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 방송에서 놀라운 보도가 나왔다. 의료기기 업계에서 손꼽히는 한 회사의 대표가, 자신보다 20살 이상 어린 여성과 부적절한 금전 거래를 했다는 제보였다. 제보자는 다름 아닌 그 여성의 약혼자였다. 그는 방송에서 “성매매 대가로 돈을 건넸다”는 구체적 발언까지 남겼다.

그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킬 듯했지만, 며칠 뒤 흔적처럼 사라졌다. 방송사는 삭제 이유로 “당사자의 가족 건강”을 언급했다. 그러나 사회는 알았다.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스캔들은 이렇게 조용히, 빠르게 덮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8개월이 지난 지금, 그 대표는 여전히 회사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ESG 보고서를 내고 스스로를 ‘윤리경영’의 실천자라고 자찬했다. 대중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 윤리를 내세우면서, 개인의 사생활에서는 법과 도덕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면 아닌가.

더 황당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보자가 공개한 자료에는 이 대표 외에도 드라마 제작사, 레저기업, 투자사, 프랜차이즈, 골프장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중 다수가 금전 거래를 통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정황이 적혀 있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권력과 재력이 불법과 부패를 은폐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은 그 권위만큼이나 무겁다. 공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누리는 자리라면, 그 신뢰를 저버리는 순간 모든 명분을 잃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불법의 의혹을 받는 사람이 여전히 공적 자리를 차지하고, ‘윤리’를 입에 올리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회는 이런 장면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법은 권력의 크기에 따라 무뎌져서는 안 되고, 언론은 끝까지 사실을 파고들어야 한다. 제보자가 홀로 싸우게 내버려두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부패를 방조하는 셈이다.

권력과 돈은 유혹이자 시험대다. 그 시험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포장된 보고서가 아니라, 진심 어린 반성과 책임 있는 퇴장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권위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역사는 그들을 ‘윤리경영의 가면을 쓴 자들’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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