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문은 닫고 열쇠는 쥔 현대차, 상표권 남겨둔 채 고민
현대자동차그룹이 러시아를 떠난 지 2년이 조금 안 된 지금, 현지에서 상표를 등록하고 연장하면서 러시아 안팎에서는 한동안 재진출 가능성이 거론됐다. 2023년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약 14만원에 매각하며 손실을 털어냈지만, 2년 내 재매입 콜옵션까지 붙여 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관측에 힘이 실렸다.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출시했던 팰리세이드 [사진=현대자동차 CIS(Хендэ Мотор СНГ)]](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3166_434025_3112.png)
러시아는 한때 현대차와 기아에 제2의 내수 시장에 가까운 곳이었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 이후 현지 생산이 본격화하며 두 회사는 2021년 러시아 승용차 시장 점유율 20%대 중반, 연간 판매 30만 대 이상을 기록하며 외국계 브랜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솔라리스와 리오 같은 소형, 준중형 차종은 수도권 택시와 가정용 차량으로 자리 잡았고, 그룹 차원에서도 러시아를 동유럽과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을 아우르는 생산·수출 거점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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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과 서방의 제재, 부품 공급 차질이 겹치면서 공장은 가동이 멈췄고 완성차 수출과 조립도 사실상 중단됐다. 결국 현대차는 2023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과 2020년에 인수한 GM 공장을 지역 회사인 아트파이낸스에 단돈 1만 루블(약 14만원)에 넘겼다.
이는 약 2000억원대 자산소실로 한 번에 회계에 반영했다. 대신 계약에 매각 후 2년 안에는 같은 가격으로 자산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넣어, 러시아 생산 기반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않았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 내부 모습 [사진=현대자동차]](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3166_434017_2034.png)
전쟁이 길어지면서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위험부담도 커졌다. 러시아 국회인 국가두마가 비우호국 기업 자산을 국가가 임시 관리하고, 사실상 접수할 수 있는 법을 도입한 후 서방계 에너지, 소비재 기업을 국유화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 서부 지역이 직접 공격을 받는 사례가 늘어난 점도 공장 자산을 그대로 들고 가기 어려웠던 배경으로 거론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까지 직접적인 포격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전쟁 상황에서 해외 기업 공장이 군수·물류 시설로 전용되거나, 자산이 국유화·몰수되는 사례가 나온 만큼 현대차는 물리적 파괴와 법적 상실 리스크를 동시에 감수해야 했다. 매각을 통해 장부상 손실을 확정하는 대신, 전쟁으로 인한 추가 손실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에서 그들의 이름을 계속 지키고 있다. 러시아 상표법상 권리자가 등록 후 3년 동안, 또는 직전 3년 동안 상표를 사용하지 않으면 제삼자가 불사용 취소를 청구할 수 있어 서방 기업 상당수가 상표권 분쟁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교통경찰에 납품한 현대 쏠라리스 [사진=]](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3166_434012_1737.jpg)
현대차와 기아는 2024년부터 현지 특허청에 현대, 제네시스, 차종명 관련 상표를 신규, 연장 등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현지와 국내에서는 상표를 다시 등록하는 것이 조만간 현지 진출을 재개하겠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 국영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는 17일 업계 관계자를 인용, “현대차의 러시아 상표 등록은 시장 복귀의 신호가 아니라, 사업 지속 여부와 관계없이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상표권을 유지하는 통상적 조치”라고 전하며 재진출설을 일축했다.
한편 현대차가 빠져 나온 사이 러시아 승용차 시장의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서방 브랜드가 떠난 자리를 라다 같은 로컬 브랜드와 중국 업체들이 채웠고, 2024년 기준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60% 안팎까지 치솟았다. 2022년 급락했던 러시아 신차 판매는 2024년 150만 대 안팎까지 회복됐지만, 상위 브랜드 대부분을 중국 업체가 차지할 정도로 판도가 달라졌다.
중국 업체와 경쟁, 전쟁 리스크를 피해 러시아 공장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도 단순한 선택은 아니다. 전기차 비중이 아직 낮고, 가격에 민감한 내연 SUV와 세단 수요가 여전히 많은 러시아는 현대차와 기아가 가격 대비 성능, 현지화 전략으로 강점을 보여온 구간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를 겨냥한 고율 관세와 각종 규제가 강화되면서 내연기관 중심 시장은 줄어드는 추세라, 이런 점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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