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함은 레이더와 전투체계로 여러 표적을 동시에 탐지·요격하는 미사일 방어용 구축함

해군의 최신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이 작년 해군에 인도되고, 2번함 다산정약용함까지 올해 진수되면서 한국형 이지스 전력은 고도화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6000t(톤)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은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임에도 사업자 선정 지연으로 두 해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조선·방산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열린 다산정약용함 진수식에서 진수를 축하하는 폭죽이 함수에서 터지고 있다. [사진=대한민국 해군]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열린 다산정약용함 진수식에서 진수를 축하하는 폭죽이 함수에서 터지고 있다. [사진=대한민국 해군]

현재 대한민국 해군 이지스 전력의 기둥은 세종대왕급(KDX-III Batch-I) 3척과 정조대왕급(Batch-II) 3척이다. 7600t급 세종대왕급 3척에 이어 8200t급 정조대왕급 1번함 정조대왕함이 작년 11월 27일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인도됐다.

2번함 다산정약용함은 올해 9월 진수돼 내년 인도가 예정됐다. 정조대왕급은 미국 이지스 전투체계에 한국형 수직발사체계와 통합소나체계, 탄도탄 요격 유도탄을 결합해 탐지·추적을 넘어 요격 기능까지 갖춘 대형 이지스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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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DX 사업은 이 대형 이지스 체계 아래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더해 한국 해군의 중형 이지스 라인을 채우겠다는 구상이다. 2030년까지 총 7조8000억원을 들여 선체부터 전투체계, 다기능레이더, 무장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설계, 건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념설계는 2013년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맡아 2023년 12월 완료했다. 지난해 2월에는 기본설계 결과물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아, 규정상 기본설계 참여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이어갈 수 있는 요건도 채운 상태다.

KDDX 사업을 두고 맞붙은 HD현대중공업(상)과 한화오션(하) [사진=HD현대중공업, 한화그룹]
KDDX 사업을 두고 맞붙은 HD현대중공업(상)과 한화오션(하) [사진=HD현대중공업, 한화그룹]

문제는 이 다음 단계다. 방위사업관리규정과 관행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에 이어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까지 수의계약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화오션은 개념설계 도면과 노하우를 활용한 뒤 경쟁 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경쟁입찰 또는 공동참여를 요구했다. 양측은 2024년까지 고소, 고발까지 벌였다가 작년 11월 법적 갈등은 정리했지만, 그 사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 발주는 2년 가까이 미뤄졌다.

방위사업청은 뒤늦게 사업 방식을 손봤다. 올해 10월 조선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수의계약과 공동개발 두 가지 안을 두고 검토 중이며, 경쟁입찰은 일정 지연과 제3의 업체 등장 가능성을 이유로 사실상 배제했다. 이와 별도로 여당과 정부는 올해 9월 말 당정협의를 열어 양사 모두가 일정 부분 참여하는 상생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업계에서 KDDX는 단순한 구축함 6척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HD현대중공업 특수사업부가 정조대왕급, 장보고-III급 잠수함, 해외 초계함·호위함 수출로 2020년대 중반까지는 일감이 채워져 있지만, 그 이후 고부가 방산 수주를 이어 줄 대표 프로젝트가 사실상 KDDX 하나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화오션 역시 상선과 해양플랜트 부문 변동성이 큰 만큼, 과거 세종대왕급 등 이지스함 건조 경험을 살려 KDDX를 중장기 성장 축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라 두 회사 모두 사업 지연을 버티기 쉽지 않다. 

전자·방산업계에서는 한화시스템의 이해관계도 작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화시스템은 2020년 국방과학연구소와 약 5400억원 규모의 KDDX 전투체계와 다기능레이더 개발 계약을 체결해 2029년까지 시제를 개발하고 6척에 순차 탑재하는 일정을 잡아뒀다. KDDX가 계획보다 늦어지면 전투체계·센서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구축하는 대형 해상 전투체계 플랫폼이 지연되고, 향후 한국형 호위함·수출형 함정 개조 사업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이지스함의 설명도. 이지스함은 강력한 레이더와 미사일 전투체계로 광역 공중·미사일 위협을 막는 구축함이다. [사진=인공지능(Imagen 3) 생성 이미지]
이지스함의 설명도. 이지스함은 강력한 레이더와 미사일 전투체계로 광역 공중·미사일 위협을 막는 구축함이다. [사진=인공지능(Imagen 3) 생성 이미지]

수출 시장까지 넓혀 보면 KDDX의 의미는 더 커진다. 정조대왕함 인도식에는 미국, 폴란드, 페루, 태국 등 7개국 정부 인사가 참석해 K-함정에 관심을 보였고, 국내 조선사들은 미국의 해군 조선소 현대화 프로젝트와 페루, 필리핀 등과 공동 건조 사업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이 와중에 미 해군 이지스 체계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형 이지스함 라인업과, 국산 전투체계·레이더를 얹은 6000t급 KDDX 라인업을 동시에 갖추게 되면, 동남아와 중동 등에서 미국제 이지스함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한국형 이지스 패키지를 제안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동남아, 중동 수출까지 염두에 둔 KDDX는 조선·방산업계에서 10년 먹을거리로 불리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설계 도면과 사업 방식에 대한 이견이 길어지면서 대규모 한국형 이지스 프로젝트는 아직도 본격적인 건조 단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KDDX는 단순한 함정 건조를 넘어 국내 조선업계의 미래 기술력과 방산 수출 경쟁력이 걸린 핵심 사업"이라며 "사업자 간의 갈등이나 절차적 문제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조속히 사업 방식을 확정하고 본궤도에 올려야 국가적 전력 공백을 막고 한국 방산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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