은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이란의 상황은 녹록지 못하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아랍권 국가들의 요구로 1981년에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축출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축구, 농구, 유도, 배구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사실상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고, 결국 유럽연맹으로 소속을 옮기게 됐다. 같은 아시아라는 정체성도 없고 마주칠 최소한의 소프트 채널도 없는 양국의 상황은 정말로 최악이다.


경기장은 전쟁을 멈추는 곳이 될 수 있을까? 스포츠로 열린 마음의 문, 그 사례들


스포츠가 국제외교의 어려운 상황을 풀어낸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25년 현재야 미국과 중국의 분쟁은 여파가 크지만, 양국의 시작은 극적이었다. ‘핑퐁외교가 그것이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선수단이 중국 선수단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중단됐던 미·중 관계가 다시 트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탁구 교류 이후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중 수교의 길이 열렸다. 경기장이 국경보다 먼저 열렸던 순간이었다.

분단과 적대의 상징이었던 한반도에서도 스포츠는 대화와 공감의 창구 역할을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로 남북 관계는 급진전을 이뤘다.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다. 그해 여자 아이스하키에서는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단일팀 경기에는 평소보다 3배 이상 많은 관중이 몰렸다. 아이스하키 선수단은 국적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승패와 상관없이 함께 울고 웃는 경험이 소중했다고 밝혔다. 경기력 논란도 있었지만, 분단의 철조망 너머로 처음으로 대화와 공감의 물꼬를 튼 사례였다.

이스라엘-이란 못지않게 관계가 최악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매년 크리켓 시리즈를 통해 소프트 채널을 유지,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소통의 창을 유지했고, 분단 독일은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독일 통일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것도, 스포츠가 대립의 이념을 넘어서려 한 노력이었다.

정리_뉴스워커
정리_뉴스워커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평화적 가치, 스포츠 외교,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


앞서 봤듯 분쟁 중인 양국은 스포츠에서도 마주보기를 싫어한다. 2018, 세계유도연맹(IJF)은 이란 정부가 자국 선수들에게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무조건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린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이란에 국제대회 참가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 사건은 이란의 간판 유도 선수 사에이드 몰라에이가 국제 대회 도중 일부러 경기를 포기해야 했던 사례로까지 이어졌다. 몰라에이는 결국 망명을 선택하며 정치가 스포츠까지 지배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BBC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이스라엘이야 우리와 진영 논리로 묶여있으니까 제외하더라도, 이란과 한국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북한과의 관계 및 무기 거래, 미국과의 관계, 체제 차이 등을 감안하면, 이란과 한국이 별로 친하게 지낼만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현재의 이란과의 관계는 산업화 시기 한국의 이란 진출도 맺어진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911테러와 중동에 대한 서방의 안 좋은 시선 속에서도 아시아 첫 월드컵인 2002년 월드컵에서 이란은 높은 참가 의지를 보였다. 한국과 이란은 아시아 4강이면서도 서로 친선전도 많이 하며 스포츠로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월드태권도연맹(WT) 자료에 따르면, 이란은 세계에서 한국 다음으로 태권도 인구가 많은 나라 중 하나이며, 올림픽·아시안게임에서 수십 개의 메달을 나란히 수확했다. 최근 몇 년간에는 국제대회에서 한·이란 합동 훈련 캠프가 정례화됐고, 이란 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인 지도자가 활약한 사례도 적지 않다. 꾸준히 평화적으로 접촉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는 스포츠 교류의 역사가 쌓여 있다. 국제적 이슈에 따라 호감과 비호감인 시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껄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으로 돌변할 일은 거의 없다.

18일 기준,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246명 이상이 사망하고 1,748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는 24명이 사망하고 592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 예비역 준장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아이언 돔 등, 방공체계 운영에 드는 돈은 하루에만 40~50억 세켈(, 14694~18368억 원)이 필요하다. 별도로 지대공 미사일과 중거리 발사체 등을 한번 쏘는데 60억이 든다. 하루 사이에 국방예산의 1/10을 써버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인프라와 인명 손실에 따른 비용은 추산하기도 어렵다. 반면,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추산한 파리 올림픽 개최 비용은 약 82억 달러(11조 원)이다. 사망자는 0명이다.

양국이 휴전을 하더라도 소통의 채널이 없다면 또다시 미사일을 주고받을 것이다. 물론 양국의 복잡한 입장상, 그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양국은 축구와 농구를 공통으로 좋아한다. ‘올림픽 휴전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소프트 채널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전후 양국의 어색한 관계를 해소할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 교류일 수 있다. 물론 스포츠가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끔찍한 인명 살상이 장기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고 싶다면, 내키지 않더라도 스포츠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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